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의 첫 번째 손님이다

아이들의 첫 번째 선생님이자, 첫 번째 손님이라는 사명을 가지고..

큰 회사로 이직을 하니, 약 한 달이라는 학습지 교사의 합숙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일 뿐만 아니라, 교육이념도 배워야 했는데 그 과정은 <신입교사 양성과정>이라고 불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을 이렇게 '선생님 양성과정'이라는 타이틀로 배우다 보니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좀 더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벌써 1년이라는 학습지 선생님 기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 과정에서 가르치는 방법이나 부모님을 대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학습지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이 과정이 힘들면서도 "선생님으로서의 사명감"이라는 것을 몸과 마음에 익혀지게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다니게 된 학습지는 아주 어린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꽤나 폭넓은 연령대의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한글을 떼기 전인 나이 약 4세 후반에서 5세부터 시작해서 중1 정도의 아이들까지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실제로 나는 기초 학습이 부족한 중3까지의 아이를 수업하기도 했었다.


"선생님들은 우리 미래를 짊어지고 갈 아이들의 엄마를 제외하고 첫 번째 선생님이자, 아이들만의 첫 번째 손님들이 되실 것입니다. "


이 말이 왜 그렇게 나에게 새겨졌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던 "학습지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회사의 의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라고 인식되었다.


'아이들의 첫 번째 손님...'

'아이들의 첫 번째 선생님...'


나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웃어줘야 하고,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뉴스를 통해, 아이 친구들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있고,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 날카롭게 행동하고 말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본인들이 소중한 존재이며, 자신들의 지적 호기심을 키울 의무가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직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아이들의 선생님이자 아이들만의 손님으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학습지는 '직업'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첫 번째로 맞는 선생님이자 손님이라면 마음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학습지를 오래도록 하다 보면 조금씩 그 생각은 바래지기도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할 때 나는 그때의 기억과 그 단어들을 꺼낸다.



001.png
002.png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변화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전달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인터폰으로 벨을 누르면 아이들이 "선생님~ 어서 오세요~"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버선발로 나와 나를 이끌 때, 내가 꺼내려는 교재의 표지가 궁금해서 내 가방에 넣은 손만 쳐다볼 때, 수업 중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쳐다볼 때, 엄마와의 학습상담 때 기웃기웃하며 함께 하고 싶어 할 때.. 그리고 다음 주를 기약하는 인사를 하며 아쉬워할 때..


그렇게 친해진 아이들과의 시간이 깊어지면 이런 아이도 있었다. 나를 위한 간식을 손수 준비해서 방에 들어오는 것이다.


"선생님은 제 손님이잖아요. 엄마 손님이 아니라... 그러니까 선생님의 간식은 제가 챙기고 싶었어요. 친구가 아니라 어른인 제 손님.. "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른스럽게 말을 하는 그 본새는 아마도 조용하면서도 정중한 엄마를 닮은 것이리라.


그 어머님은 평소 수업에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나를 위한 음료와 간식을 준비해 주셨다. 나는 수업 중에 물이나 커피 외에는 받지 않았는데, 아이가 음식에만 눈이 가서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어머님은 처음에는 접시에, 나중에는 지퍼백에 간식을 넣어주셨다. 그 모습을 아이가 본 것이다.


어머님의 그러한 마음과 행동은 아이에게 옮겨가서 이제는 수업 날이 되면 자신의 손님인 나에게 줄 간식을 손수 챙기는 것이었다. 그 마음이 너무 예뻤다.


그 아이뿐 아니었다. 점점 퇴색해 가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자신만의 방문학습지 선생님께 애정을 갖고 있었다.


포켓몬빵의 스티커나 모으고 있는 카드 한 장, 귀여운 메모지에 여러 번 지웠다 쓴 자신의 이름(글자를 모르는 경우), 연말, 연시마다 살포시 가방에 넣어두는 긴 장문의 편지들..


아이들은 말로 해 주지 않아도 내 마음이 어떤지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집 앞에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으며 속으로 외친다.


'나는 OO의 첫 번째 손님이자 첫 번째 선생님이다'


003.png
004.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쩌다 학습지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