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얌전히만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 4시.
방문이 있는 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사자의 울음소리... 같은 흑미의 골골송...
몸에 얼굴을 갖다 대야만 들리는 온이의 골골송에 비해 흑미는 온몸으로 골골송을 부르는데 특히 이렇게 새벽 4시가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골골송을 부르며 나를 깨워온다.
"엄마,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어서 간식이라도 달라고! "
이 아이는 아무래도 시계를 볼 줄 아는 것 같다.
온이도 함께 들어와 이제는 "냐앙 냐앙~~"하며 흑미의 말에 동조한다. 이 둘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형제지간이다.
잠깐의 간식타임이 지나고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과 아침루틴을 하나씩 해결해 간다. 바쁜 오후시간에는 읽지 못하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오늘은 무엇을 하며 보내면 좋을지 고민을 한다. 그 고민 속에 오늘은 운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밥은 얼마나 먹고 저녁은 정말로 셰이크로 마무리를 지을 것인지 말 것인지.. 이런 어찌 되든 상관없는 그런 생각들을 한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약간의 힐링과 의욕을 주는데 하루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필사를 하고 있노라니 가까운 곳에서 '투닥투닥'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후 '톡톡톡톡, 타타타타타' 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고양이 집사라면 아는 소리. 바로 아이들의 우다다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6시 30분쯤 아이들의 우다다는 시작된다. 방이 3칸이 있는 우리 집의 거실 한쪽 끝에는 아이들의 스크래쳐와 흑미가 좋아하는 비닐(사료가 들어있던 쿠팡의 포장비닐)을 깔아줬다. 그 끝부터 다른 한쪽 끝의 방에까지 신나게 한바탕 뛰고 있다가 슬슬 아이들은 링 위에 오른 캥거루들 같이 서로를 견제하며 움직임을 살핀다. 그러다가 흑미가 먼저 온이의 머리 쪽을 노려 달려온다. 온순한 성격인 온이는 처음에는 그대로 당해주지만 점점 수위가 높아가는 흑미의 움직임을 그대로 봐주지는 않는데, 중간부터는 형인 온이 스스로가 자존심이 상했는지(전지적 집사시점) 흑미를 온 힘을 다해 '퍽!'때린다. 이때에도 두 아이는 발톱을 꺼내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입힌 상처는 지금까지 없어서 그저 형제들의 귀여운 다툼정도로 나는 치부하고 있지만 정말이지 '퍽!'소리가 나면 한번 돌아보게 된다.
"또 흑미가 까불었어? 더 때려, 아주 다시는 못 까불게!"
이러면서 카메라를 갖다 대면 온이는 슬슬 나의 눈치를 보며 장화 신은 고양이와 같은 착한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두 손은 애초에 다소곳이 내려와 있다.
아이들의 다툼장면은 자주 목격하지만 이 아이들, 휴대폰을 갖다 대면 다툼을 멈춘다. 온이와 흑미의 귀여운 목소리도 동영상으로 담고 싶지만 그 귀한 장면은 쉽게 담기지 않는다. 고양이 유튜버들은 정말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서로 그루밍을 해주며 둘도 없는 것처럼 구는 때도 있지만 다투기도 자주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그렇게 포지션이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은 보고만 있어도 너무나 행복하다.
늘 평화로운 삶을 우리는 바란다. 하지만, 약간의 곡절이 없다면 지금 느끼는 평화로움을 평화로움으로 인지할 수 있을까. 삶에서 어느 정도의 자극을 주고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신과의 싸움의 곡절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계속해서 쪼개서 읽고 있는 책 <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힘>에 보면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지 않은 습관은 길이 나 있지 않은 잡초 길과 같아서 그 길을 처음에는 가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다시 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습성도 있기에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길이야 말로 목표지향적인 길이기 때문에 불편하더라도 자꾸 그쪽 길을 택해서 가야 한다고 한다.
싸움은 외부와의 싸움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의 싸움. 이것이야 말로 자기 발전으로 가능 목표지향적인 길이 아닐까.
온이의 성격에 흑미와 다투는 것은 그리 유쾌하고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다퉈줘야 흑미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형의 위치도 알게 될 것이고, 온이도 흑미에게 계속 맞아주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위치도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로에게 좋은 다툼이라는 것이겠지. 말미에 내 눈치를 보는 온이가 좀 안쓰럽기는 하다. 그 눈이 "엄마... 흑미 좀 말려줘요.. 짜증 나요"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온이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엄마로서 내가 도와줘야 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온이도 알고 있듯, 나도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싸움도 있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싸움도 있음을 인정하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