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나무를 본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나무처럼 생각도 변화합니다.

아침 산책을 시작하고 여름이었다가, 가을이 되었고, 그리고 겨울 그리고 봄,, 그리고 다시 여름이 되었습니다.

작년 늦여름에 시작된 저의 아침 산책의 목표는 "일단 100일만 채워보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가 고꾸라지려 했을 때마다 성공했던 이력이 아까워서 다시 일어나곤 다시 일어나곤 했습니다. 목표가 그렇다 보니 주변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는커녕 어떻게든 이렇게 걷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습니다. 매일 매시간을 무엇인가를 하면서 지낸 저는 걷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시간이 그저 땅에 버리는 아까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100일이 되었을 때에도 그날을 채웠다는 기쁨은 있었지만 신체적으로 살이 빠졌거나 더욱 건강해졌다는 느낌이 없었으므로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연하겠지만 가족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걷는데 왜 살이 안 빠져?? 많이 먹고 있는 거 아냐?"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처럼 채운 세 자리 숫자를 이제는 1년을 채우고 싶었고, 더 나아가 1000일이 넘으면 더욱 멋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러한 숫자뿐 아니라 저의 동기부여가 되어준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나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제가 가는 길목에 위 사진에서 보이는 가지만 앙상한 나무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물길 곁에 심겨 있는 이 나무는 가지만 앙상했기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하는 미련한 나무처럼 보였습니다.

나무의 옆에는 풀들만 무성한데 이 나무 만이 물길들 곁에 심겨 있지만 홀로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리가 아깝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살다 보면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이 될 때가 있어요. 내 주변에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의 인생은 멋지고 재미있으며 쏟아부은 노력만큼 되돌려 받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홀로 그 사이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왜 나만 죽음으로 향해가는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일까.. 왜... 나만...


그래도 매일매일 계절은 변하고, 비도 오고, 눈도 옵니다.




가지만 앙상한 이 나무도 멋들어지게 채색된 하늘과 함께 있으니 멋있게 보입니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어야 하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왜 시(市)에서는 이 나무를 그냥 놔두는 것일까 하고 혼자 오지랖도 부려 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하늘이 봄을 알리는 냄새와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언제나 같은 시간 집을 나서지만 이제는 꽤나 밝은 얼굴을 보여주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이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깨닫습니다. 내가 얼마나 바 보였는지를 말이죠.


나무는 죽어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양분을 저장해 두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가지가 무성했던 만큼 그 가지마다 아름다운 이파리들을 돋아내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인지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혼자만 안쓰러워했던 지난날의 저를 자책하면서 시를 쓸 정도였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하지만 다행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시(市)에서 했더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나무에게 감사했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나무가 안타까워서 매일 아침 이 나무를 보기 위해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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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100일이 넘고 이렇게 200일이 넘으면서 매일의 루틴이 잡혀 나가기 시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아침마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자연의 모습 속에서 새로운 글감을 발견하고 깊이 생각하게 되고, 또 나에게, 나의 상황에 적용시켜 보다 보면 어느새 긍정적인 생각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항상 같은 하루가 아닙니다.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하루이지만 일과가 비슷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의 나는 분명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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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늘은 어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오늘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죠. 아니, 어쩌면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일이 돈벼락을 맞는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거나하는 뭔가 굉장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뭐 어때요? 내게 좋은 일이면 되는 것 아닐까요?


회사로 향하는 길에 귀여운 강아지를 발견한다거나, 어제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하트 모양을 한 초록색 귀여운 이파리를 본다거나 하는 것 말이에요.


우리는 그런 것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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