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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Jan 01. 2024

때때로 숨고 싶을 때가 있는 고양이처럼

살다가 지칠 때는 고양이처럼 잠시 숨어있어도 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생 때도 하지 않은 공부를 하며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옆의 책장에서 소리가 났다.

내 책상 옆에 길게 놓여있는 책꽂이의 한켠에, 내 옆에 있기를 좋아하는 첫째 아들(고양이 온이)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소리다. 얌전하게 앉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온이는 곳곳에 숨숨집을 마련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내가 작업을 하고 있는 근처를 좋아하는 듯했다.


 행여 엉덩이라도 배길까... 얇은 천을 겹쳐서 깔아주고, 오픈되면 흑미에게 들켜 자리를 쉽게 빼앗길 것 같기도 하여 손수건으로 가려 주었더니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침과 저녁에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온이는 어김없이 찾아와 옆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심심하여 돌아다니던 흑미에게 발견이 되면 자리를 빼앗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는 주로 온이가 앉아서 오래도록 나오지 않는다.


 평소 사이가 좋은 두 아이이지만, 성격이 매우 활발하고 어린 흑미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도 이러니 흑미로부터 차단되고 싶은 온이의 마음도 매우 이해가 된다.


 유튜브나 책을 통해 알게 된 고양이의 성격 중에는 숨숨집을 좋아하고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여 그런 장소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생각보다 구석이 많고 여기저기 잘 눈에 띄지 않는 우리 집은 그야말로 온이와 흑미에게는 아주 적절한 장소인 듯했다. 하지만 흑미는 오픈된 곳을 더 좋아하는 반면, 온이는 이불 속이나 뚫려있으되 폐쇄된 곳을 좋아한다.

 

 한참을 혼자 있다가 아주 기분 좋다는 얼굴로 나와서 흑미를 찾곤 하는 온이의 모습을 보면, 때때로 나도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 않고, 되려 어딘가 다른 곳을 보며 멍 때리기도 하고... 지치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그런 때에는 내 머리가 과부하 되어있는 것 같다. 뭔가 생각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데, 다른 것들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마치 컴퓨터에서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그라미(로딩 중~~~)처럼 내가 그런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깨달은 것이 아마 40에 접어들고부터였던 것 같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나는 나 혼자만의,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는 한다. 장소는 집이기도 하고, 카페이기도 하다. 때로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고양이들도 버거워서 카페로 도망한다.


 고양이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함께 하며 만져주고 눈 맞춰 줘야 하는 시간도 있기 때문에 나의 감정의 시간과 그 아이들의 감정의 시간이 틀어지면 매우 힘들어진다.


 나는 그 시간을 나의 "비움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공부를 하며, 고양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힐링을 하며, 사람을 만나며, 책을 읽으면서 가득 채워진 나... 그러다 보니 너무나 가득 차서 나의 감정이 어떤지 느껴지지 않아서 결국 멈추어서 끼긱끼긱 대는 것은 아닐까.


 온이는 그걸 아니까 온이의 "비움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흑미도 나도 없는 곳을 여기저기에 정해두고 숨어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흑미가 내 옆에 와서 방해를 놓았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시간을 방해하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나의 "비움의 시간"을 확보하며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면서 사는 것이 삶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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