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질이 외모에 가려져 버릴 수도 있다.
털이 붕숭붕숭한 우리 온이는 어릴 적부터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양쪽으로 접힌 귀부터가 너무 매력적인 온이는 조용하고, 재촉하는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고양이 특유의 이곳저곳을 갉아먹거나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야 말고 당시 공부방을 하고 있던 우리 집에 특화되어있는 고양이였다. 살짝이 올라간 두 눈과 앙증맞은 입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윤기 흐르는 털. 그리고 밤에 보면 이 아이의 하얀 아이라인이 도드라져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그야말로 우리 집에서 가장 예쁘고 매력적인 아이. 물론 지금도 이 외모는 전혀! 흐려지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해야 하는 낮시간에 온이는 안쪽에 있는 아이의 방에 있었다. 정말이지 조용한 아이방. 온이는 나오려 하지도 않고 꿋꿋하게 그 방을 지켰다. 수업을 하는 2시~6시. 그 시간 동안 아무도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지 몰랐다. 전에 동생네 강아지를 잠깐 맡았을 때와는 천지 차이. 자기만 바라봐 줘야 하던 그 강아지에 비해 온이는 정말 천사가 아닐까. 우리 집에서 키우기 딱 좋은 반려동물이었다. 그리고 6시에 열어주고 간식을 주고 나면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런 소리가 났다.
"최~~~~~~~~~~~~~~~~~~~~~~~~~~~~~~~온! 또 저질렀어!!!!!"
뭐를?? 온이는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조용히 아이의 노트북 충전선을 끊어먹은 것이었다. 아하...
얌전한 성격의 온이는 방에서도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 후로도 온이는 꽤 여러 번의 충전선을 끊어먹었고 (충전선의 느낌이나 굵기가 온이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여러 번 아이의 비명을 들어야 했다.
온이가 지금껏 크면서 크게 집에서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흑미가 들어오고 나서는 점점 드러나는 성격과 야성미? 가 보였다. 아무래도 고양이는 고양이인 듯. 영역싸움을 하려는 스트릿출신의 흑미(딱 보기에도 장난기와 건방짐이 돋보인다)를 그대로 제압하는 팔뚝.
온이가 지면 어떻게 하나... 온이가 스트레스받으면 어쩌지... 하는 우려는 이미 저 멀리 가버렸다. 박힌 돌 노릇을 톡톡히 하는 온이를 보며 이 아이는 외모가 저 성격을 가렸구나... 생각했다. 온이는 얌전하지만, 그렇다고 착한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성격이었던 것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았던 것도, 별 다른 말썽을 부리지 않았던 것도 그냥 온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었다.
흔히 동영상을 보면 고양이는 '이런 성격입니다~ 저런 성격입니다~' 하고 단정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 집의 전혀 다른 두 고양이만 보더라도 고양이들의 성격은 정말 재각각이다. 말썽쟁이 흑미는 정말 제 멋대로 할 것 같지만 내가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널거나, 심지어는 책을 읽어도 자는 시간 외에는 내 옆에만 있으려는 껌딱지이다. 그에 비해 온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고 밖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이 추운 날씨에도 몇 번이나 베란다 문을 열라고 명령을 한다. 지인들에게 이런 아이들의 성격을 말하면 다들 놀라 한다. 얼굴만 보면 온이가 더 어리광을 많이 부릴 것처럼 보인다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의 고양이... 그 외모 뒤로 숨겨져 있는 아이들의 본질은 캐내면 캐낼수록 매력적이다.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지만 개인적인 대화는 잘하지 않았던 지인이 있다. 그분의 가족과 함께 식사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분으로 말하자면... 외모는 평가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호감형은 아니다. 키도 큰 데다 덩치도 크고 배도 엄청 나온 데다가 머리는 벗어졌고, 눈은 양쪽으로 찢어져있다. 얼굴은 하얀 편이지만, 피부는 그리 좋지 못한 남성분이다. 외모로만 보았을 때는 일부러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싶지 않다. 진짜로... 젊었을 때는 중국에서 일본 분들과 함께 생활을 하며 생활을 했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제도 했던 것 같다.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그런 다양한 경험들이 자랑인 듯 아닌 듯 나오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외모도 많이 바뀌었고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것도 있고 하더니 결국은 약간의 우울증도 왔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인 일도 있겠지만...
하지만 이 분은 그런 외모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나눌 때마다 좀 신선함을 느낀다. 젊을 적에 어떠한 업적을 많이 쌓은 사람일수록 고개가 뻣뻣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분은 이미 외모에서 약간 오만하지나 않을까 하는 오오라도 풍기고 있다. 그런데 이 분은 같은 무리에 있던 다른 남성분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나에게 일부러 말을 건네온다. 좀 대화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질문을 할 때도 있지만 일부러 나를 대화에 넣으려는 배려가 보인다. 공통점이 없는 내가 함께 있는 것에 마음을 쓴 것이리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나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 주고 그에 맞는 맞장구를 쳐 준 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 생각이나 말이 맞다고 생각이 들면 몇 번이고 반복하며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와의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의 외모보다는 좀 더 진지해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남았다. 아, 이 사람 이런 부분이 좋은 거구나. 그래서 아내분이 이 사람을 선택했겠군... 그리고 아마 친구들도... 외모가 이 사람의 본질을 가리고 있는 거였구나. 잠시 잠깐만 가지고는 판단될 만한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상대의 외모를 먼저 본다.
그리고 잠깐의 대화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과 맞는지 맞지 않는 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외모에는 그 사람의 본질이 반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 주름과 나잇살등으로 가려져 버렸을 때는 말이다.
먼저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판단은 가장 나중에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분으로 인해 나는 좀 더 나를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상대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는가. 상대의 말을 끝까지 잘 귀 기울이고, 무의식 중에라도 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이다.
또 하나. 지금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동기부여가 되었는데,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행동하고 말을 해 도 내 외모가 나의 의도를 가릴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아주 장난꾸러기 같은 외모의 흑미가 나를 도우려 싱크대 위로 올라올 때, 물론 나는 흑미의 마음을 알지만 그 행동만을 보고 또 말썽을 부린다며 고양이를 질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어떤 외모를 하고 있고,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가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좀 더 건강한 몸과 정신을 위해 오늘도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