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맞춰 나간 다는 것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울고 또 울었던 지난 시간

참 오랜만에 모이게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그 모양이 어떻든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에 매우 감사하며 서로가 신기해했습니다.


제 친구 중에는 재혼가정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혼 가정이나, 재혼가정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기에 그녀가 그 힘든 환경에서도 자신의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를 가늠하며 응원의 말을 던졌습니다.


그녀는 정말 너무나 힘들었는데, 본인의 아이와 상대의 아이가 각각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나 책 속의 이야기들로 그녀의 지금의 안정된 삶과 아이들의 미소가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논하고자 한다면 수박 겉핥기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나 다행이고 대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했던 중학시절이 있었고, 함께하지 못했던 고등 시절이 있었으며, 각각 다른 나라에서 노력했던 유학시절이 있었습니다. 각각 일본에서, 캐나다에서, 독일에서 나름의 꿈을 좇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세월이 궁금한 것인지.. 그저 오늘날 이렇게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던 건지 저는 한두 달에 한 번씩은 꼭 연락을 하며, 몇 년에 한 번씩은 만남을 가져왔고, 결국 이 날에는 우리 6명의 친구들 중, 아직도 연락이 되는 세 친구가 만난 것입니다.


그랬기에 이 친구의 미소는 더욱더 아름답고, 대견하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만난 커피숍에서


그 친구의 말 중에 공감이 갔던 한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연애시절부터 친구를 유난히 잘 따르던 상대의 아이, 혼자이던 아이가 이제는 그 집의 장남이 되었는데 그 아이와의 트러블은 예상하기가 힘들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느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이유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계란의 굽기 때문이었는데요.

아침식사로 준비한 계란의 굽기가 장남이 전에 할머니와 함께 먹었던 그런 정도와는 다른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의 입에는 제 친구의 계란 프라이는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답니다.


반숙을 좋아하는 제 친구와 친구의 아들은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구운 계란 프라이를 즐겨먹습니다. 하지만 장남 아이는 같은 반숙이지만, 처음부터 아주 작은 불로 구운 정말 야들야들한 계란 프라이를 즐겨 먹었던 것입니다. 차이를 아시겠어요?


게다가 아빠는 음식 투정을 강하게 제지하는 타입으로 아이의 투정을 보듬어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한 가족으로 이루어졌으니 더더욱 빨리 새로운 엄마와의 생활에 익숙해 지기를 바랐던 것이겠죠.


당시 아이는 많이 울었지만, 함께 맞춰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울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며 각자의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것들도 수용하여 계란 프라이의 요리법을 각각 달리하여 먹을 수 있도록 조율하게 되었다는 친구의 일화는 제게도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었는데요.


저도 한국에 와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5살 즈음 한국에 귀국을 하여 엄마와 살게 되었는데, 저와 제 아이도 계란 프라이를 좋아합니다. 특히 반숙으로 먹거나 생계란을 자주 먹었는데, 아마도 일본에서 살다 왔기에 계란밥을 즐겨 먹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촉촉한 밥에 달콤 짭짜름한 간장과 깨소금을 얹은 계란밥은 정말 맛있거든요.)


당시에는 일 때문에 바쁜 저를 위해 엄마가 아침을 차려주곤 했는데, 우리의 계란의 취향을 모르던 엄마는 자신이 먹던 대로 계란을 완숙으로 완전히 익혀서 꺼내 주시는 겁니다. 저야, 어른이기 때문에 때때로 완숙도 먹고 반숙도 먹지만, 저희 아이의 계란의 취향은 정해져 있어서 그 계란을 보더니 다소 놀랐듯 했습니다. 하지만 젓가락으로 노른자 부분을 찔러보더니 이내 울고 말았습니다.


노른자를 찔렀을 때 예쁘고 반짝반짝한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나오기를 기대했던 겁니다.


처음에는 아이의 그 모습에 "아니, 애가 주면 주는 대로 먹어야지!" 하며 화를 내던 엄마도, 바빠서 허둥대던 저도, 아이의 눈물과 "이건 계란이 아니야!"하고 울부짖는 통곡 소리에 다시 프라이팬에 불을 켰습니다.

그 후로 실수로라도 계란이 완숙이 되면 아무 말 없이 다시 구워냅니다.


계란 노른자의 로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함께 맞추어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친구의 아이도 계란의 야들야들함이 너무나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계란의 야들야들함이 갑자기 바삭함으로 바뀐 것이 서러운 것일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절대로 자신 때문에 아빠와의 새로운 가정생활이 삐걱대지 않기를 나름 각오하고 또 각오했는데 그깟 계란 프라이에 무너져 버린 것이 서글펐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맞춰나가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요..

각각 서로 다를 것임을 각오하면서도 다름을 알게 되었을 때, 무조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고 보듬어 주는 것...



우리들... 그냥 우리끼리 볼 때는 서로 하나도 안 변했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것들을 보면서 살아왔기에 서로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 버리고 "오호~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한 마디로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서로 맞추며 사는 것 아닐까요?


한 배에서 나온 형제, 자매 조차도 다른 것들이 많이 있고, 다른 생각들이 많이 있는데,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서 절대로 같은 수는 없죠.

그러니까 오늘도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맞추어가며 , 이렇게 또 만나 서로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로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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