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내가 기억하는 장면

만족하는 나만의 방법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그 작가의 그림은 인간미와 디테일이 있고, 작은 것들을 멋있게 보이게 하는 특이한 매력이 있어서 그의 작품들의 대부분을 매우 좋아하는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경우는 좀 더 그랬던 것 같다.


기무라 타쿠야의 목소리로 듣는 하울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따뜻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도 매일을 힘겹게 보내야 하던 내게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고,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받던 시절의 나를 되살려 주는데 충분했다.

되돌려 보고 되돌려 보고... 또 힘들어질 때면 다시 열어보고 또다시 열어보길 반복하며 내 머리에 남는 장면은 우습게도 소피가 하울의 성에 입성한 다음 날이다.


굵은 베이컨과 계란이 프라이 팬에 올려져 맛 좋게 구워지던 이 장면..


별다른 재료도 없이 구워진 이 음식들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덕분에 한동안 굵은 베이컨과 보통보다 더 질 좋은 계란으로 지금도 자주 아침상을 차리곤 한다.


테이블 매너는 없지만 귀여운 소년과의 멋진 아침식사 그리고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내리는 세탁줄과 세탁물.. 그것 만으로도 소피는 얼굴에 함박웃음꽃을 피웠다. 그녀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진심으로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출처 : 네이버>


문득 내가 혹시 나의 만족의 기준을 너무 높이 세워두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구워지는 베이컨의 냄새나 시중에서 그저 판매하는 알갱이 커피만으로도 아침은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그런 만족을 오래 간직하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은 내가 만들어낸 상황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곳에 다다르면 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좀 더 멋있어 보일 것이라고, 지금 내가 입은 옷, 내가 소유한 그 많은 것들이 좀 더 멋진 가치를 가질 거라고 꽤나 부질없는 상상에 서글퍼 지기까지 할 때가 있다.


내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콕 집어내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적어도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을... 하며 되지도 않는 땅굴을 팔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끄집어내어 마치 예전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로 지금의 나는 웃을 자격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더 깊은 지하세계로 들어가곤 한다.


그럴 때 문득 내 코끝으로 베이컨의 냄새가 스치면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된다.


아니지, 아니야.. 누구나 과거를 살지 않고, 과거로 인해 얽매이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를 만족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리고 만족스러운 현재들이 모여 만족스러운 미래를 만들지 않을까. 내가 만족하는 미래에서는 지금이 순간이 과거일 테니 그때의 과거는 만족스러운 날일 것이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미래의 내가 지금을 만족스러운 과거로 기억하게 되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만족의 잣대를 조금은 낮추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음미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조금 더 나는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꽤 오래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비싼 커피가 아니어도, 최고급의 베이컨이 아니라 저렴한 베이컨이어도, 며칠째 아껴먹는 양배추여도 지금 먹을 것이 있고 좋은 냄새와 맛을 내는 베이컨이 있고 향긋한 커피 향이 나는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시간과 정신이 있기에 나는 오늘을 웃을 수 있고 내일도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먹음직스럽게 베이컨과 반숙으로 구운 계란프라이를 먹는 소년과 소피를 떠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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