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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두루미 Nov 24. 2018

1주차 깨달음: 관찰하기

요가 지도자 과정이 시작되기 전, 집에 있던 요가 책을 뒤적이며 헷갈렸던 정렬들에 대해 공부하기도 하고, 유튜브에 '아나운서 발성' 따위의 것들을 검색해 복식호흡을 연습해보기도 하며 나름대로 예습의 시간을 가졌다. 막연히 요가강사의 역할은 올바른 자세를 안내해주며 한 시간을 버벅임 없이 이끌어나가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간과하고 있던 요가강사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바로 ‘관찰’이었다.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채 외우지 못한 지도자과정의 첫 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마니또가 되었다. 10주 과정 내내 나는 누군가의 마니또가 되어 나의 버디를 '관찰'하고, 그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도와줘야 한다고 한다. 그치만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낯선 환경에서 나는 최대한으로 어색해하며 자의식 과잉의 상태로 지내느라 다른 사람을 관찰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 이 마니또 놀이가 그냥 친목도모의 일종이라 생각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마니또 놀이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된건 다름 아닌 순대국집에서였다. 고기에서 비계를 떼어내려다가 숟가락이 미끄러져서 입고 있던 니트에 순대국을 뒤집어썼다. 황급히 티슈에 물을 적셔 닦아내고 있던 찰나, 직원이 두 장의 물티슈를 내밀었다. 세제를 묻힌 물티슈 한 장과 그냥 물티슈 한 장. 세상에! 이런 게 바로 고객감동이란 것이구나! 칠천원짜리 순대국을 먹으며 이런 서비스(?)까지 받아도 되는 것인가. 황송했다. 환절기 비염을 달고사는 나는 재채기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코도꼭지(콧물 수도꼭지를 줄인 말이다)가 열리는데, 그런 나를 위해 '에취'소리에 박자 맞춰 클리넥스 티슈를 뽑아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내가 필요한 걸 귀신같이 알고 찾기도 전에 준비해주는 것. 바로 관찰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순대국밥집 아저씨도, 엄마도, 고객에게, 딸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과정에서 진행하는 마니또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관찰하기를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최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내 버디가 했던 말들을 되짚어 보았다. 다섯살, 세살 아이의 엄마라는 것밖에 생각이 안 나 집 앞 양말가게에서 아기 양말 두 켤레를 샀다. 다음 주에는 버디를 더 열심히 관찰해서 진짜 필요한 걸 챙겨줘야지.

 

돌이켜 생각해보니 요가강사는 단순히 사람들 앞에 서서 다음에 해야 할 동작만 나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햄스트링이 짧아 바닥에 손이 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블럭을 갖다주었고, 무릎이 아픈 사람들을 위해 담요를 깔아주었고, 비틀어진 골반 정렬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외부로 향한 주의를 스스로의 내면으로 향할 수 있게 이끌어주었다. 이런 선생님의 손길은 모두 관찰에서 시작된 것.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잘하는 것에 몰두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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