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는 아이

수업을 해야 하는데 고개를 들지 않아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첫 수업을 인계받았다.


학습지 선생님이 바뀌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존에 있던 선생님이 퇴사하시는 경우와 기존 선생님이 너무나 회원이 많아져서 구역을 축소해야 하는 경우이다.


내가 받은 구역은 두 곳이었는데 한 곳은 정상적으로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전 선생님이 퇴사하시는 경우로 당연하지만 전 선생님께 인계를 받았다.


학습지에서의 회원 인계의 경우의 시스템은 이러한 방식이다. (내가 다녔던 곳의 방식으로 다른 곳과 다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1주 차에는 전 선생님이 회원에게 선생님이 바뀌심을 알리고, 2주 차에는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방문하여 인사시켜 주고, 3주 차에는 새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아이와의 시간을 쌓아간다.


내가 받은 구역 중 한 구역은 이렇게 원활하게 인계를 받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한 구역은 그렇지 못했다. 전 선생님이 어떤 이유에선지 갑작스럽게 퇴사를 하게 되어 나는 팀장님과 함께 구역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전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퇴사는 아이들에게도, 회원 어머님들의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선생님과의 사이가 좋았던 좋지 않았던 그들 간의 교류시간이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선생님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새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전 회사에 비해 연령대도 훅 낮아지기까지 한 새 회사의 회원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님의 따가운 눈초리와 관심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 역시 낯가림이 심한 사람 중 하나기 때문에 그것을 이겨내면서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야 했다.


정신없는 인수인계 과정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매우 곤란한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로, 아마도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 아이는 내가 방문을 했음에도 나의 얼굴은커녕 구두도 보지 않았다. 결국 엄마의 안내로 그 아이가 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 아이는 자신의 책상에 엎드린 채로 나를 맞아주었다.


엄마도 어쩔 도리가 없는지 그런 방안에 나만 덩그러니 놓고 문을 닫고 나가셨다. 나는 아이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아이는 과목을 한글과 수학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약 20분 이상을 이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는 거다. 일단 이 아이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 OO야~ 선생님 왔네~ 선생님 처음 보지? 오늘은 OO를 만나러 온 거야~ 선생님이 무엇을 가져왔는 줄 아니??"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라는 선배 선생님들의 팁을 받아 가방에 넣어온 작고 귀여운 지우개를 가방 속에서 바스락거렸다. 아이가 그 소리에 호기심을 가지라고 말이다.


'바스락, 바스락..'


아이의 귀가 쫑긋거렸다. 분명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았다. 엎드려 있었지만 눈동자가 이쪽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감각이 내 가방을 향해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아이... 절대 고개를 들지 않았다.


"OO야~ 선생님이랑 노래 부를까? 한글노래 부르자~ 선생님이 책도 재미있게 읽어줄게~ 수업하기 싫으면 오늘은 하지 말자~ "


하지만 아이는 요지부동.

10분을 넘게 그렇게 있다 보니 어머님이 들어오셨다.


"우리 아이는 낯가림이 심해서 전 선생님과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선생님께서도 천천히 친해지시면 될 거예요. 조금 기다려 주세요."


"네~ 그런데 좀 아쉽네요~ 수업은 그렇지만 얼굴이라도 보고 가면 좋았을 텐데.. OO야, 다음 주에는 선생님한테 얼굴 보여줄 거지?? 선생님 얼굴도 좀 봐주고~ 오늘은 OO위해 가져온 선물 엄마 드리고 갈 테니까 엄마한테 나중에 받으렴~"


그렇게 첫 수업은 아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주도 나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유치원이나 학교 선생님이라면 아이와 친해질 시간도 충분하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겠지만, 나는 1주일에 한번 그것도 20분밖에 만나지 못하니 마음을 열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 시간을 짧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이겠지.. 게다가 학습지의 경우 과목당, 시간당 교육비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회원 어머니 입장에서 두 과목에 6만 원의 회비를 냈다고 한다면 한번 수업에 15,000원을 내는 꼴이다. 물론 교재비용이 있기 때문에 내가 받는 수수료는 그것의 반도 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고, 나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그 돈이 아깝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꿈에서도 그 아이가 고개를 숙인 채로 나왔으니, 내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뜻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스스로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엄마와 아빠가 사랑을 해서 타의에 의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런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 먹고 놀고 자고 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라고 강요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한 사람 두 사람씩 인간관계를 넓혀 가고, 점점 세상에 대한 것들을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들도 아직 어린아이들이 직접 선택하는 것이 아닌 어른들에 의해 선택이 되곤 한다.


다행히 어른들의 그러한 선택이 마음에 드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이 아이처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싫은 아이들도 있는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그 아이와는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채 헤어져야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그 만남은 아쉬운 기억으로 내 머리에 남아있다. 나는 만남과 헤어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첫인사를 하고 헤어지게 되었을 때는 그동안 감사했노라는 마지막 인사를 되도록이면 하고, 받고 싶어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아이들에게 종종 연락이 오기도 한다.


이제는 많이 컸을 그 아이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도 낯가림이 심할까... 친구는 많이 사귀었을까..? 마음에 맞는 선생님은 만나게 되었을까..


지금 만나면 나도 말해주고 싶은 게 하나 있다.


"OO아, 선생님도 낯가림이 심해서 네가 고개 숙이고 있을 때 나도 그러고 싶었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아이들의 첫 번째 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