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학습지 선생..

처음 학습지 교사의 길에 접어들다..

6년의 긴 일본 생활 끝에 아이와 함께 한국에 돌아온 나는 한국에서 아이 엄마로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의 꿈은 '일본어를 잘하는 것'이었고, '일본어 번역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나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 양쪽을 다 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좀 더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한국행을 결정했지만, 아직 그 무엇도 되지 못했기에 앞으로의 인생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답답한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는 내 앞에 지역신문을 내밀었다.

"깽이야. 여기 OO학습지에 한번 전화해 보는 게 어떻겠니? 여기서 선생님을 구한다고 하네?"

'선생님..?'

나는 당시 고등학생을 상대로 일본어 과외를 하고 있었기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의외로 나의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을 갖고 면접을 신청했다.


구 O과 같은 학습지를 학생으로서 해본 적은 있지만, 나의 직업 리스트에 학습지는 없었기에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는 너무나도 생소했다. 창고와 같은 곳에 진도별로, 과목별로 나열된 학습지들과 가르치는 일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보험회사에서나 볼 수 있는 그래프.. 그 모든 것은 생소했지만 "깽이 선생님"이라는 그 어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면접이라고 해서 나름 떠올린 기억 속의 면접은 일본에서 대입을 위한 면접시험이 있었기에 정장 차림으로 사무실을 방문했으나, 그러한 준비가 무색한 장소였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합격통보'와 함께 다음 주에 바로 수업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너무나도 쉬운 '합격통보'였지만 전화를 주신 지점장님의 첫마디 "깽이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 단어 때문에 나는 당분간 선생님으로 살아보자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들어가게 된 학습지는 한자 전문 학습지로, 일본어와 중국어가 특화된 곳이었다. 아이들의 학교 공부에 직접 영향이 가는 과목도 아니고, 아직 한글도 모르는 우리 아이에게 좀 더 즐겁게 공부 놀이를 접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선생님의 아이는 학습지를 교육비 없이 받을 수 있었기에 엄마인 나로서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 수업을 인계받았다.


수업은 인사까지 해서 10분이 채 되지 않은 수업이었고, 전 선생님이 지점장님이었기에 꽤나 쉽게 수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학습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매일 출근해서 교재 연구를 했고, 어떻게 하면 10분도 안 되는 수업으로 학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월급제가 아닌 수업한 교육비만큼의 월급을 받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아이에게 이 교재의 장점을 알려서 가입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일본어는 좋지만 중국어는 전혀 모르는 나는 매일 중국어도 공부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진 이 회사가 좋았다.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나의 공부에 대한 갈증도 해결해 주었으니까.


그렇게 처음 만난 학습지에서 약 1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던 것 같다. 파라솔을 펴고 홍보를 했고, 많은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 자격증도 땄으며, 상담을 했고, 매일 다른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10분 수업하고 5분 이동하고 10분 수업하고 5분 이동하고... 저녁은 거의 10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말 엄마가 함께 있었기에 아이를 키우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나는 좀 더 욕심을 내게 되었다.

이왕 학습지 교사로 일을 하게 되었고, 경력도 쌓이게 되었으니 좀 더 영향력이 있는 과목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다른 학습지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좀 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던 그 선생님의 권유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은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결정을 했지만, 아이에게 한자뿐 아니라 더 많은 학습과 관련된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는 점과, 한 아이에게 여러 과목을 가르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기존 학습지에 비해 보수도 많았다.


그렇게 이직한 곳에서 약 10년 정도 더 학습지 일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이제 내 이름에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 뿐 아니라 다른 날에도 편지를 받으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내 아이가 생기고 나서 아이가 예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의 동생은 아이들을 끄는 매력이 있어 지금도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지만, 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매우 서툴다. 지금도 노련하게 잘하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공부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지난 10년의 과정을 통해 적어도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는 사람, 아이와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어른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쩌다가 발을 들여놓게 된 학습지 교사일이 나의 생각의 냇물을 깊어지게 하고 있다. 어쩌면 운명적인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



"깽이야, 여기 OO학습지에 전화해보지 않을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태어나도 학습지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