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아이들은 괴물이 된다.
비 오는 날은 학습지 선생님이 괴롭다.
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Sep 4. 2022
학습지 일을 하면서 두려운 날이 생겼다.
바로 비 오는 날이다.
원래도 비 오는 날보다 눈 오는 날을 더 좋아하는 나였지만, 학습지 일을 하면서 비 오는 날이 단지 싫은 것이 아니라 무서워졌다.
비가 오는 날에는 유독 수업하는 아이들이 이상해 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늘 이상하다.
호기심도 많고, 자신의 신체의 변화나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아서 별것 아닌 것에도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며 어떤 때에는 너무나도 솔직한 모습에 감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한 감정 기복은 거의 7세 이전에 많은 경험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변해 가는데 절제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초등학생이 되어도 중학생이 되어도 절제가 어려운 경우도 있어서 학습지 선생님은 학부모와 함께 그 부분에 대해 상담하기도 한다.
그러한 학습지 선생님도 유난히 힘들어하는 날이 있으니 그날은 바로.... 비가 오는 날이다.
특히 여름의 장마기간에는 더욱 심하다.
처음에는 평상시에는 늘 활기가 넘치던 아이들이 힘들고 지쳐하고 짜증을 내기에 날씨와는 상관없이 그런 날도 있는 것이라며 넘겼다.
하지만 하루에도 10명이 넘는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저절로 느끼게 되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10명의 아이들 중에서 많으면 한두 명의 아이만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한 것이다.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아이들의 밝은 미소와 밝은 목소리에 성공적인 수업을 기대했다가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점점 아이의 어깨가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아.. 비가 와서 나도 수업 다니기가 불편한데...
우산도 써야 하고, 하필이면 비 오는 날에는 아이들에게 나눠줄 교재가 더 많은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자동차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서 무거운 짐을 들고 택시를 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잠시라도 수업이 캔슬이 되어버리면 나는 근처의 편의점을 이용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멀뚱히 서 있어야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유난히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아이들이 많다. 인내심이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아이들이야 원래 그러한 성향이 있어서, 뭔가 기분이 안 좋거나 하면 으레 그러니 내가 참아 줘야지.. 하며 시간이 얼른 흐르기를 기다리곤 했다. 한 번만 참으면 다음 주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기다려 주곤 하니까.. 그리고 이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해서 다음 아이도 힘들어하지는 않을 거니까.. 몇 분만 참아내면 된다.. 는 생각으로 시간을 버텼다. 그런 날에는 회원 어머님도 눈감아 주신다.
하지만 경력이 10년 정도 되고 보니 비 오는 날에는 수업을 잘하던 아이도 매우 힘들어하고 짜증이 폭발한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압이 낮아져서 자신도 해명 못하는 그런 기분 나쁨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즉, 비 오는 날에는 어른들도 불쾌지수가 높아져 인내심이 적어지는데, 아이들도 역시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의 경우 몸에 밴 예의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직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짜증과 분노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인데 그 말에 매우 동감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으로서 아이에게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짜증과 분노에 일일이 반응하며 그렇게 하지 않도록 애써 달래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짜증을 내 속에 담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저녁에 맥주 한잔하며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유독 아이들이 이상해진다는 것을 깨닫고나서부터는 조금 가볍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니까 짜증이 날 수 있어~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니까 조금 다른 방법으로 해 볼까?" 하면서 여유 있게 노래를 부른다거나 한글 카드놀이를 평소와는 다르게 해 본다거나 했다. (역시 어떤 일이든 경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저렇게 이겨내고 나니 이제는 비 오는 날이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다. 그래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 하는 시기에 있다. 꼭 배워야 하는 것들 중에는 남에 대한 배려나 예의, 존중 같은 것들이 기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나도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이고 누가 봐도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의 사람이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조금 다른 행동을 한다.
샤워를 두 번 한다거나, 따뜻한 커피를 여러 번 마신다거나 잔잔한 음악을 트는 것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다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불안해지는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어른인 나도 버티기 힘든 날이 비 오는 날인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어른이라면 어떻게 하면 차분해지는지 여유로워지는지 생각이라도 해서 행동하지만, 아이들에게 그것까지 바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비 오는 날.. 아이들이 작은 괴물들이 된다고 해도.. 조금은 기다려 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겠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안정되는 방법을 깨달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