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광주가 끝나지 않고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고 있음을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통해 빙의하듯 투사하듯 켜켜이 되돌아보고 소설로 말한 이유는
그런 세상을 그런 반복을 망연히 지켜보려 했기 때문이 아니라 똑똑히 되짚음으로서 우리 모두가 이 반복이 더는 없도록 함께 각자 할 수 있는 말을, 행위를 해야하지 않겠냐는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물음은 다행스럽게도 공허하게 흩어지지 않아 이 나라의 시민 뿐 아니라 먼 나라,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결국 우리와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이웃일 전 세계 도처의 시민들의 마음에도 가 닿았고 그것이 올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상징적 결과로 나타났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마음이 이러할진대, 다음 주면 그 사실을 공표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식이 열릴 텐데, 하필 이런 때에 이런 공감대를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2024년 해가 다 저물기도 전에,
위임 받은 공권력을 사적인 목적으로 휘두르는 데 아무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정신 나간 시한폭탄이자 지지율 땅바닥인 제 분수도 모르고 착오적으로 독재를 꿈꾼 미치광이가
계엄군의 잔인한 폭거를, 5•18의 그 야만이 더는 이 2024년에도 과거가 아닐 수 있음을 황당하고도 무모하게 내보여 저지르고 말았다.
《소년이 온다》가 세계인의 갈채를 받는 일과 12•3 내란 친위 쿠데타가 같은 해, 같은 달에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이 나라 현실은 끔찍한 혼종의 카오스에 다름 아니다. 다수의 지성이 아무리 이 세계에 엄존해도 국민이 위임하는 국가권력, 그 어마어마한 권한을 손에 쥔 자가 하필 저런 팔푼이면 아무리 민주주의의 역사가 유구하게 무르익은 세상이라 한들 그 팔푼이 하나 때문에 일순간 대다수가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그러니 주권자들이 분연히 일어서 막아내지 않으면 우리는 일상의 평화를 지켜낼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이번에 똑똑히 목격했다.
스스로 그간 저질러온 각종 범죄를 제 남편이 대통령에 앉기만 하면 다 면피할 수 있을 거라고 그 자리 또한 실상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이라는 시한부 신분도 생각 않고 착각하고 있던 멍텅구리가 이제 와서 감옥 갈까 슬슬 두려워지니 전범국 일본이 이 땅에 저지른 범죄 눈감아주는 대가로 뒷배삼아 이 나라에 또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그 안전한 뒷배가 마련해주는 어딘가로 피신하기를 기도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더 이상 망상이 아닐 수 있다.
그런 위험한 범법자를 사랑하는 아내랍시고 비상계엄도 불사하겠다는 팔불출 등신을 당 대표라는 자도 속수무책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는 무능이면 직무 정지 시켜버리는 것 외에 다른 막을 방법이 없는 게 자명하다.
그러니까 저 망나니 푼수의 폭주를 탄핵 소추와 내란 수괴 처벌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언제고 감옥 안 가려는 도피의 기도 또는 감옥행을 무산시킬 독재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극악무도한 계엄 선포를 재차 삼차 저지를지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5천만 주권자의 권리를 위임받은 자가 저리 어리석고 모자라면 그로부터 성숙한 태도를 기대하는 건 헛된 망상이다. 아직까지도 자기는 잘못이 없다면서 사과 한 마디 않고 얼굴 한 번 내비추지 않는, 저리 멍청하고 뻔뻔한 자일수록 순순히 그 권력을 내놓을 리 없다는 걸 우린 모두 직시하고 행동으로 주권자의 마음과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8년 전에도 우리는 겨울의 밤, 광장에 함께 섰다. 광장이 실종되어가는 세상 속에도 결국 답은 광장 뿐임을 절감한다. 다시 꺼내든 #소년이온다 를 본다. 그 어느 때보다도, 광장에 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