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Nov 03. 2021

로드리고 <아랑훼즈 협주곡>

 


영국 음반 비평 잡지 '그라모폰'의 트위터에서 지속적으로 일종의 "명곡 명연주 추천" 기사를 올려주고 있는데, 최근에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에 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잉글리시 혼과 기타가 호흡을 이어가며 아련한 감성을 만들어 내는 2악장은 한때 국내 TV 채널에서 주말의 명화 코너의 소개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었고,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은 노래로 편곡되는 등 특히나 인기가 좋은데요


https://www.youtube.com/watch?v=ekznnxaGzNU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그리 진지하게 전곡을 다양한 연주로 파고들어 본 적이 없는 곡이어서, 오히려 이번 잡지의 소개가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기사 내용 중에 뒤카스의 이름이 거론되기에 위키디피아를 찾아보니, 파리음악원의 스승과 제자 사이었더군요.





"아랑훼즈"란 이름은 마드리드의 남쪽 72km에 위치한 '아랑훼즈 궁전'에서 따온 것인데,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궁전이라고 합니다. 이곳의 정원을 좋아하던 로드리고가 정원에서 피어나는 목련의 향기와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물이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분수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1936년에 작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으로는 신고전주의를 그리고 감성적으로는 낭만주의의 전통을 토대로 완성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선호가 높은 음반이 따로 없었기에, 잡지가 소개하는 음반 리스트들을 애플뮤직에서 찾아서 들어보았는데요,


가장 최근에 녹음된 Sharon Isbin과 뉴욕필의 연주는 작곡가가 사랑했던 여름 정원의 꽃향기와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차분하고 시적인 느낌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선명하고 맑은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협연을 하고 있는 뉴욕필의 반주가 조금은 경직되어 있는 편이라 (이후에 소개할 음반들의 오케스트라들에 비해서) 로드리고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이국적인 리듬이 살아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샤론 이즈빈은 줄리어드 음대의 기악과에 기타를 포함시킨 미국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라고 소개가 나오는군요. 



그라모폰에 소개되고 있진 않지만 애플뮤직에서 샤론 이즈빈을 검색하니 같이 등장하는 고란 쇨셰르의 연주도 들어보았는데, 전체적인 스타일은 샤론 이즈빈과 유사하나 오르페우스 실내악단과의 협연 덕인지 샤론 이즈빈의 연주에 비해 조금 더 기타 독주의 리듬에서 여유가 느껴집니다.


 





이번 기사 덕분에 작곡가로부터 이 곡을 헌정받은 것으로 알려진 사인스 델라 마스의 녹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48년 녹음입니다. (63년 스튜디오 레코딩이 구글에서는 검색되는데 애플뮤직에서는 못 찾았습니다)



일단 전체적인 템포 설정이 무척 자유로운데. 대체적으로 기타 음색은 무척 가볍고 빠른 편입니다. 

이 곡에 관해서 작곡가와 많은 교감이 있었으리라 믿어지는 연주자이니 작곡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을진대, 2악장의 아다지오를 이토록 경쾌하게 연주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인스 델 라 마스는 탁월한 기타의 기교를 들려주는데, 듣고 있다 보면 현란한 오른손 손가락의 움직임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녹음 상태가 그리 좋진 못한 편이라 특별히 이 협주곡의 팬이 아니시라면 크게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잡지에서는 스페인 작곡가의 기타 협주곡이어서인지 특별히 The Flamenco Choice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플라멩코 기타 리스트인 파코 데 루시아의 녹음을 추천하고 있는데,



1악장의 시작부터 약간은 거친듯한 소리를 아주 빠르고 매끄러운 진행으로 들려주는데, 부분 부분 튀어나오는 즉흥적인 템포와 악센트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물론 작곡가가 의도했다는 차분하고 시적인 풍경의 묘사와는 거리가 느껴지지만 묘하게 템포를 꼬아서 약간은 구슬픈 느낌을 전달하는 색다른 느낌이 아주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2악장은 오히려 훨씬 늘어진 템포로 감정의 진폭을 넓히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전체적인 템포는 느리지만 1악장과 마찬가지로 중간중간 독특한 리듬의 악센트를 집어넣어주는 색다른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잡지가 꼽은 베스트 레코딩은 페페 로메로와 네빌 마리너가 지휘하는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아카데미 실내 관현악단의 협연입니다.



 

위의 연주들과 비교하면 가장 정제된 독주와 여유 있는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플라멩코 스타일에 비해선 약간 교과서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1악장의 빠른 스케일 프레이즈 부분 등에서 모차르트로 정평이 난 매리너가 리드하는 교향악단은 정확하게 기타의 지점을 따라가고 있고, 기타는 명징하고 윤기 넘치는 음색으로 여유로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2악장에서는 감정적인 치우침을 배제하고 균형 잡힌 진행을 보여주는 데, 약간은 좀 더 로맨틱한 접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번에 들어본 녹음 중에서 2악장만을 떼어내어 추천한다면 나르시소 예페스의 음반이 좀 더 울림이 큰 기타 소리를 통해 낭만적인 접근을 들려주는 듯 느껴지는데, 하지만 전체적인 균형감이나 기타 소리의 질감 등을 바탕으로 제가 꼽은 한 장의 추천 음반은 줄리언 브림과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입니다.


 



약간은 에코가 많이 들어간 과장되게 울려 퍼지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기타 소리가 평소라면 제 취향이 아닐진대, 이번에 듣게 된 다양한 녹음들 중에서는 이런 조금은 유치한듯한 접근이 <아랑훼즈 협주곡>의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행히 유튜브에도 줄리언 브림의 녹음 전곡이 올라와 있습니다. 함께 들어 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SPuFiFRdM8s






 

  



작가의 이전글 줄리언 오피(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