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서 사랑이 남았다.

<도준> 1편

번잡한 대학 졸업식.

전 세계를 휩쓸고, 국내 전체를 장악했던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다행히 도준의 졸업식은 모두 함께 하는 자리에서 할 수 있었다.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날. 취업도 정해진 터라 누구보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이어야 했지만, 못내 아쉬운 것은 다른 친구들처럼 미팅 한번,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원래가 그리 다정한 성격이지 못했던 터라 다가오는 여자애들의 가식과 아양이 보기 싫었던 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마음에 이미 한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안고 가족들이 원하는 사진을 찍은 후 친구들과 함께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캔버스의 한 구석.. 그녀와 함께 과제를 위해 둘러앉았던 자리를 찾았다. 물론 그때는 그녀뿐 아니라 같은 과목을 들었던 그룹 아이들과 함께였다. 그럼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녀와 단 둘이 있는 것처럼 설렜다. 이곳도 이제 다시 찾을 일 없겠지..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었던 그 만의 역사였다. 너무나 소중해서 함부로 자신의 마음을 꺼내 놓을 수 없었다. 행여나 자신의 마음이 눈빛으로라도 새어 나올까 그녀에게 쉽게 시선을 가져가지 못했다. 그녀를 생각하면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한 없이 작게만 느껴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바스락...


누구지?

이 자리도 이제 다른 사람에게 비워주고 이만 떠나야 할 때가 왔나 보다 싶어 몸을 돌리려는데,


"선배.. 여기 계셨어요?"

"....?"


그녀다. 그녀가 왜 여기에...?


"선배, 졸업 축하드려요. 한참 찾았어요"

"아.. 그래 고맙다. 날 왜 찾았어?"


얼굴이 핑크빛이다. 아직 추운 날씨라 그런지 코 끝도 빨간 게 너무도 귀엽다. 역시 그녀는 학교의 '퀸'답게 오늘도 완벽한 차림새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 그녀가 가만히 도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선배, 취직 정해져서 이제는 회사원이네요? 00 제약에 들어가셨다면서요? "

"응. "


"이제 저도 4학년이라 선배처럼 바빠질 것 같아요. 힝.. "

"그렇겠지.. "


"선배도 바쁘겠네요?"

"그러게. 신입이라 배울 것도 많고.. 정신없겠지 모.."


"그래도 퇴근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그죠? 주말도 있고.."

"그렇겠지.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죽어라고 일만 할 수는 없겠지.."


"그러면 ~ 그런 시간엔 저랑 만나면 힐링도 되고 좋겠네요?"

"뭐 그렇겠.....??"


"이제 학교에서 못 보니까~ 퇴근 후에 봐요, 우리"

"??"


"에이참~ 이제 선배, 후배 하지 말고, 도준이 오빠, 연서야 하자고요~ 우리 둘만 "

"... 그래.."


도준이 내지 못한 용기.. 그녀가 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준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아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필요한 말 외에는 건네지 않는 그가 얄미워서 언제 고백을 할까 기다렸다고 했다. 겉으론 다정하지 않은 척했지만 뒤로 조용히 챙겨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편했다고 했다. 다른 남자 선배들처럼 치근대거나 용건도 없이 말을 걸지 않아 좋았다고 했다. 다시 못 만나게 되는 게 서운하고 아쉬웠다고 했다. 그렇게 도준과 연서는 만나기 시작했다.


평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던 도준이지만, 연서를 좋아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만큼 그에게 다가와준 연서를 위해 할 수 있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나중을 생각해 회사 일도 열심히 했다. 다 큰 성인이 되어 만난 인연이기에 절대로 놓치지 않고 평생을 그녀만을 위해 살리라 다짐했다. 다소 징그럽고 고리타분한 생각이라 할지 몰라 그녀에게 털어놓지는 못했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헤어지는 결말은 내고 싶지 않았다.


집에 있는 틈틈이 연애에 대한 책도 읽었다. 여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열심히 연구하고, 그녀와 만날 때면 그녀의 말투, 몸짓, 손짓, 그리고 눈빛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노력했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질려하거나 지루해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보여지는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좋았다.


대학교 4학년인 그녀는 작년의 도준의 모습과 비슷했다. 취업 준비생으로 매일 바빴고, 졸업논문으로 매일 도서관에서 지냈다. 도준은 행여 그녀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퇴근 후 도서관 한쪽에서 책을 읽다가 그녀가 끝날 때쯤 톡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를 집에까지 데려다주며 함께 밥을 먹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회사는 바쁘고, 직장 상사는 아직 어려웠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이 짧은 시간이 그에게는 스트레스 해소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그녀가 졸업식 때 말한 그대로. 힐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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