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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Dec 11. 2023

눈치 보는 고양이

사랑한다면 눈치를 보세요. 

책을 읽을 때는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자기 전에 내 손에는 늘늘 책이 들려있다. 내 눈은 온이나 흑미보다는 책. 


  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은데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는 시간에 책을 보는 것을 아이들은 의아해하며 저마다의 매력을 뽐낸다. 하지만 내가 책을 들고 침대에 엎드리거나, 책상에 앉으면 아이들은 은근한 눈빛을 보낸다. 어허! 그런 눈빛은 좀 아니지.. 


  어떤 때는 책 위로 스리슬쩍 한 발을 떡 하니 걸치고 내 얼굴을 쳐다본다. 마치 "이래도 나를 안 봐?" 하는 얼굴이다. 이 녀석.. 말만 할 줄 알면 아마 다양한 말을 할 것 같다. 


"이봐 집사! 집에 있는 시간도 적으면서 나 좀 보지?"

"우리를 읽으라고! 책을 읽지 말고~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고양이부터 시작하는 거 몰라?"



 


사실 이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책을 읽고 싶지 않다. 공손한 손끝. 요염한 입매. 이 아이들이 아무리 장난을 치고 말썽을 부려도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이런 팔불출이기에 책을 읽으려면 이 아이들의 매력을 애써 무시해야 한다. 얼마나 힘든지...  


 하지만, 고양이는 강아지와는 다르게 무턱대로 돌격하지는 않는다. 위에서도 말했듯, 스리슬쩍 책 위로 한 발을 올려보거나, 소리를 내보거나, 때로는 "엄마~"라고 말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그러면서 내 반응을 보는 거다. 처음에는 그런 소리에 얼굴을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며 "왜~~"하고 대답을 해 줬다. 그러면서 내 집중은 흐트러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대답을 해주면 하품을 하거나 자신 있는 포즈를 보여주곤 한다. 가까이 다가와서 만져달라고 하거나, 엉덩이를 두드려 달라고 한다.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차, 소리를 내거나, 나를 한 손으로 건든다. 2차, 눈을 맞추려고 한다. 3차, 뽀뽀를 해 온다.  이런 단계로 나의 눈치를 본다. 1차에서 내가 얼굴을 돌리고, 2차에서 함께 눈을 맞추고 3차에서 함께 뽀뽀를 하면 이제는 책을 읽거나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아이들과 놀아줘야 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싶을 때는 그런 1차부터의 단계를 싹 다 무시해야 하는데 이내 눈은 책을 보고  손만 온이의 꼬리를 쓰다듬거나 흑미의 배를 만지는 자세가 되어버린다. 어쩠던 아이들이 내 곁에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온갖 유혹을 참으며 책을 읽어야 한다. 


 아이들의 이런 눈치 보는 상황이 사랑스럽다고 하면 공감이 될까? 어린아이들처럼 고집을 부린다거나 책을 집어던지지 않는다. 동물이지만, 나름의 매너를 지켜주는 이 아이들의 그런 행동들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아마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 나와 비슷한 것을 느낄 것이다. 


사람을 알게 되면 처음에는 나름의 배려를 한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자신의 이런 행동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어떤지 상대의 얼굴을 보며 짐작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아는 것이 많아져서 그런지 어느 정도 생략을 해 버리거나 싫어할 줄 알면서도 자신을 봐줄 거라고 생각하며 무시한다. 그것이 쌓이게 되면 스트레스가 되고, 점점 만나기 싫은 상황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와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면 고양이의 이런 부분을 본받아야 한다. 상대의 얼굴을 자주 보고 상대가 좋아할지 아닐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눈치 보다'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눈치를 보는 행동은 배려와 관계가 있다. 상대가 기분이 좋았으면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평화로운 시간에 나도 함께 하고 싶은 것. 그것은 서로가 어느 정도 상대를 위한 눈치를 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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