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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Apr 02. 2023

나 홀로 벚꽃 놀이

오랜만에 새벽 산책을 하며

부끄럽게도 새벽 산책을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300일이나 넘도록 해 왔건만, 작년 말부터는 춥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빠지더니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포기는 김장 담글 때나 쓰는 말이라며 스스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에 만보 이상씩 걸으며 으스댔던 그런 때가 있었다.


 요즘 다시 봄이 오고 세상에 연둣빛으로 생명들이 생기가 돋고 있어서 다시 아침 산책을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직은 5시가 어두운 밤이었다. 그렇지만 눈을 뜨고

무거운 몸을 일으킨 나를 스스로 칭찬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우리 동네는 이번주가 벚꽃이 가장 예쁠 거라던 지인의 말이 떠올라 발걸음과 함께 가슴도 설렜다. 이 나이가 되어도 가슴이 설레다니 주책맞다고 할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이것도 삶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인 것을..


 이렇게 새벽 산책 겸 새벽 꽃놀이를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은 빠른 탬포로 걷기 시작했다. 사실 아침 산책을 그만둔 이유로 300일이 넘도록 만보 이상을 걸었는데도 오히려 살이 찌는 것 같다는 것도 한 몫했다. 그것도 꽤 크게...

 



 나의 산책로의 첫 시작은 늘 사진 속의 나무와 함께 했다. 산책로 뒤편이 바로 해가 뜨는 곳인데 해 뜨는 곳을 향해 나 있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해가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아주 매력적이다.


 가끔 어두운 풀들 사이로 새들이 지나가거나 길 고양이가 보이곤 하지만, 오늘은 어떨지...




  분명 맨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어둡기만 했던 하늘이 사진 속에서는 건너편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러데이션 된 보랏빛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낮에는 한 여름처럼 더운 요즘 날씨지만 아직 4월의 아침은 겨울의 옷을 벗질 못한 것 같다. 꽤 쌀쌀하면서도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이 여럿 있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같은 장소면서도 해가 잘 드는 곳과 잘 들지 않는 곳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 산책길에서도 이쪽 길은 아직 꽃들이 작지만, 저 건너편은 또 다르다.




  산책을 하며 잠시 스트레칭을 했다. 언젠가 유튜브 영상에서 배웠던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웠다. 굳어있던 근육들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을 받으며 그동안 몸에 소홀했던 자신을 탓했다.


 좀 더 부지런한 성격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좀 더 끈기가 있는 성격이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다가도 다시 자신을 다독이며 오늘이라도 이렇게 나왔으니 잘한 거다. 오늘을 깃점으로 다시 열심히 해보자.. 하고 말이다.


 후회는 짧게 하고 행동은 빠르게 하려는 성격은 스스로도 꽤 괜찮은 성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늘어선 길이다.

정말 다양한 매력이 있는 길이다. 언젠가 인스타에서 배웠던 사진 찍는 기법을 떠올려 나만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이것이 맞는가...? 하면서도 예쁜 사진이 담겨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흠... 나도 꽃놀이 다녀왔다고 자랑할 수 있겠지..?



 우리 동네는 (다른 곳도 그렇겠지만..) 새로운 벚나무를 심은 새로운 산책로와 기존 산책로가 겹쳐진 길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벚나무와 오래된 벚나무가 공존하는데, 새로운 벚나무는 아직 가늘고 약하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꽃을 피워주었다.


 새로운 벚나무의 꽃은 가지만큼 약하고 그 양도 적지만 나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열심히 피워주었기에 칭찬한다. 그래.. 너희들도 몇 년만 있으면 건너편 선배 벚나무들처럼 굵고 튼튼하고 예쁜 줄기와 꽃을 가질 수 있을 거야. 힘내렴..





 이 산책길의 자랑은 벚나무 말고도 <조팝나무>가 있다.

나도 사실 나무나 꽃이름은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나무의 이름이 쉽게 외워진 것은 아마 이름에 들어있는 팝이 '팝콘'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팝콘같이 하얀 꽃알갱이들이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은 너무 귀엽고 소중하다. 이 산책길의 한쪽에 후드러지게 피어있는 것이 너무나 예쁘다.




 이제 내 눈에도 저 산의 건너편에서 떠오르는 햇살이 보인다. 산 뒤로 올라오는 햇살의 붉은 기운은 오늘도 맑고 밝은 일요일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온다.


 이렇게 떠오르는 햇살을 보면 나는 오늘도 즐겁게 보내야지! 짜증 내지 말고! 한 번이라도 더 웃어보자! 하며 다짐한다.


 이번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의 딸은 이제 정말 어른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키도 훌쩍 커서 교복치마를 한번 더 맞췄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져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이에게는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한다.

 

 섭섭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또 갑자기 늘어난 지출로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산책이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이 벚나무들처럼..

지금은 적은 양의 꽃을 겨우 피워 냈지만 앞으로 더욱 많은 꽃을 피워낼 어린 벚나무들처럼.. 나도 오늘을 이겨내어 언젠가는 많은 꽃들을 피워낼 수 있을까..


 나의 오늘을 비웃듯 '껄껄껄'에 담아 넘겨버릴 그런 날이 올까..



 사랑스러운 꽃들이 가득 피는 봄날이다.

이제 게으름은 그만 피우고 나도 조금 더 움직여야겠다.

나의 작은 움직임이 모이고, 또 모이다 보면 그것이 곧 큰 움직임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작은 팝콘 같은 꽃들이 모여 저리도 예쁜 꽃뭉치가 되어있는걸... 그러니 나도..




 주변의 많은 이들이 꽃구경을 했다고 자랑했다.


요즘 다들 나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다.


"꽃구경, 다녀오셨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요... 멀리서 보기만하고 구경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네! 새벽에 혼자서 다녀왔어요..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답니다. 우리 동네에도 멋진 벚꽃길이 많이 있더라고요. "





"언젠가 배웠던 사진 기법으로 찍어보았는데, 잘 찍었나요? 벚나무는 정말 너무나 예쁜 나무더라고요. 우리 동네가 명소예요!"





  오늘은 아침부터 꽃놀이를 마음껏 했다.

주차걱정 없이, 사람에 치일 걱정 없이..

그렇게 혼자 많은 꽃나무들을 독차지하며 꽃으로 사치를 부리듯....


 즐거운 하루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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