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글을 읽을지 몰라요~"

눈으로는 읽고 있지만, 글을 모른다고 시치미 떼는 아이 이야기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이 되면 학습지 교사로서의 나의 마음은 매우 바빠진다.

이맘때쯤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매던 가방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가방을 기쁘게 보여주며

"선생님~ 이거 봐 바라요~ 저 초등학교 간다고 엄마가 사주셨다 여~~"하며 해맑은 미소를 얼굴 가득 띤다.

내 속도 모르고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한창 들떠있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아이가 학교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매해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뿐 아니라 예비 초등학교 학부형인 회원 어머님들의 마음의 무게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학습지 교사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초등학교 입학 준비는 대략 이 정도다.

1. 40분의 수업시간을 버틸 엉덩이의 힘

2. 한글 읽고 쓰기

3. 대략의 독해능력 (문해력)

4. 학교의 규칙


사실 뭔가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학습지 교사는 학교 선생님과 달리 한 아이를 길게는 한글을 떼기 이전인 4,5세부터 중학교 입학 때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1, 2학년뿐 아니라,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어도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기 위해 어떤 한 해를 보내야 하는지 플랜을 머릿속에 생각해 두기도 하는데, 즐거운 초등생활을 보내기 위해 7살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은 감사하게도 한 가정에 아이가 둘, 셋 있는 가정이 많았다. 한국이 저출산 국가로 접어들었음에도, 이렇게 아이가 많은 곳을 담당하게 되어 많은 아이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7살 아이들의 수업은 특히 만만치 않았는데 아이들의 학습 편차가 심했기 때문이다.


7살 아이들의 수업은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와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아이로 구분하여 수업을 달리 진행을 한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의 경우 한글 수업이 아닌 국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스스로 글을 읽는 연습, 속도를 내어 글을 읽는 연습, 내용 속에 있는 중요한 문장 찾기, 문제를 풀면서 해당하는 답을 지문에서 찾기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호기심이 가득인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스스로 글을 잘 읽게 된 것을 뿌듯해하며 자신의 엄마에게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 선생님으로서도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7살에 들어서서 학습지를 신청하는 아이들 중에 유난히 똑똑한 아이들이 있다. 그때까지 한글을 전혀 모르던 아이였는데 나랑 수업을 진행하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한글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어내던 한 아이... 얼굴도 얼마나 야무지게 생겼는지.. 그 아이는 세 아이 중 가운데 아이로, 언니는 이미 학교에 중학년으로 꽤 공부를 잘하고 있었고, 막내는 아직 아기로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가운데 낀 이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손길이 좀 덜 가는 편이었던 것 같다. 본인이 야무졌던 것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 7살이 되어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는 학습지를 시키신 모양인데, 처음에는 자신만의 선생님이 자신을 만나러 왔으니 너무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가르쳐 주는 한글을 곧잘 읽고는 했다. 나 역시 아이가 가르쳐 주는 것 이상으로 따라오니 금세 한글을 읽을 것으로 기대했고, 국어를 가르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렇게 잘 따라오는 아이는 내가 수업할 때 주는 작은 힌트로도 금세 실력이 늘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예상은 심하게 틀어져 버렸다.


사실 이렇게 공부를 잘하는 경우에는 국어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입학 전에 수학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붙여 주어야 아이가 공부에 더 흥미를 가진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국어에서 배운 한글이 수학에서 어떻게 사용이 되고 있는지 활용이 되고, 문제를 풀어냈다는 뿌듯함에 진도가 더 팍팍 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나와의 수업시간도 길어지게 되어 아이들은 국어가 다소 지루해도 수업시간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가정의 사정 때문인지 한글 수업 딱 10분 만을 했는데 그 시간이 점점 불안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은 공부하기 싫어요..."


학생이라고는 하나 아직 7살이다. 공부가 힘들 수도 있다. 따라서 어쩌다가 한 두 주 정도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놀아줄 수는 있지만 지만 예비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풀어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아이... 굉장히 영악했다. 처음에는 그저 '공부하기 싫어요'라고 했던 아이가... 슬슬 눈치를 보더니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생님! 저는 글자를 몰라요, 선생님이 읽어주세요"


어떻게든 10분을 때우려는 게 눈에 보인다. 나는 아이의 엄마에게 단 10분을 공부해도 나와 함께 하니까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는 거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매주 만날 때마다 한글을 읽는 면에서 '퇴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아이는 이미 한글을 눈으로 줄줄이 읽어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좀 더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넘어가려고 하면 아이는 "선생님 여기 아직 안 하셨잖아요~"하면서 꼬집어 내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이 아이는 한글을 읽는 아이이었던 것이다. 이미 눈은 내가 읽는 글자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나는 글자를 읽을 줄 몰라요. 공부하기 싫어"를 외치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거지..?


학습지는 특성상 나의 수업뿐 아니라 1주일 간의 아이들 숙제를 내준다. 하지만 이 아이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아이의 친구 몇몇도 나와 수업을 하고 있었기에 함께 선의의 경쟁을 붙이기도 해 보았다. 예를 들면, 책을 많이 읽으면 선물을 주겠다거나, 수업 태도에 대한 칭찬 스티커 등등 내 머리에서 짜낼 수 있는 것은 총동원을 했고, 회사의 선배들에게도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못했다.


결국 아이는 학교 입학 전에 나와의 수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겉으로 보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으니까. 아이의 엄마는 나에게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나로서는 답답했다. 아이는 이미 글을 읽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아이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이라면 자신이 혼자서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엄마와 아빠에게 자랑했을 법도 한데 그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늘 뭔가에 불만이 있는 듯했고, 내가 제시하는 그 어떤 선물에도 미동이 없었다.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슬라임이나, 꽤 가격이 있는 미니어처 인형, 간식, 장난감. 그 어느 것도 이 아이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이 아이의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도 아이는 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동생을 꼬집거나 하는 못된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했다.


나는 그 대화 속에서, 그리고 나와의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아이의 외로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이는 아직 어리기에 머리로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왜 그렇게 상반된 행동이 나오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어른들도 때때로 그렇지 않은가..


이런 아이는 어찌해야 할까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채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먼저 아이의 마음을 알고 채워줘야 하는 부분이니까 나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을 내 가슴 어딘가에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야무지게 잘하고 있겠지. 그때 내가 마음을 쓰며 골머리를 앓았고, 지금도 때때로 그 얼굴과 상황을 떠올린 다는 것을 그 아이는 모를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어린 마음에도 외로움과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주 원초적인 것이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충분히 전해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으니 감사한 기억이겠지..


부디 지금은 지금은 자신이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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