못마땅한 사람에게 솔직히 말하고
못마땅한 사람에게 솔직히 말하고 자신의 호불호를 가능하지 못하도록 석연치 않게 놔두지 않고 명백히 말하는 그의 습성을 나는 역시 잊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면, 때로는 무엇이 나의 진정한 선호인지 구분조차 못할 지경에 이른다. 이 모호함은 마치 안개 낀 새벽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식당을 고를 때도 일단 검색부터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추천을 많이 받은 곳이나 ‘좋아요’가 넘쳐나는 메뉴를 선택한다. 그것은 일종의 무의식적인 순응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한때는 어렴풋하게나마 나만의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할 때 즐겁고, 무엇을 먹을 때 기분이 좋은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시절.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그 분명했던 감각들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바래고 흐릿해졌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뭐였더라?', '내가 싫어했던 것은 또 뭐였지?' 물으면, 그 질문은 선뜻 허공에 맴돌 뿐 답을 찾지 못한다.
시대의 흐름도 한몫했을 것이다. 눈을 뜨고 감는 모든 순간 접하게 되는 정보의 홍수. 그 거대한 물결 속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진솔한 정보가 개인을 위해 존재할까? 교묘하게 포장된 홍보와, 대놓고 자신을 드러내는 광고들이 우리 주변을 에워싼다. 알고리즘은 거기에 불을 지피듯, 우리가 보고 싶은 것들만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우리의 시야를 좁힌다. 그렇게 무언가 견고해지는 동안, 진실로 내가 원하고 좋아했던 것들은 그림자처럼 희미해져 간다.
결국 나의 호불호가 진정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주입된 타인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작은 배처럼 표류한다.
그러니 이제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도에 휩쓸려 가는 대신, 이미 배에 올랐다면 최소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만큼은 스스로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자신이라는 섬을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항해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