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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Nov 22. 2023

고양이처럼 싫다고 말하되, 꽉 물지 말 것!

상대가 누구라도 싫은 것은 정확하게 말하되 무례하지 말아야 한다.

 고양이를 처음 키워 보신 초보집사님이 인터넷에 자신의 팔을 사진으로 올려 두었다. 정말 처참한 손톱자국. 하지만 귀여운 고양이를 보면 어찌 손이 가지 않겠는가. 나도 온이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는 그런 자국이 많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온이도 나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나도 온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온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몰랐지만, 고양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했다. 아주 작고 목소리도 작은 털 복숭이 물체... 싫다고, 낯설다고 털도 다 세우고 소리를 지르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 너무나 귀여울 뿐이다. 하루라도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나의 팔을 내주고, 온이의 손톱자국을 마치 문신처럼 자랑하고 다녔다.


 이제는 온이는 집에서 손톱을 세우는 일이 절대 없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잡혀 나와도 손톱이나 발톱을 깎아도 흑미가 장난을 쳐도 처음 우리 집에 온 손님을 대할 때에도 자신을 괴롭히거나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기라도 하듯 그렇게 무심한 표정을 짓곤 한다.


 간혹 일부러 귀찮게 해도 살짝 입을 벌릴 뿐 정말 깨물려고 쫓아오지 않으니 멋진 아이다.


 흑미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미 고양이에게 익숙해진 나의 반응 탓인지 아니면 흑미보다 온이에게 애정을 주는 것이 느껴졌는지 흑미는 내게 손톱을 보이거나 깨물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처음 데려올 적부터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외치는 듯한 행동과 눈빛을 보낸 흑미였기 때문인 걸까. 흑미도 나를 진짜로 깨물지는 않는다. 단지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깨무는 시늉만 할 뿐이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나는 고양이들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지.




 아이들이 살짝 깨물었을 때 나의 반응은


"악!!! 아파!! 엉엉엉!!!!"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시늉을 하며 소리를 내지른다. 그러면 우리 온이와 흑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렇게 콱물지 않았어! 엄마가 나를 무는 정도로 밖에 물지 않았다고!!'


라고 말하듯 쳐다본다. 멋쩍은 얼굴로 미안해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반응 후에는 그루밍을 해 주니까)


이 말을 못 하는 아이들도 싫은 부분을 만지거나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확실하게 표현한다. 그 표현을 보고 나도 그 아이들이 싫어하는 행동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고양이들도 처음부터 싫다고 하지 않는다. 정도가 지나치면 입을 벌린다. (깨물려고.. 이때 표정이 무지 귀엽다 ) 그래서 나도 아이들의 표정과 반응으로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그렇게 서로 어느 정도 양보? 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나 역시 고양이와 살아가고 있으니까. 상대가 누가 되었든, 다른 누군가와 살아갈 때는 반드시 내가 좋은 것만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싫어한다고 느끼면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성인은 "싫다"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른스럽지 못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을 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내가, 혹은 상대가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까? 한 번만 만나고 말 사이라면 한 번쯤은 참고 넘어가겠지만, 인생의 반정도 살고 보니 한번 만나고 말 사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한번 만났는데 두 번째를 또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만나지는 상대도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났을 때 첫 번째 만남에서 싫은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켜버리게 되었을 때는 그다지 이해를 얻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싫다고 잘 표현한 것은 인상에 남을 수 있어서 다음에 인연을 이어갔을 때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고, 다시 싫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가 조심해 주기도 한다.


 싫은 것은 싫다고 표현하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그 부분에 대해 배려를 해 줄 수 있도록 알려주는 <나를 대하는 방법> 설명서와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싫다고 표현하는 방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고양이가 싫은 행동에 대해 인정사정없이 깨물어 버린다면 집사는 "아~ 우리 아이가 이런 행동은 진짜 싫어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끝날까? 그렇지 않다. 그런 행동은 '버릇없음'으로 해석이 되어 "문제 고양이"가 되어버린다. 성격이 원래 뾰족한 아이도 있지만, 그런 아이조차 함께 사는 집사에게는 손톱과 이빨을 보이지 않는 법인데, 이렇게 심하게 하는 경우 그러한 버릇을 고치려고 들것이다.


 우리 역시 싫은 것은 싫다고 단호하게 표현을 해야 하지만, 결코 무례하게 표현해서는 안된다. 물론 상대의 표현에 응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싫은 것을 상대는 좋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 상대를 공감해 주면서도 "나는 그것이 싫은데 이유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말해주겠노라. 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 부분은 너무 힘드니 배려해 주기 바란다" 정도로 이야기해 두는 것이다. 처음 만났기 때문에 상대도 어느 정도 낯선 상황에 긴장하고 있을 터. 따라서 '배려해 달라'는 말에 화를 터뜨리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여러 번 싫다는 표현을 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서 상대가 나에 대해 알아주고 이해해 준다면, 나 또한 상대의 그러한 면을 배려할 수 있다면 그야 말고 서로 공기처럼 편한 상대가 되어주지 않을까.

오늘도 고양이에게 한 가지 배워간다.

싫다고 말하되, 너무 꽉 물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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