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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Apr 29. 2023

날씨에 가스라이팅 당했어요.

행복해야 할 오늘이기에 부침개를 만들어요. 

나의 30대는 학습지교사로 알차게 사용했다. 

그다지 후회는 없고, 아이들과, 그리고 많은 학부모들과 소통하며 보냈던 그 시간들은 지금의 나에게도 많은 힘과 가치관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간 내가 무엇인가에 '가스라이팅'당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것 역시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많은 가스라이팅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날씨>에 가스라이팅 당했던, 그리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처음 몇 년간은 그저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에 나에게 짜증과 투정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의 짜증과 투정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시켰거나, 지루해서 부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조차도 자신들이 납득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루하다면 신기하고 즐거운 것을 찾지 못했던 것이 있었던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면, 해야 하는 이유를 자신이 납득하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짜증을 부렸고, 그야말로 패악을 부릴 때도 있었다. 

돌아보면 그런 날은 거의 비가 오거나, 비가 올 것만 같은 그런 날이었다. 



 나중에 어떤 책에서 이런 비슷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은 공기 중에 머금은 수분이 많아 그 공기를 짊어지게 되는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라던가.. 기압의 문제도 있어서 그것으로 인해 몸은 처지고 기분도 다운되는 것이라고... 


 확실히 그랬다. 비가 오는 날에는 새벽기상이 어려웠다. 잠도 빨리 왔다. 어른조차 그렇다면 아직 몸이 약한 아이들은 더욱 심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비 온다는 예보가 있을 때는 가방에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챙겨가고는 했다. 그것들이 아이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나의 기분도 조금은 다독여 주려고... 

당시에는 나의 일이 조금은 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다.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한다는 열망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는 이런 비에 의해 자신이 쳐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기분이 다운되면서 자신의 강점보다는 약점이 더 많이 두각 된다. 다이어트 겸 하고 있는 산책도 쉽지 않고, 오늘처럼 비가 온다고 해서 늦잠을 자버리는 그런 날에는 더더욱 몸이 무겁고 살이 많이 쪘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점점 더 커져서 밥을 먹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졌고, 결국은 나의 인생이 우울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막아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조차 나는 힘들어질 것이다. 


나는 날씨에 '가스라이팅'당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고소한 기름을 두르고 '부침개'를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침개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음식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으로 부침개를 만들고 계속해서 만들었던 부침개는 나에게 있어서 잘하는 메뉴가 되어있다. (딸도 좋아해 주는... ) 

부침개를 부치면서 나는 불 앞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얇고 바삭하게 튀겨지는 부침개를 꾹꾹 누르면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부침개를 입에 넣으면 쳐졌던 기분이 올라가고, "누가 만들었는지 너무 잘 만들었다~"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렇다. 나는 부침개를 잘 만드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비가 오지만, 부침개를 누구보다 잘 만든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와서 좋다."하고 소리 내어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 비가 오거나, 내일 비소식이 있을 때면 가슴으로 '나이스!'를 외친다. 

"내일은, 부침개 먹는 날이다! 우리 집으로 모여라!"


날씨 따위에 나의 행복해야 할 하루가 우울해져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에 사람에 의해 하루하루가 힘들고 어두웠다. 

그때에도 얼른 회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만의 부침개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만의 부침개는 "책"이다. 

책은 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다. 

특히 에세이는 마치 내가 수다를 막 떨고 나면 "그래그래, 나도 그랬어~"하고 공감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 

이번에도 알리사 님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를 읽으며 이겨 낼 수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더 많은 나만의 "부침개"를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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