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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Mar 06. 2024

조용한 음악과 함께 잠이 든 고양이

인생 중 하루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저녁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늦은 오후

좋아하는 간식을 잔뜩 먹은 고양이들은 오후에도 우다다 놀이를 즐기다 어느덧 조용해졌다. 고양이들도 나도 좋아하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고 책을 읽다가 옆을 보니 한참 낚시놀이를 즐기던 흑미가 널브러져 잠이 들었다. 이 아이도 오늘은 고된 하루였을까. 아니면 모처럼 일찍 틀어준 보일러로 따뜻해진 바닥이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어린아이가 낮잠을 자는 것 마냥 배를 부풀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흑미의 배와 조용히 감겨있는 눈꼬리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전쟁 같았던 육아가 끝난 지도 벌써 5년 넘게 흘렀다.  홀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으로, 유치원으로, 가정으로 뛰어다니던 지난날이 이제는 그저 꿈만 같다. 다 커버려 자신만의 길로 들어서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육아라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길고도 짧은 기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저 그 시간을 너무 생각 없이 보내버렸던 것은 아닐까 후회와 허망함이 교차한다. 


 SNS에서 육아맘들이 육아를 하며 느꼈던 것들을 올리거나 선생님들이 올리는 "우리 아이 교육법"과 같은 콘텐츠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무지했었나 후회해 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지난날을 되돌릴 힘이 없다. 당연하지만 이제 와서 둘째를 낳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 고양이들, 온이와 흑미가 나름 편한 나의 육아 대상이 되었다. 


식사를 챙겨 주고 출근을 했다가 퇴근을 하면 아이들은 각각의 기다림의 표현을 하며 다가온다. 그러고는 얼굴과 엉덩이를 만져주고 눈을 맞춰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나는 "너희들이 이렇게 잘 기다려 줘서 기쁘단다"하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오늘은 유난히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가슴 아프게 들려왔다. 읽고 있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끔찍이도 사랑했던 강아지가 화재로 죽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강아지는 불이 난 집에 목줄로 묶여 있었기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주인공은 자신이 죽고 강아지는 살렸어야 했다며 가슴 아파했다. 나는 눈물이 계속 나왔다. 그런 장면보다도 더 슬픈 헤어짐을 다른 소설들에서도 자주 읽었다. 하지만 오늘만큼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도록 운 것은 처음이다. 영화를 통틀어서... 나이가 눈물샘도 망가뜨려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바쁜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아직 준비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와의 '헤어짐'이다.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의 아이...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직접 그리기 위해 가족보다는 사회로 나아간 그 아이... 마음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일까. 혼자 있는 시간. 이렇게 '혼자'라는 생각이 짙게 드는 그런 날이면 '헤어짐'이라는 단어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지난날 나는 많은 만남과 많은 헤어짐을 겪었다. 아마도 앞으로도 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겠지. 자연스러운 헤어짐도 있겠지만, 부자연스러운 헤어짐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헤어지기 싫어서 두발을 버둥거리며 떼를 쓰던 때처럼 이미 내 가슴속 어린 나는 두 발을 차고 있겠지만 현실은 그저 눈물만 내보내고 있다. 헤어지기 싫다. 헤어지기 싫다. 


 다른 때 같으면 그러려니... 하고 덤덤했을 나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나면 마음도 후련해지고 기분도 가벼워진다. 내일부터 또다시 나는 덤덤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조금은 비웠으니까. 


 우는 것은 지는 것 같지만 내일을 이겨낼 힘을 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부터 인가 나는 눈물이 흐를 때면 닦지 않고 계속 흘려보낸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슬픔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그러면 또 당분간 웃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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