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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Jan 10. 2024

고양이는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아

무조건의 배려는 병들게 할 수 있다. 


 둘째 고양이 흑미는 이제 7개월이 지나고 있는 스트릿출신의 아기고양이이다. 

이 아이가 보이는 모든 행보는 매일이 새로운데, 첫째인 온이와는 정반대인듯한 성격 때문이다. 온이는 따뜻한 것보다는 차가운 것을, 폭신한 것보다는 바닥의 느낌이 느껴지는 딱딱한 곳에 이불을 깔아주거나 이불을 덮어주면 좋아한다. 그에 반해 흑미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고, 이불에 쌓여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불속에 일부러 넣어두면 온이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 안에서 쉬다가 잠들곤 했는데, 흑미는 이불에 넣어두면 바로 나와버렸다. 


 이렇게 다른 둘이지만 오늘 아침에는 온이가 좋아하는 상자에 덮어둔 이불이 이상했다. 이불옆에 앉은 온이가 안절부절못하고 자꾸 이불속을 들여다본다. 이불이 울룩불룩한 것이.... 다가가 보니 흑미가 들어있던 것.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흑미가 신기한 건지, 자기 자리를 빼앗긴 것에 삐진 것인지 온이는 이불 덮인 흑미옆을 떠나지 않았다. 뭐, 그냥 장난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이불속에서 흑미는 한참을 나오지 않고 밖을 염탐했다. 


 성격이 다른 이 두 아이는 처음에는 서로 다투기도 했지만 이제는 각자의 자리를 아는 듯, 자리싸움보다는 함께 공존하는 법을 배운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남의 자리도 넘보고 싶을 때가 있다. 늘 구석자리만 고집하던 내가, 날씨에 따라 바깥쪽 자리에 앉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바깥쪽 자리를 좋아하던 누군가에게는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자주 가는 카페나, 도서관 같은 곳에서 인사는 하지 않지만 늘 보는 얼굴이라 익숙한 그 사람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 때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다른 이에게 양보만 해서는 작은 즐거움이나 기쁨마저도 포기해 버린다면 삶이 매우 삭막해지지 않을까? 


 온이가 자기 자리를 빼앗은 흑미에게 화를 내지 않았고 흑미의 어리광을 받아주었기에, 흑미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좁디좁은 우리 집에서(바깥보다는 매우 좁기에) 나름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자리를 빼앗긴 온이 역시 그 자리만 고집하지 않았기에 집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면서 자기만의 또 다른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제삼자 입장에서 이 아이들을 보았지만, 흑미는 가지고 있는 약간의 이기심으로 작은 행복을 손에 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을 말이다. 새로운 것은 자극적이고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흑미는 그런 것을 찾은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너무나 많은 배려를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이 남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아이에게, 남편에게, 엄마에게, 아빠에게, 동생에게, 친구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계속해서 나의 작은 행복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희생하고 배려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의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고 누군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의 행복도 챙겨야 한다. 


나의 작은 희생으로 인해 주위 사람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의 희생은 무엇보다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잘 구분해야 할 것은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지, 앞으로도 이 일을 떠올리며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를 구분해야겠다. 당장의 희생이 일견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건 어쩌면 내 인생을 좀먹고 남만 좋은 일을 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생선의 뼈를 발라주면서 "엄마는 뼈에 붙어 있는 것을 먹으면 돼. 그게 정말 맛있거든~" 

하고 말하면 아이는 엄마는 정말 '뼈에 붙어있는 살점'을 좋아하는 줄 안다. 그런데 정말 그게 사실일까. 그렇게 크는 아이는 나중에 커서 자신의 친구나 애인과 식사를 할 때 엄마에게 살을 뗀 뼈만을 건네면서 "이거 엄마 좋아하시죠?" 하고 말하게 될 수 있다. 상상해 보라. 그것은 엄마를 정말 아끼는 행동으로 보일까. 그런 상황에서도 엄마는 전에 했던 희생을 행복이라고 느낄까.. 


 지금의 작은 행복들은 어쩌면 나중에 더 많은 행복들을 줄 수 있는 것들이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행복들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나의 경우 커피에 내려앉은 크레마나 조용히 책 읽는 시간 같은 것이 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오늘은 또 어떤 작은 행복을 발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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