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서 학습지 선생님이 될 거예요!
공부에 점점 재미를 느끼는 아이의 꿈
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Sep 23. 2022
학습지 수업을 시작하고 1년 정도가 지나면 이제 회사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과목의 모든 단원을 다뤄보고, 많은 유형의 아이들과도 만나보기에 초등 6학년 정도까지의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의 커리큘럼이 머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3,4세부터 만나는 아이들의 발달과정과 국어 수학 실력에 따른 학습방법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접하고 교육을 받기 때문에 많은 어머님들에게 신뢰도 얻기 마련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1,2년 정도 되면 가르치는 스킬도 점점 늘어나게 되는데 아이들마다 받아들이는 공부 그릇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아이에게는 이렇게 저런 아이에게는 저렇게 가르치는 방법을 달리 하기도 하고, 다소 어려운 해설에 대해서는 아이가 받아들이기 쉽도록 설명방법을 바꿔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학교 공부를 쉽게 생각하는 나의 회원 아이들이 늘고, 나의 수업을 좋아하시는 어머님들이 많았다. 그중에 스승의 날이나 연말만 되면 "나는 선생님처럼 좋은 학습지 선생님이 되어서 많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라고 편지를 쓰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편지를 받으면 그동안 내가 학습지 교사를 하며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겪었던 많은 고생들이 싹 녹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고, 학습지 선생도 굉장히 뿌듯한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를 5살 즈음 만난 것 같다. 그때만 해도 굉장히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그 아이는 다른 또래 아이에 비해 몸집이 컸다. 5살 나이에 6,7세라고 해도 될 만큼 몸집이 크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아이를 큰 애 취급해 버리는 실수를 하곤 하게 된다. 사실 학습지 선생님은 대부분 바닥에 주저앉아 수업을 하기 때문에 (아이가 어린 경우 몸집 때문에 책상보다 앉은뱅이 책상을 이용합니다. / 초등 2학년 정도까지는 앉은뱅이 책상이 좋아요.) 앉아서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몸집이 크면 큰 아이 취급을 하게 된다.
그 아이는 외동인 데다가 얼굴만큼 행동도 또릿또릿 했다. 그런 아이의 경우 엄마는 많은 기대를 품게 마련이다. 그런 기대만큼 나와의 상담시간은 매우 길었고, 매 년 아이의 성장에 따라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먼저 네게 물어주셨다.
사실 학습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아이의 공부 그릇에 따라 점점 종류를 늘려가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 방법을 하고 있는 학습지의 과목을 늘리는 방법도 있고, 학원을 더 보내거나, 아니면 집에서 엄마가 문제집을 가지고 더 시키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과 공부로 머리싸움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학원을 늘린다. 학습지는 아무래도 숙제로 남겨지기 때문에 더 늘리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의 경우 선생님 입장으로 상담을 하고 과목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말하면 아이가 이미 매일 공부하는 습관이 형성이 되고 있다면 학원보다는 학습지의 과목을 늘려서 매일의 공부량을 늘려주는 것이 유아와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다시 그 아이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금 사는 지역은 서울보다는 외곽지이지만 그 아이의 친척이나 어머님의 관심은 서울권이었기에 어머님은 주변 아이들의 학습 양보다는 본인 아이의 공부 그릇에 집중하셨다.
그러다 보니 꽤 많은 과목을 하셨는데, 그것을 아이는 버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나를 보는 눈은 초롱초롱했고, 교재에 없는 이야기를 하면 아이의 귀는 쫑긋쫑긋했다.
그런 아이도 7살까지 꽤 힘들었는데 아이들에게 있는 특유의 기복이 잡히지 않아서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대부분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어떤 때는 기분이 좋았다가도 금방 어떤 작은 일에 대해 쉽게 토라져서 기분이 나빠지거나 하는 일이 많다. 자신의 기분을 컨트롤하지 못해 버릇없는 행동을 하거나 화를 내서 손을 대지 못할 지경이 되곤 한다.
그런 일들이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있다고 봐도 좋은데, 그것은 잘 다루어 준다면 거의 8세 전에 잡힌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내버려 두면 중학생이 되어서 까지도 자기 기분을 자기가 어떻게 할 줄 모르게 되어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아이의 기복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어마 무시했는데, 수업을 하면서 뭔가 내가 지적을 하거나 가르쳐 주면 자신이 틀린 것에 대해 분해하고 한동안 삐져서 말을 안 하곤 했다. 그 아이의 수업은 처음에는 30분, 그다음에는 40분 아이의 성장에 따라 거의 10분 단위로 늘어났는데, 그 긴 수업에서 앉은 지 5분 만에 기분이 틀어지면 나머지 긴 시간을 아이의 비위를 맞추며 수업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비위를 정말이지 맞추면서 수업을 진행했지만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1분이 그렇게 길어질 줄이야... 그 집을 수업하고 나오면 다음 집을 가기 힘들어질 정도였다. 그런 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굳은 결심을 하고 다음번에 또 이런 상황이 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아이를 위해서라도 수업을 중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수업.
