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를 균형 잡아야 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도 생각해야 하지만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삶에 치우쳐 살면서 환경에, 다른 이에게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감싸기 위해 한동안 내가 했던 것은, 나만의 행복요소 찾기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는 것도, 나의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였고, 나의 자존감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지 아니한가. 하며 나의 필요를 내세웠다.


책을 읽는 이유도 비슷하다. 그저 다른 사람의 환경에 대해 간접적인 경험을 하면서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아직 나는 일어날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세뇌하였다.


글을 쓰면서도 나만의 행복을 찾으면, 으레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면서 행복할 것이라며 막연히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해가 쨍쨍 뜨는 날도,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날도 나의 눈에 띄는 행복요소들을 찾아다니고 생각하고 글로 옮겼다.


나의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어쩌다 인터넷 포털로 올라오는 뉴스거리를 통해 드라마 <우영우>가 재미있음을 알고 모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유튜브의 몰아보기를 통해 보았을 정도이다. (정말 재미있었다. 탄탄한 내용과.. 달달한 로맨스^^)

그러다 보니 올해 들어 두 번이나 맞게 된 장마의 피해가 그리도 심한지 뒤늦게야 알았다. 나는 아침에 몇 번을 일어나지 못했고, 냇가를 둘러싸는 나의 산책로가 빗물에 잠기는 정도의 피해밖에 겪지 못했으므로 <비 오는 날의 커피가 맛있다> 정도의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분들이 보면 웃기지도 않을 나만의 긍정적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피해가 없었더라면 나의 글이 좀 더 산뜻하며 머리를 가볍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예기치 못한 피해로 하루하루 고되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께는 이런... 머리에 꽃만 들어있는 바보 같은 녀석이라고 핀잔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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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생각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너무 다른 사람만을 생각하다 보면 내 마음이 썩어 문 들어져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너무 나와 가족만을 생각하면, 나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그 테두리가 너무 좁아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나누어주는 기쁨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세상은 나와 우리 가족만 있어서 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나 한국 드라마에는 참 여러 인물들이 나온다. 그저 주인공들과 그의 가족만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요즘 빠져있는 <우영우>만 봐도 그렇다. 우영우와 그의 아빠만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서로만을 신뢰하고 서로만을 의지 했다면 영우는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노력을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들과, 질투는 섞여 있지만 아닌 척 편을 들어주는 회사 친구.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우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곁을 내주며 영우의 연애사업마저도 응원하는 친구들.. 이들은 모두 영우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영우가 자신의 장애에만 집중하여 자신만을 치유하고자 했어도 그들은 그녀를 도왔겠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환경 내에서 끊임없이 그들을 생각해 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손을 내주었기에 가족만큼 사랑하며 서로 아껴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 드라마가 끝나더라도, 이야기 속에서 영우는 세상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주변의 친구들과 동료들 뿐 아니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할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음~ 멋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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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의 그런 마음을 닮고 싶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 강해, 나 외에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도우려 노력하는 것을 특히나 힘들어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학교 친구들과는 학교를 나오는 순간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고, 그 외에 친한 친구들은 한둘,

가장 많았던 시절이 내가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몰랐던 순진한 중학시절의 친구들 6명 정도. 그도 지금은 세명 정도만이 연락을 하고 있다 (세월을 생각해 보면 그도 대단한 것이지만...)


이제는 '나이로 친구를 찾을' 나이는 지났고 내 위로 10살, 아래로 10살은 친구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나의 치유, 나의 행복, 나... 나... 나만 생각했다. 그 시간이 꽤나 길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다소 이기적이다.

이제는 주변을 둘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써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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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것은 나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니까..


나만 생각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비해 타인을 생각했을 때 오는 행복이 조금 더 크다는 것과, 그 두 가지의 균형을 잘 잡았을 때 더 큰 행복이 눈덩이처럼 커 진다는 것을 이젠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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