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la Nov 06. 2015

꼰대 같지 않은 어른으로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13 꼰대 같지 않은 어른으로: 
나는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수업에서 쫓겨나 교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국어 보충수업 시간이었다. 정규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학생들을 집으로 보내지 않고 보충수업이라는 걸 한다는 게 나는 영 못마땅했다.  딴짓을 하기로 마음먹은 난 선생님 눈이 잘 미치지 않는 교실 맨 뒤쪽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없는 돈을 모으고 모아 매달 사 읽던 영화잡지를 책상 서랍과 무릎 사이에 몰래 펼쳐둔다. 그리고는 노트 한 장을 북 찢어 책상 위에 놓고 영화잡지사로 보낼 사연과 영화용어 낱말 풀이 퍼즐 만들기에 몰두한다. 생각보다 선생님은 눈이 밝으셨다. 수업을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들키고 말았다.


교탁 앞으로 나오라는 선생님 말씀에 나는 인상부터 찌푸리고는 꺾어 신은 실내화를 직직 끌며 느릿느릿 걸어 나갔다. 채 교탁에 도달하기도 전, 선생님은 말로 해결이 안 되겠다며 교실 밖으로 나가 교무실에 가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나름대로 지기 싫었던 난 내심 겁이 나면서도 망설임 없는 척 호기롭게 교무실로 향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교무실 문을 드르륵 열자, 일순간 그 안에 있던 선생님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따가운 눈총과 혀를 끌끌 차는 소리 속에, 나는 한구석 자리를 잡고 섰다. 마음속에 분노가 일었다.


시간이 흘러 수업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무실로 내려오셨다. 말을 건네시는 선생님의 표정과 어조가 생각보다 차분했다.

 “수업 시간에 그런 짓은 왜 한 거야? 이유나 알자.”

 “저는 보충수업 같은 거 해달라고 한 적 없어서 그냥 제 할 일 한 것뿐인데요? 학생들이 원하지도 않는 수업한다고 집에도 안 보내주는 게 문제 아니에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

반항 태세를 갖추고 전열을 다지고 있던 내게, 선생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정면 대결을 슬쩍 피한 선생님은 아까 쓰고 있던 게 뭐냐며 뭔지 봐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고압적인 교사들의 모습만 익숙하게 보아왔던 내게, 보충수업 때문에 그날 처음 우리 반 교실로 오셨던 그 변성희 선생님은 어딘가 다른 어른이라 느껴졌다. 원래 취하려던 공격적 자세는 간 데 없고 어느새 깊은 속사정 이야기까지 술술 털어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니들이며 나와 동생까지 매달 생활비에 학비 대느라 힘드신 부모님께 내 취미 생활할 용돈도 필요하다는 말을 도저히 못하겠다고. 이렇게 매달 사연이나 퍼즐을 응모해서 뽑히면 한 달 치 잡지를 상품으로 받을 수 있다고. 나는 영화평론가가 되는 꿈을 종종 꾼다고.


선생님의 눈시울이 붉어지나 싶더니 내 손을 맞잡으셨다.

 “너, 원래는 참 기특한 녀석이구나.”

그 말이 참 얼떨떨하면서도 벅찼다.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귀에 설고도 인자한 그 말이 내겐 과분한 듯싶어 어딘가 겸연쩍어졌다.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창피를 주려고 교무실로 보내신 거라 짐작했었다. 수업 진도를 놓쳤으니 교무실 바닥에 꿇어 앉아 나머지 공부나 하라고 시키실 줄 알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어른이 아니었다. 기성세대를 믿지 않으려는 반항기 어린 학생에게 훈계하기보다는 먼저 귀 기울일 줄 아는 분이셨다.






시간이 십 몇 년여 흐른 지금, 나는 영화평론가가 아니다. 다음날 나를 따로 불러 구독하시는 영화주간지 씨네21을 한 묶음 챙겨주셨던 선생님. 선생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조금 서운해하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루지 못했을 지라도, 꿈을 품고 정성스럽게 살았던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에 거기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다만 생각해본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어떤 모습의 어른으로 커왔는지를.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역사』에는 고대 그리스의 훌륭한 정치가였던 솔론과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일화가 나온다. 당시 매우 번영했던 국가의 왕으로서 자신의 부와 권력에 도취되어 있던 왕 크로이소스는 그를 방문한 솔론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군지를 물었다. 그가 듣고 싶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솔론은 듣도 보도 못한 평범한 자의 이름을 댄다. 그다음으로 행복한 사람이 누군지를 묻자 이번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을 말했다. 참다 못한 크로이소스가 역정을 냈다.

 “솔론, 그대의 눈엔 내 행복이 그런 평민들보다도 못한 것이란 말인가?”


솔론이 앞서 언급한 자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다가 명예롭게 죽은 사람들로, 훗날 많은 이들이 그 죽음을 기렸던 아테네의 시민들이었다. 솔론은 말했다.

 “인생은 길고, 지금의 행복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을 보기 전까지는 그 삶이 행복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솔론에게 자신의 보물을 보여주는 크로이소스 / Gaspar van den Hoecke /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 미술관 소장 / 출처:  www.zlotywiek.mnw.art



큰 돈을 벌거나, 유명세를 얻거나, 남들 위에 군림할 권위를 가지려는 야망만을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은 결국 허망하다. 이기적인 욕망에만 매진하는 이의 뒷모습을 아름다웠다고 기억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인이 됐다고 성장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생을 마칠 때까지 꽃을 키우듯 늘 마음을 가꾸며 살아야 그 마음이 머금은 향기가 비로소 밖으로도 퍼지는 법이다.






우리가 모두 아는 흔한 이야기로 해와 바람이 외투 입은 사람을 두고 벌였던 경쟁에 대한 우화가 있다. 매서운 바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더욱 꽁꽁 여며 닫게 만든다. 먼저 따뜻하게 다가갔을 때, 마음의 외투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다.


많은 어른들이 나이를 권위로 착각한다. 웃어른은 공경하라 하면서, 아랫사람에 대한 존중은 잊기 쉽다. 그런 어른들을 보며 ‘어른=꼰대’라는 고정관념을 섣불리 가져버렸던 18살의 나에게, 변성희 선생님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를 처음 일깨워주신 분이었다. 권위에 반항한다고 길들이려 하시기보다, 해처럼 따뜻하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


꼰대 같지 않은 어른으로, 누구나에게 먼저 따뜻하게 다가가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생의 마지막까지도 거만 떨지 않고 늘 배움과 반성을 가까이하며,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잠깐 스치는 인연일지라도, 변성희 선생님이 내게 그러하셨듯 나 역시 상대방의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 뿌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는가. 

어느덧 그 시절 선생님의 나이와 비슷해져 가는 나,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 맞는지 새삼 되돌아본다.




Mila의 사는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mila/12


https://brunch.co.kr/@mila/14


매거진의 이전글 남친에게 쌩얼 들킨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