다행히 지난주에 부렸던 폐악(?)에 대해 어머님께 혼이 났던 건지 시작하고 10분 정도는 활기차게 수업을 했다. 아이는 삐지기 전까지 너무나 수업을 잘했다. 하지만 10분 정도가 지나고 아마도 연산의 더하기를 할 때였다. 연산 공부는 누구에게나 지루하기 때문에 동기부여를 위해 초를 재곤 했는데 한 바닥에 목표한 시간은 12초 정도였다. 그렇게 네 바닥 정도 시간을 재면서 하는데 두 번째 장을 끝내니 첫 장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첫 장이 10초면 두 번째 장이 12초 정도였다. 이제 이 아이는 슬슬 입이 삐죽 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멘탈이 흔들리면 다음 장은 어김없이 13초, 14초로 점점 시간이 늘어나게 되기 마련이다.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아... 역시나..
이 아이는 입을 꾹 다문채로 다음 수업을 진행할 때 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럴 수도 있지. 몇 초밖에 늘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이쪽이 문제양이 좀 더 많아. 그러니까 짜증 내지 말고 다음번엔 더 잘해보자~ 처음부터 다 잘할 수 없지 않니."
나름 여러 가지 달래는 말을 해 보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결국.
"OO아. 오늘은 이만 공부하자. 더 이상 안 되겠으니 어머니 모셔오렴."
아이는 평소와 다른 나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일어나지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일어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목소리를 높여 아이의 엄마를 불렀다.
"OO어머니! 오늘은 OO 공부하기 싫은 가보네요~
매일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고 계시죠? 요일 표시해 두었으니 매일 공부시켜 주세요. 그리고 저는 아이가 모르는 문제를 가르쳐 주러 온 선생님이잖아요. 아이가 틀린 답을 말하는데 맞다고 해 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이렇게 행동을 하네요. "
다른 어머님 께라면 그렇게 까지 말씀을 드리지 않는다. 대부분 어른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아니까. 하지만 이 아이의 어머님과는 많은 상담을 통해, 아이가 좀 버릇이 없거나 기복이 있어 고집을 부렸을 때 당장 수업을 중단하고 나갈 것이라고 말을 맞춰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런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는 충격이었는지 그다음 주 나는 아이에게서 작은 사과의 편지를 받을 수 있었고, 그다음부터 절대로 수업을 중단시킬 정도의 나쁜 기류는 흐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아이는 때때로 삐지기도 하고 지루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옳지 않은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이의 엄마가 나와 합심을 하여 아이에게 조언을 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힘들고 힘든 유아기를 지나 예비 초등이 되었을 때는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으며 책에서 재미를 느꼈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옮겨 매주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매주 아이의 생각을 자극하는 숙제를 내주었다. 물론 그 부분은 학습지 과목에 들어있지 않은 나만의 서비스로 어떤 날은 일기를 쓰고, 어떤 날은 설명문, 어떤 날은 편지글 어떤 날은 그림, 소설, 등등 다양한 문장의 종류의 글을 쓰게 하면서 아이가 소위 '공부'라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아이는 학교에서도 칭찬을 받을 정도로 길고 재미있는 글을 써내는 학생이 되었다. 공부도 잘해서 반에서 1,2등을 다투었는데 그것도 학원이 아닌 학습지 공부만으로 그렇게 했으니 아이의 어깨도 엄마의 어깨도 뽕이 두껍게 쌓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에게도 이 아이는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릴 적에는 너무나 힘든 기복으로 나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지만 그 아이 스스로도 매우 힘든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자유분방한 아이가 예의라는 규휼에 맞춰져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런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이제는 새로운 역사 이야기나 과학이야기에 여러 가지 꿈을 이룬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생각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이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함>이라는 단어의 뜻을 잘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공부하는 동안 커리큘럼 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나는 아이에게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 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처럼 많은 아이들에게 공부의 재미를 알게 해 주는 학습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도 공부를 좋아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내 손을 떠나갔지만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아이. 아마도 지금도 새로운 책을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읽고 있을 그 아이가 눈에 선하다.
가르치기 편한 아이도 있지만 이런 고통을 함께 이겨내고 함께 호기심을 키워나간 아이들과의 만남도 오래오래 기억될 소중한 기억이다.
나 역시 나만의 기복을 이겨내고 밝은 미래를 위해 계속 꿈꿔야지.. 하게 해 주는 소중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