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귀여운 제자야.

몇 년 전에 헤어진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 나의 귀여운 제자야. 건강하게 잘 있지? 네가 잘 있는다는 이야기는 주변 선생님들로부터 듣고 있단다.


처음 너를 만났을 때는 한 줌만큼밖에 되지 않는 몸으로 방긋방긋 웃으면서 다가와 "이것은 무슨 글자예요?" 하고 물었던 것을 나는 아직도 눈에 선하게 기억한단다. 그렇게 3개월도 안되어 한글을 떼어가는 너를 보면서 꽤 똑똑한 아이를 맡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했어. 그때 주변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는 너의 모습에 나는 감동을 받고 있었는지도 몰라. 칭찬만을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자신이 한글을 읽게 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했고, 많은 호기심이 너를 감싸고 있음을 나는 느꼈으니까.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어쩌면 너는 너의 값어치를 올리면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너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던 걸 수도 있었겠어. 너는 그 작은 몸으로 주변의 변화를 느꼈을지도 몰라. 아이들은 그런 기류에 민감하다고들 하니까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가 내주는 숙제를 너무나 잘 해내고 있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내주는 국어 수학 숙제뿐 아니라, 너의 마음이 커지기를 바라며 내준 작은 글짓기 숙제까지도 너는 너무나 잘 해내 주었지. 그 작은 손으로 척척 해 내면서 나의 초인종 소리에 엘리베이터 앞까지 맨발로 쪼르르 나오는 너의 모습에 나는 너를 안아주지 않고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단다.


집안의 소식을 할머니께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는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 가슴이 아팠어. 하지만 나와 너는 그저 선생과 제자인 사이니까 때때로 챙겨주는 간식과 칭찬밖에 해 줄 수 없었어.


그거 아니? 너에게 공부에 소질이 있는 것을 안 할머니가 같은 공부를 여러 개 시키고 계셔서 나는 속으로 할머니를 참 많이 미워했단다. 어쩌면 그렇게 다그치는 것이 마치 우리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하지만 할머니는 네가 다른 아이들에게 눌리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더 그렇게 호되게 했는지도 몰라.


날이 갈수록 너는 공부를 더 잘하게 되었어. 물론 너는 다른 것들에도 관심이 많아서 책도 많이 읽었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내가 오히려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이 될 때도 있었단다. 아직 초등학생밖에 안된 너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어른인 나는 왜 제자리걸음만을 하고 있냐면서 말이야.


네가 쓴 시나, 독후감은 도무지 너의 나이의 남자아이가 쓴 것 같지 않게 멋있었어. 물론 그런 것들도 할머니의 손길이 느껴졌지만 나중에는 너 스스로도 잘 해낼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내 나름 칭찬을 듬뿍 해 주었지.

학교에서 100점을 맞아 왔을 때에도 나는 정말 너무나도 기뻤단다. 그건 너의 노력의 결실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러다가 내가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너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 때는 너의 이후 모습을 함께 하지 못해서 굉장히 아쉬웠어. 하지만 네가 잘해 낼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단다. 어릴 적, 세상을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았던 너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거든.


살면서 사람들은 참 많은 일을 겪는단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옳은 일이라고 굳기 믿었던 것들이 옳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기도 하고, 죽도록 싫었던 사람이 좋아지기도 하고...


근래에 너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으면 너무 안타깝기도 했어. 내가 그때 너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지.

너는 어떻게든 너의 숙제를 스스로 풀어내야 했으니까. 그건 나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란다. 그렇지?

사람은 각자 자신의 그릇을 이고 살아간단다. 그 그릇에 무엇을 넣을지, 얼마나 넣을지는 자신이 선택해야 할 일이고, 그 그릇의 무게를 이겨내는 것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약간의 흔들림은 있지만 너는 꼭 그 그릇의 무게를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해. 누구나 크던 작던 방황하는 시기는 있단다. 그 방황 때문에 인생을 망치지는 않아. 그러니 너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바라보길 바라.


주변에 휘둘리기보다는 네가 스스로 너와 마주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아고.. 꼰대 같은 소리를 주절주절 해 놓았네. 하지만 너에게 꼭 한 번은 이렇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를 쓰고 싶었어. 내가 많은 아이들을 만나보았지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중에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줬으면 해.


네가 좀 더 커서 더욱 멋진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길 바란다. 분명 너는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럼 늘 건강하렴~ 몸도 마음도..







-널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학습지 선생님으로부터 -







이 글은 제가 사랑했던 제 회원 아이의 이야기를 다른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쭈욱 머릿속에 담고 있던 편지글입니다. 제가 다른 일을 하느라 헤어지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그러한 헤어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저 학습지 선생에 불과했으니까요 학습지 선생은 자주 바뀌는 거고 고작 해 봐야 1주일에 한 번이니까...

하지만 저는 그 일을 하면서 온 마음을 바쳤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요. 아이들의 첫 선생님이니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의 인생에서 크게 기억을 하지는 못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의 저와의 만남이 따뜻하게 마음에 남아 건전하고 올바른 아이가 되는데 거름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서 다소 못된 아이로 비칠 수도 있고, 한없이 착한 아이로 비칠 수 있지만 지금의 아이의 모습은 어느 쪽으로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한 명의 어른을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진심을 다하여 아이와 미래를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드시 위 편지의 주인공도 잘 자라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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