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면 곧 앤티크
나의 중고 물건 연대기를 시작한 게 불과 4개월 여 전인 8월이었다. 태양의 고도 변화처럼 나의 중고 사랑이 계절과 함께 사그라든 것인가. 그렇진 않다. 나는 여전히 중고의 저렴한 가격과 의외성, 희소성을 사랑한다. 다만 지난번 글에서처럼 갑자기 중고 물건들이 일순 빛을 잃은 것은, 중고라서가 아니라 소유욕이 쑥 내려가서일 것이다.
찬란한 태양과 함께 밖으로, 밖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약해진 햇빛과 매서운 바람에 안으로, 안으로 접어들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똑같은 패턴으로 최소한의 청소와 정리를 반복하니, 단정한 법이 없던 집은 최소한으로 어질러진 그대로 번잡하다. 좀 더 정리해 보겠다고 실내화 거치대를 알아보다가 이것은 또 얼마나 공간을 차지할까 싶어 구매 창을 닫고, 시린 무릎을 덮어줄 온열 담요를 검색하다가 이건 또 어디다가 치워놓나 싶어 장바구니에서 삭제한다. 집 안에 있는 물건이 부대끼니 새로 들일 물건도 부담스럽다. 새 물건 하나를 들이려면 있던 물건 하나를 없애야 그나마의 균형이 맞을 것이다. 그런 눈으로 보니 우리집의 모든 물건이 내다 버리거나 팔아버리고 싶은 짐이 되었고, 누군가의 중고 물건에도 나의 부정적 시선이 더해진 게다. 내가 물건을 소중히 쓰고 있다면 누군가의 판매 목록도 귀해 보일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틈을 타서 정리를 하자!
마침 새해도 되었겠다, 새해 목표를 '하루 하나 버리기'로 삼았다. 버리는 물건을 그림으로 남기자는 거창한 계획도 세웠다. 버리기 아쉬운 물건이라면 좋은 기록이자 추억이 될 것이고, 아쉽지 않은 물건이라면 '이런 걸 왜 가지고 있었대!'라며 정리에 더욱 채찍질을 해 줄 것이다. 첫 공략 대상은 책장이었다. 몇 해 전 대대적인 정리를 하여 콤팩트한 사이즈로 존재하는 책장이었는데 그새 또 뭔가가 틈을 비집고 들어서 있었다. 여기서도 발견되는 의외성과 희소성에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지만 거의 3kg에 육박하는 종이를 버릴 수 있었다. 다음은 신발장. 아이에게 작아진 신발은 손쉬운 퇴출 대상이다. 주변에 나눠줄 것, 아름다운가게에 가져갈 것 등을 추려냈다. 이튿날엔 옷장과 그릇장을 열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음에도 아쉬워서 계속 착장을 시도하던 빈티지 치마바지를 덜어내고 분가할 때 얻어왔던 무거운 그릇을 끄집어냈다. 그러다 보니 안 보였던 옷도 다시 발견하고 처박아두어 깜박했던 그릇도 찾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의외의 순간을 우리집에서 만났네. 우리집이 중고 시장이네 그래.
몇몇 물건은 판매할 요량으로 한 군데 모아보니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이건 이런 사람한테 가면 잘 쓰일 텐데, 저건 아이 있는 집에 유용할 텐데 등 내게는 필요 없는 쓰임이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잘 쓰이면 좋겠다.' 중고거래의 마음에는 이게 있었다.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 그게 남을 향할 일만은 아니었던 거다. 내 물건, 쓸 수 있는 한 내가 잘 쓰는 게 먼저일 텐데.
언젠가 예쁜 앤티크 그릇을 탐내다가 마음을 접으며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집 그릇, 내가 40년 쓰면 앤티크 되겠지."라고. (그리고는 이내 사버렸다;)
중고로 샀든, 새 것을 사든 집에 들어온 모든 물건은 중고, USED가 된다. 물건을 만날 때의 설렘이 사라지더라도 제 역할을 끝낼 때까지는 우리집의 귀한 중고로 잘 대해줘야겠다. 그리고 내보낼 때는 다시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해보련다. 올해는 나의 앤티크들을 좀 더 넓은 세상에 내보내 보자. 그럼 소유욕이 부활할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