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스토리-70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가 감정의 파도 위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믿지만, 실제 거장들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감정이 음악의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적절한 온도’로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연 전이나 작업을 시작 전, 음악이 흐를 수 있는 자신만의 감정 온도를 맞추는 리추얼을 가졌습니다.
전 세계의 피아니스트들이 뽑은 레코딩 시대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는 13도 음정을 넉넉히 짚을 정도로 긴 손가락으로 유명했는데, 연습과 공연 전 항상 손가락을 조용하고 길게 풀어주는 리추얼을 지켰습니다. 그는 슬럼프와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었는데 자기 암시 기법을 실천하여 좋은 결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사람에게 최면을 건 후 계속 어떠한 말을 되뇌임으로써 실제로도 그런 효과를 볼 수 있게 암시시키는 것으로, 누워 있던 그의 곁에서 주치의 니콜라이 달이 "당신은 곧 새로운 협주곡을 작곡할 것이며, 그 곡은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라고 계속 말해 주었고, 그 치료는 약 3달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불새>와 <봄의 제전>으로 20세기 초 충격을 주며 등장한 스트라빈스키는 조금 독특한 리추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운동을 한 후 오후 1시까지 쉬지 않고 작곡하는 규칙적인 일과를 보냈습니다. 그는 작곡할 때면 고요함 속에서 철저히 혼자이기를 원해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창문을 모두 닫았고 “아무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막히는 기분이 들면 그는 잠시 물구나무서기를 했습니다. 잠시 뒤 다시 피아노 앞에 서면 머리가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뇌가 맑아지는 기분이라고 밝혔고, 오후에는 항상 산책을 나갔습니다.
침묵의 작곡가 에릭 사티는 같은 회색 양복을 7벌 돌려 입고, 같은 메뉴를 먹고, 같은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생활을 ‘기묘할 만큼 규칙적’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작곡 전에는 천장의 점을 보고 15초간 호흡하는 작은 리추얼이 있었고, 몽마르트의 단출한 방에서 짧고 명확한 작곡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복잡함을 걷어낸 삶 속에서 오히려 자신만의 음악적 질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이들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신만의 리추얼을 통해 감정의 온도를 맞추어 스스로를 몰입 상태로 이끌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감정이 흐트러지는 날일수록 호흡, 정리, 고요, 손의 감각 확인과 같은 작은 리추얼이 필요합니다. 감정이 안정될 때 비로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삶의 리듬도 제대로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