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주세요
인지하기와 선택하기
이번주는 타다아사나의 바른 정렬을 배웠다. 경솔하게도 타다아사나만큼은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발을 이리 저리 놓아 봐도 무언가 어색한 것이 아닌가. 하루 종일 주의 기울여 관찰해보니 오른 발가락이 습관적으로 바깥을 향해 놓인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안짱다리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야 비로소 올바른 십일자 자세로 설 수 있었다. 내 스스로의 몸을 의식적으로 관찰하면서 ‘인지’하게 된 것이다.
인지하는 것의 장점은 단순히 내 자신을 잘 알게 되었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인지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버스에 서서 가면서도 문득 떠올라 팔자로 놓여 있는 발을 십일자로 돌려 놓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30년 동안 선택하지 않았던 건, 십일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내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었기 때문.
요가 매트 위에서 만난 나
요가를 통해 많은 것들을 인지한다. 비단 내 발이 팔자라는 것, 왼쪽 골반이 오른쪽보다 뻣뻣하단 것 같은 신체적 차원의 알아차림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습관들까지도 마주하게 된다. 매트 위의 움직임은 내 삶의 축소판과도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많은 요가인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매트 위에서 남들과 비교하는 나, 도전을 꺼리는 나, 혹은 지나치게 나를 몰아부치는 나를 만나곤 한다는데, 나는 ‘못하기 싫어하는 나’를 특히 자주 만난다.
일례로 나는 요가를 시작한 지 일년이 되도록 요가복을 사지 않고 러닝바지와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그렇게 입으면 요가를 처음 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처음 온 사람은 요가를 못해도 괜찮으니까... 거 참 내가 봐도 별난 성격이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는 남들 몰래 연습을 했다. 요가원에선 늘 무릎 대고 하던 차투랑가도 집에서는 무릎을 떼고 팔을 바들바들 떨면서 시도해보고, 벽으로 옮겨 가서 머리로 서 보기도 하고......요가원에선 조심스럽고 소심했던 내가 집에만 오면 아주 진취적 요기니로 변신했다. (이내 포기하긴 했지만)
안할지언정 못하는 것은 싫다. 그런 나를 매트 위에서 발견했다. 실패하기 싫고, 잘하고 싶은 내 마음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부터가 요가의 시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