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대화로 나눈 가상 인터뷰
노랑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집념과 극단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화가들의 공동체로 꿈꾼 노란집, 친구에 대한 애정과 실망을 담은 해바라기, 인생을 상징하는 밀밭으로 희망의 노랑, 애증의 노랑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그가 꾸민 노란집에서 영혼의 대화로 나눈 가상 인터뷰를 전한다.
화가로서의 생을 마음먹은 지 8년째 되던 1880년 2월, 빈센트 반 고흐는 남부 프랑스 아를에 도착한다. 그는 2년간 파리에서 화가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화풍과 색채를 도입하는 등 활발히 작업했지만 도시의 회색 겨울은 자연을 찾게 했다.
그에게 아를의 태양은 경의의 노랑이었다. “그저 노랗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노랑은 얼마나 아름다운 색인지!”라고 찬탄한 아를의 햇빛 속에서 그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기대와 열정을 품고 동료 화가인 고갱을 기다리며 준비했던 작업실 건물도 마침 온통 노란색이었다.
노란집으로 불리는 그곳, 지금은 사라진 아틀리에에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노란 밀짚모자를 쓴 고흐를 만났다.
N : 안녕하세요. 고흐 씨. 노란집에서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전에 “내게 노랑은 희망이고 기쁨이다.”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으나 이 노란집에는 만감이 교차하실 것 같습니다.
V : 물론이네. 내 꿈과 열정이 담겼고 스러졌던 곳이기 때문에 다시 발을 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네. 그리고 인터뷰라니, 평론도 달갑지 않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생각하네.
N : 하긴 당신은 작품성을 알아주는 호의적인 평론에도 불안한 반응을 보이셨죠. 하지만 노랑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당신을 빼놓을 수는 없었답니다. 특히 이곳에서 그려진 노랑들은 마치 빛을 머금은 듯합니다. 그림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요.
V : 아를의 노랑은 내게 기쁨이었지. 한여름의 햇살은 너무나 아름다워 제정신으로 있는 것이 불가능했어. 그저 즐기는 것이 도리였지. 거기서 나는 고갱을 기다리는 희망을 노란 해바라기로 그렸고, 밤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인간적이고 따스한 불빛을 노랗게 옮겼다네. 아를의 노란집에서 나는 희망에 불타 가장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했지만 결국 그 불꽃에 녹아버렸지. 고갱이 나를 떠나고 인생의 동반자인 동생 테오마저 결혼하여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완성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신병원에 들어갈 것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어.
N : 하지만 당신은 정신병원 안에서 오히려 빛나는 작품 활동을 했지요. 우리는 당신 덕에 <별이 빛나는 밤>에서 여름밤의 공기를 느낍니다. 특히 그동안 삶과 희망의 상징이던 노랑이 저 높은 하늘의 푸른색과 어우러진 모습은 당신이 처음 화가가 되고자 했던 목표, 신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V : 생 레미 병원은 아름답고 조용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했기에, 그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며 자연의 순리와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지. <별이 빛나는 밤>은 거기서 그려진 그림이었어.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는 절규할 수밖에 없었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이는가? 목표를 이루는 것은 종결이고,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는 죽음이 선행되어야 하니 말일세.
N : 그래서 마지막 그림, <까마귀 나는 밀밭>이 그려진 것인가요. 당신은 노란 <밀밭>을 통해서도 추수와 씨 뿌리기 등 인생의 순환을 그려냈는데, 이 무겁도록 무르익은 밀밭은 폭풍우를 앞두고 거둬들여지지 않은 채 까마귀에 뒤덮여 더욱 막막해 보입니다.
V : 내게 밀밭은 삶과 죽음의 순환과도 같았네. 씨앗은 땅에 뿌려져 거친 노동과 함께 푸른 하늘이 내려주는 은혜로 노랗게 물결을 이루다가 추수되지. 그리고 다시 뿌려지고, 자라나고. 인생이란 그런 것,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전제하고 나의 그림도 그렇다네. 비록 나는 화가로서 수확의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떠났지만 후회는 없어. 황금빛으로 넘치는 태양 속에 그저 내 길을 걸었을 뿐이니.
그는 영혼까지 쏘아보는 듯한 청록색 눈으로 창 밖을 응시했다. 초록색 창틀에는 아를의 눈부신 햇살이 부딪혀 스러지고 있었다. 어쩌면 저것은 햇살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노란집이 가둬둔 빛이 새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을 돌려 보니 그가 앉았던 노란 의자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파이프와 잎담배 종이가 환한 빛 속에 놓여 있을 뿐.
* 본 인터뷰는 [빈센트 반 고흐, 내 영혼의 자서전, 민길호 지음, 학고재], [Vincent Van Gogh 고흐의 재발견, 빈센트 반 고흐/H. 안나 수 지음, 이창실 옮김, 시소커뮤니케이션즈], [I VAN GOGH(반 고흐가 말하는 반 고흐의 삶과 예술), 이자벨 쿨 지음, 예경]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기업 사보의 '컬러 특집-노랑'에 수록된 바 있습니다.
* 이미지는 https://vangoghmuseum.nl/en , https://artsandculture.google.com 에서 더 선명한 화질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