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하는 부모님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만남과 헤어짐이 있지만, 학습지 선생이라는 직업은 특히나 이 만남과 헤어짐은 밥먹듯이 하는 거다 보니 어떤 아이와도 수업을 하면서 헤어짐을 준비하곤 한다. 학습지를 중단하는 이유는 다양한데 이사나 아이가 고학년으로 올라가 학원으로 가는 경우, 그리고 선생님과 안 맞아서 다른 학습지로 갈아타는 경우 등등이 있다. 뭐 이사를 간다거나 나랑 안 맞아서 바꾼다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다른 방법으로 학습을 한다는 것은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학부모의 권리이니 내 능력 밖이다. 물론 나에게 학습 방법을 상의해 오는 학부모의 경우 여러 가지 플렌을 짜주기도 한다. 오히려 그렇게 상의해 오면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나로서는 감사한 마음도 들어서 아이에 맞는 학습방법을 여러 가지 제시해 준다.
그런데 한 해에 꼭 한두 번씩은 이상한 이유로 중단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중단하는 것뿐 아니라 상담 신청을 해 놓고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저희 때는 이런 거 공부하지 않아도 다 잘했어요."
처음 이런 반론을 받았을 때는 정말 어찌 말해야 할지 머리가 멍... 해졌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우리 어렸을 때는 이런 학습지를 하지 않아도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학교 선생님께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되었고, 특히 나의 경우 엄마가 사 주신 단 한 질의 소설책들이 나에게는 공부가 되었다. 피노키오, 소공녀, 피터팬, 빨간 머리 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등 이제는 고전에 속하는 장르의 책들이지만, 그것들은 내가 한글을 빨리 터득하고 행간을 읽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와 지금 아이들의 환경은 너무나도 다르다.
일단 나는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우리 집에는 게임기가 없었으며 텔레비전도 정규방송밖에 나오지 않아서 만화영화를 많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커서는 집 근처에 있는 도서대여점에서 권당 300원 하는 만화책을 산더미같이 빌려서 보고 또는 만화책과 똑같이 그림을 그려서 돌려보곤 했다. 그리고 교환일기, 교환 소설을 쓰면서 서로가 서로의 작품들을 평가하며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고, 주인공의 성격이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지금 그것들은 학교 교과 내용에 들어있어서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할 때 이론적으로 배우고 있는 것들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는 재미로 했던 것들이 사실은 공부의 일부였던 것이다. 또 나의 또 하나의 취미는 공깃돌 놀이였는데 이 또한 점수를 계산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더하거나 빼는 학습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의 환경은 좀 다르다.
24시간 재미있는 만화가 나오는 커다란 브라운관이 거실을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에는 게임기가 있다. 그것도 VR기능이 있는 게임기는 현실인지 가상인지 알 수없을 정도로 멋지고, 재미있다. 그곳에서 친구도 만나고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책을 손에 들지 않을 환경인 것이다. 친구와 약간의 다툼이 있다고 해도 그 친구가 아니어도 다른 놀잇감이 있으니 굳이 화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인가.. 요즘 아이들은 꽤나 독립적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회원 아이가 한숨을 푹~ 쉬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친구와 싸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하는 말이
"괜찮아요. 절교하면 되죠~"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아니, 한숨을 쉬었다는 것은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는 것인데... 절교하면 된다고?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가 "절교"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것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너무나 놀랄 일이었지만, 그 단어의 묵직한 무게를 그렇게 가볍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인간관계는 꽤나 어려운 숙제이다. 그리고 그 최후의 수단이 바로 "절교"인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절교"했다가도 금세 "화해했어요~"라고 한다. 가슴 아픈 건 "절교"라는 말을 들은 상대도 그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단어를 묵직하게 생각하질 원하는 건 아이들한테 너무 큰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렇게 단어의 뉘앙스나 무게는 생각하지 못하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단어들의 뜻을 몰라서 여러 번 짚어주고 이야기의 흐름과 행간을 읽는 연습을 함께 하곤 했다. 그건 아마도 앞서 언급했던 요즘 아이들의 환경 때문이 아닐까..
요즘 아이들이 게임이나 만화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불편하지만 자신이 익힌 한글을 활용하여 다양한 책을 읽거나, 그 내용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거나 글로 쓰고 부모님들이 문맥에 맞게 고쳐 준다거나, 아이를 잘 관찰하고 있다가 더하기를 가르쳐 준다거나 한다면 학습지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학습 능력은 늘어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이것은 공부다!"하고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놀이들이 공부의 일환이었던 것들이 많다. 아이들은 저도 모르는 새에 공부 놀이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공부를 하게 된 이유를 따라 올라가 보면 머리를 아프게 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편리한 삶, 재미있는 삶, 신기한 자연의 섭리 등을 모두 함께 알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점수를 매기게 되고 고등학교(높은 학교)로 입학하기 위한 지표가 되다 보니 공부는 힘들고 고된 것이 되어있는 것이다.
실제로 만 4세부터 만나는 아이들은 나를 '공부 놀이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 공부는 그저 놀이에 불과한 것이고, 나로 인해 한글을 익히게 되면 '한글 놀이'를 하게 된다. 그 놀이를 통해 많은 단어들을 익히게 되고 그 단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에 나오면 반가워서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우리 때는 이런 학습지 하지 않아도 공부 잘했어요."
라고 말하는 부모님들께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네~ 맞습니다. 그때는 공부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으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책 읽기나 공기놀이, 사방치기는 지금 아이들에게는 공부에 속한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것들이 아니라 게임이나 만화영화를 보죠. 그것들은 우리 아이들의 생각을 자극하게 하고 한글을 읽을 수 있게 하지는 않는답니다. 우리 아이는 벌써 나이로 보나 공부머리 그릇으로 보나 익힐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게 되지 않으니까 학습지를 하는 거예요~ 학습지를 시키지 않으셔도 되지만 그렇다면 어머님이 늘~ 아이를 주시하셔서 필요한 학습을 익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절대 입밖에 내지 않는 속으로 하는 말은
'아이가 당신보다 잘 살길 원하시면 당신이 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공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해 보지 못한 다른 여러가지를 아이가 경험하게 하면 그만큼 나보다 더 잘 사는 방법도 찾아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