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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키 May 09. 2019

할머니의 장례식 _ 1

우주를 만들고 가신 할머니

0일 차 

  벨소리와 함께 폰의 화면에 '아빠'란 텍스트와 번호가 뜨자 마음이 덜컹 내려앉았다. 평소엔 전화 거는 일이 별로 없으신 아빠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으응...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아... 아빠.. 괜찮아요?"

  아빠는 괜찮다고 하셨다. 임종은 못 지켰지만, 요양원에서 전화통화를 연결해 줘서 무슨 말인가를 나누다가 가셨다고. 편하게 가셨다고 말씀하셨다.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밤 풍경이 느릿느릿 지나갔다. 아빠의 목소리도 느릿느릿,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오늘은 병원에 올 필요 없고, 오지 마라. 내일부터 3일장을 할 거야. 올 수 있으면 오고. 무리하진 마라. 올 수 있을 때 와." 

전화를 끊고 다시 들어선 호프집의 소음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저녁 모임을 갖는 자리였다. 뭔가 붕 뜬 기분으로 안주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1일 차
  생각보다 장례식장에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평일 낮의 대로를 버스는 날듯이 달렸다.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친척들을 만나면 어떤 말로 인사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몇 년 전 할아버지 장례식장 입구에서 숙부를 만나자마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던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었다. 심지어 그때 나는 살짝 웃기까지 했다. 아버지 상을 당한 분께 "안녕하세요."라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손녀의 얼굴에 미소라니. 아무리 오랜만에 만난 숙부가 반가웠어도, 이만하면 호상이라는 소리가 나지막이 오가는 장례식장이었어도 무신경한 인사였다고 내내 혼자 반성했다. 그런데 호상이라... 과연 유족에게 호상이라는 게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가 고른 인사말은 '오랜만이에요.'였다. 하지만 장례식장 입구에서 작은 숙부가 "어어, 왔냐." 하며 어깨를 툭 치자 우물쭈물하다 인사를 놓치고 말았다. 목례를 하며 들어선 분향소엔 고운 크림색 장미와 흰 국화로 장식된 영정사진 속 할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 


  할머니는 그리 다정한 분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장남인 아빠에게 아들을 기대하셨지만 첫째도, 둘째인 나도 딸이었다. 어린 나를 무릎에 앉히고 "네가 여기여기 고추를 달고 나오지!"하고 혼내는 건지 아쉬워하는 건지 모르겠던 모습, 이에 교정기를 끼우고 있던 시절 할머니의 고른 치열을 보고 "할머닌 어쩜 이렇게 이가 고르지?" 하니 "틀니다! 이년아!" 하셔서 함께 웃어버린 기억, 요양원에 누워 언니 손을 쓰다듬던 모습이 전부라고 할 만큼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적었다. 할머니 영정 앞에서 좀처럼 촉촉해지지 않는 눈에 그렇게 핑계 대고 싶었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할 때도 담담했던 마음은 아빠의 모습을 보고서야 울컥해졌다. 상주 완장을 찬 아빠는 어딘가 넋이 빠진 얼굴에 다리가 불편한지 조금씩 절룩이면서 장례식장 안을 오가고 계셨다. 아빠도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인데 아흔두 살인 노모를 끔찍이 생각하고 챙기셨다. 할머니가 부르시면 최선을 다해 두 시간 거리의 요양원에 달려가셨다. 본인이 심한 폐렴으로 입원하셨을 때에도 산소호흡기를 떼고선 숨 가쁜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들을 일러두셨다. 할머니도 아빠를 굉장히 의지하셔서 아빠가 있어야만 해결되는 상황들이 생기곤 했던 것 같다. 이제 아빠는 좀 더 자신의 몸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 영정을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이나 하는 손녀가 나다. 그러다 아빠에게도 손주가 있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아빠는 손주만 보면 눈에서 꿀이 떨어지지만 그 손주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나처럼 무념하진 않을까.




2일 차 

  간단한 샌드위치를 여러 개 만들어 장례식장에 향했다. 가족들은 어제부터 똑같은 장례음식으로 삼시 세 끼를 먹고 있을 터였다. 모처럼 날이 화창한 봄날의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빈소에는 조문객은 별로 없었는데 빈소 앞의 화환은 이 열 종대로 길게 늘어나 아예 가운데로 꽃길을 만들고 있었다. 

"어제저녁은 허리 한 번 못 폈어."

  빈소 옆방에서 샌드위치 통을 열자, 사촌동생 S가 재빠르게 음료수며 물을 쟁반에 챙겨 왔다. 빠질 수 없는 회의가 있어 자리를 비웠던 어제저녁, 파도처럼 조문객이 밀어닥쳤다고 언니가 말했다.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계셨지만 서빙은 사촌동생들이 도맡아 했단다. 

"맞아. 언니. 나는 코피까지 났다니까."

  언니와 S는 무용담처럼 어제의 풍경을 들려주었다. 할머니는 아들 셋, 딸 둘인데 아들들은 딸 둘씩을 낳고 딸들은 아들과 딸을 고르게 두었다. 그 손녀들이 어제 맹활약을 한 모양이다. 엄마와 숙모들은 검은 한복 차림으로 누워 쉬시다가 샌드위치를 하나씩 집어 드셨다. 

"어유, 이제 네가 이런 것도 만드니!"

"그러게. 아들은 어쩌고 왔어?"

"어젯밤엔 잘 들어갔냐. 김서방 피곤했겠다." 

  어제 회의를 마치고 밤늦게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다시 잠깐 왔었다. 엄마와 숙모들, 그리고 딸들인 우리는 눕거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일 큰 화제는 막내 고모 딸이 장례식장에서 첫 선을 보인 남자 친구였다. 그걸 두고 우리는 결혼식은 가을이 좋겠다는 둥, 봄에 아이를 낳아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월령이 괜찮다는 등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 큰숙모는 손주인 S의 아들들 이야기로 얼굴이 환해지셨다. 

"얼마나 귀여운지. 특히 둘째는 애교도 많고 춤도 잘 추고... 얘는 무대에도 나가서도 쑥스러움이 없어. 이건 2학년 때 숙제로 쓴 글인데 너무 웃겨. 어떻게 이런 글을 쓰나 몰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신 글의 제목은 '나의 묘비명'이었다. 


그는 100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많이 웃고 친구들과 재밌게 지냈습니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주말에는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100살에 천국에 갔습니다. 

과연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 우리 할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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