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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 테라피스트 깽이 Nov 25. 2022

내가 먹은 음식을 자랑하는 이유

문득 음식 자랑 SNS 쓰다 생각한 것

 어제는 갑자기 회사 근처에서 점심 회식을 하게 되었다. 전의 회사에서 정말이지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퇴사를 하고 (화가 나서) 이쪽 회사로 넘어온 지 벌써 6개월 차다.


 <영업>이라는 것은 이전 회사와 비슷했지만 100% 영업파트만을 하게 되어 여러 가지를 배우며 일하고 있다. 새로 다니게 된 회사는 오래되었지만 이제 크고 있는 중소기업으로 부부가 소소하게 운영해 왔던 것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족스러운 것은 일단 일하는 시간이 온전히 활용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급여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전에 회사에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급여로 직결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마 영업과 관리가 함께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는 법이나 말하는 법등의 지식과 관련된 것들을 얻을 수 있었던 전 직업에 비하면 지금의 직장은 내가 따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나의 지적 호기심은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애초에 직장이라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사회를 배우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법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이상의 의미에 무게를 실었던 나의 잘못이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직장에서 늘어난 수입과, 직장 근처의 다양한 먹거리는 나를 늘 즐겁게 한다.


회식때 먹은 초밥


 정말이지 너무나도 오랜만에 낫술? 과 함께 먹은 초밥은 맛있었다!

 

 특히 계란 위에 입혀진 가게 이름이 조금은 고급스러운 듯한 느낌에 만족스러웠다. (아휴.. 촌스러워) 그래도 이렇게 맛있고, 사진 찍기에 좋은 점심을 먹을 때면 예전부터 사용하던 SNS에 나의 근황을 글도 없이 올린다.


 그쪽 계정에는 전 직장에서 방법도 논리도 없이 올린 회사 홍보물이 들어있다. 내가 따로 돈도 내면서 배운 SNS 관리법에 따르면 정말 하등의 소득도 없이 그저 잔소리가 귀찮아서 오린 피드가 잔뜩인 계정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가 아니라 그저 회사에 도움이 되는 후기 계정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올리고 계신 분들 죄송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계정에 팔로우되어 있는 계정은 죄다 전 직장 사람들이었다.  더 이상 그쪽 관련 피드를 올리지 않기에 그 회사를 그만둔 지금 상황에서 내가 그 계정을 죽이지 않고 사용하는 이유는 "나는 아직 살아있고, 거기 있을 때보다 더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도 있다.


 한때는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이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나를 응원해 주었고, 비록 보수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도 열심히 하면 점점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그냥 가차 없이 박차고 나왔다. 인사도 없이...

 

 평소 그들과의 만남을 즐겨했던 나로서는 얼마나 큰 결심이었는지 모른다. 그 결심을 하기 위해 나는 나만의 도덕관념을 다 버려야 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라도

내가 잘 있고, 그곳을 떠나 더 즐겁게 지낸 다는 것을 어필해야 했다.


처음 먹어보는 1인 샤브샤브

빠져나와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많은 책을 읽기도 하고 공부도 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자존감이 높지 않았다고 말이다.


 '절대로 이 회사를 나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가족이 먹고살만한 돈을 그 어디에서도 벌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나의 가치는 딱 지금의 월급만큼이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있다는 듯한 눈치는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하지만 10년이나 같은 일을 하면서 정말 나는 실력이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을까.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면 나는 그렇게나 오래 버티지 못했겠지. 밖으로 나와보니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직도 그 일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문구를 자주 보게 된다.


<적당한 때와 환경이 만나야만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


적당한 때, 그리고 적당한 환경... 나는 적당한 환경에 있었던 것일까..  


 분명 그 직장이 적당한 환경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커피도 다 식어버리면 그 맛이 더 이상 좋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곳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커피를 담는 컵마다 커피가 식는 시간이 다르듯 나는 그 직장에 그렇게 오래도록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퇴사를 생각하는 때는, 나처럼 그 일이 너무나 싫어지고 화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도전을 위해 아름답게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평생직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라탕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잘 있다고 SNS에 올리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다고. 꼭 그곳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고 그곳에서보다 더 즐거운 매일을 보내고 있노라고...


 누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까.. 옛 직장동료에게? 옛 직장상사에게?


아니다.


나는 아직도 옛 직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예전의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곳을 벗어난 지금의 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매일 즐겁게 살고 있다고, 그러니 이제 그 힘들었던 곳에서 빠져나와도 된다고.. 그렇게 그때의 나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은 자존감 낮고 알량한 자존심만 한 장 있던 그 당시의 나를 위로하는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일 지도...


맛있는 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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