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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두루미 Dec 14. 2018

3주차, 힘을 뺀다는 것

사람들은 힘들어하는 이에게 응원의 뜻을 담아 "힘내라!"라고 말한다. 물론 좋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차라리 "힘 빼라!"라고 말해주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안전망은 부실하고 사람들의 힘을 쥐어짜내어 굴려가는 이 폭력적인 나라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 해도 힘에 부치는데 또 힘을 내라니. 도대체 언제까지? ...(중략)...힘이 부치는 사람에겐 힘내라고 하기보단 손을 내밀어 나의 힘을 보태고 우리의 힘을 합칠 일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 '힘빼기의 기술'의 프롤로그 중 일부다. 실제로 나는 취준생 시절, 연이은 서류탈락으로 힘들어하던 와중 당시 남자친구가 건낸 "힘 내"란 말에 폭발하듯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있다. 분명 좋은 의도로 한 말이었을텐데, "힘내라고 강요하지마!"라고 도리어 화를 내며 펑펑 울었다. 그 때 나는 최선을 다해 힘내고 있었기에, 이렇게 힘 빠지는 상황에서 또 힘을 내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버겁게 느껴졌는 지 모른다. 그런데 작가의 말대로 "힘 빼"란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힘을 빼야만 했을까? 여태껏 힘을 내는 것만 배우고 연습하며 살아왔는데, 대체 힘 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두 손을 하늘 향해 뻗습니다. 우르드바 하스타사나" 가이드를 주면서 내가 회원들에게 해야 하는 핸즈온을 배웠다. 바로 으쓱 올라간 어깨를 손가락으로 지긋이 눌러 내려주는 것. 두 손만 하늘 향해 들으라고 했는데 어깨는 왜 그렇게 으쓱 따라 올라가는 지, 어깨는 잠시 힘을 빼야 할 때인데 좀처럼 힘을 빼내기가 어렵다.

지도자 과정에서의 정렬 시간에는 올바른 정렬법과 함께 흔히 일어나는 비정렬을 배운다. 비라바드라사나 2에서 자주 관찰되는 비정렬 중 하나가 바로 몸통이 앞으로 쏠리면서 굽힌 다리 쪽으로만 체중이 실리는 것이다. 정렬과 비정렬을 오가며 비정렬 상태의 자세를 느끼다 보면, 앞다리에 불필요한 힘이 잔뜩 실려 마치 기합 받는 것과 같은 고통을 맛볼 수 있다. 뒷다리가 제 역할을 못하고 굽힌 앞다리 혼자서 온 체중을 부담하니 앞다리 입장으로선 기합을 받는 거나 다름 없기는 하다. 내 시선에는 안보이지만, 뒷발에도 균등하게 체중을 실어 바닥을 밀어내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앞다리에 불필요하게 들어간 힘을 빼낼 수 있다.


비정렬의 비라바드라사나에서 그랬듯, 힘 빼는 게 어려운 이유는 정말로 힘이 필요한 곳에서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취준생 시절의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내 가치는 나를 선택하는 회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평생을 나로 살아온 나의 판단보다, 기껏해야 1분 남짓 내 자소서를 읽었을 인사팀 직원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때 스스로를 믿어주는 힘이 나에게도 있었더라면, 그렇게까지 힘이 들지는 않았을텐데.


드로잉 학원에 가서도 몸에 잔뜩 힘을 준 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선생님이 다가와서 얘기한다. "펜을 멀리 잡고, 손에 힘 빼세요" 드로잉에서도, 요가에서도, 명상에서도,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일에서 힘을 주는 것 만큼이나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명상을 하기 위해 두 눈을 감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호흡에 집중하려고 해도 두 호흡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언제까지 하지? 아 과장님 짜증나. 근데 아깐 내가 너무 심했나? 모르겠다. 김치찌개나 끓여먹어야지' 끊임 없이 생각이 이어진다. 만약 명상을 한 번도 안해봤다면, 지금 눈 감고 딱 2분만 해보길 추천한다. 딴생각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면, 바로 호흡으로 돌아오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보고있노라면 우리의 뇌는 정말 놀랍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한동안 명상을 하며 산만한 내 자신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이번주엔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내 생각들을 알아차리는 건 좋은데, 그러고 나서는 이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선생님은 ‘그냥 있어주는 것’이라 했다.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Doing에 익숙해져 있어서 꼭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고. 그냥 온전히 나와 함께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또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는 남편이 된 구 남친은 이제 내가 힘들 때 "힘 내요, 그치만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하고 말하곤 한다. 돌이켜보면 주변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지언정,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 명상은 내가 온전히 나와 함께 있어줌으로써 스스로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과정인 것 같다. 불필요한 힘을 빼기 위해 마음의 힘을 길러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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