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물드는 감사함
가정의 달 5월, 식상하지만 5월의 주제는 늘 '감사'다. 회사 다니던 시절 감사 일지를 쓰던 것이 생각난다. 물론 자발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여느 대기업에서나 한 번쯤은 할 법한,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주최하는 땡큐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다. 매일 감사노트를 쓰고 매주 월요일에는 한 주간 감사했던 것을 팀원들이랑 공유하는 시간까지 가져야 했다. '감사'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이미 꽤나 많이 알려져 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쥐어짜내진 감사만 있을 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함은 찾기가 어려워졌다. 땡큐 프로젝트의 주차가 거듭될수록 점점 '마실 물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등의 식상한 멘트나, '무엇을 도와주신 누구 차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등의 아부성 감사만이 남을 뿐이었다.
오늘 요가 수련에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춰보라는 메시지가 주어졌다. 그러자 내 호흡부터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감사할 줄 모르고 욕심 가득한 지가 인지되었다.
요가 시간에 "호흡하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들숨도날숨도 묘하게 어색하고 불편해진 경험이 있지 않은가? 노력하지 않아도, 의식하지 않아도 호흡은 늘 나와 함께 있는데, 대단한 명상 마스터쯤 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호흡을 크고 깊게 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나의 호흡은 이미 충분히 온전하고 평온하다. 그것에 집중하니 이 당연한 호흡에도 감사할 수가 있었다.
요가 수업을 나가겠노라 다짐했더니 혹시 회원들이 날 바라보며 ‘저 강사는 이 동작도 못해?’ 하는 생각을 하고 손가락질할까 의기소침해졌었다. SNS를 보다 보면 고난도 아사나를 멋지게 해내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에, 또 그런 콘텐츠가 눈길을 끌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다 보니 의식하지 않으면 자꾸만 내가 못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8년 전으로 돌아가 보았다. 플랭크 동작도 어려워 팔을 부들부들 떨던 나, 견상 자세와 엎드려뻗쳐를 구별하지 못했던 귀여운 내가 있다. 지금은 무릎을 대지 않아도 힘차게 차투랑가를 할 수 있고, 깔끔한 ㅅ자의 견상에서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게 됐다. 내가 보냈던 매트 위에서의 수백, 수천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내 노력을 바라봐주니 못하는 동작이 아쉽기보단 지금 가지게 된 힘과 유연성에 감사한다.
가진 것에 주의 기울이니 감사함이 절로 따라온다. 요즘 시대의 흔한 30대의 영끌족인 나. 늘 빚과 이자에 허덕이며 부족하고 가난하다 생각하며 살았는데, 세상에 돌아보니 나한텐 우리 가족을 품어주는 멋진 집이 있었네?? 아늑한 우리 집에서 호흡하고 요가 수련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