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dge maze 가든
연휴 기간에 영화를 보려고 넷플릭스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우연히 메이즈 러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화는 이미 본 것이라 다시 보지는 않았지만, 문뜩 Hedge Maze가 궁금해졌습니다. 유럽의 궁전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정원의 한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의 정원 만들기는 16세기 중반 무렵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들이 영화 등에서 많이 접하는 것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공간 (미궁)이란 개념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산책로를 좀 더 숲에 가깝게, 그리고 작은 공간에서 긴 산책로의 효과를 주기 위한 Gardening개념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즉 심미적인 요소와 건강을 위한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름이 Labyrinth가 아닌 Maze로 된 이유가 궁금한데요, 현대에 와서 Maze(미로)는 Labyrinth(미궁)와 혼용해서 많이 쓰입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미로는 입구에서 출구까지 여러 갈래길이 있고 데드엔드가 존재하는 반면 미궁은 하나의 출발점에서 가운데로 갔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직선으로 연결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의 기원은 상당히 다른데요, Labyrinth는 그 기원이 그리스 신화에서 시작됩니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미노타우루스'라는 괴물로 골치가 아픕니다. 그래서 솜씨 좋은 장인 데달루스를 시켜 괴물을 가두어 둘 미궁 Labyrinth를 만들게 합니다. 그리고 아테네에게 괴물에 바칠 제물로 살아있는 젊은이를 보내도록 하는데요, 그리스의 왕자 테세우스가 이 흑역사를 끝내기 위해 자원해서 미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이 왕자에게 마음이 빼앗겨, 미궁에서 나오는 방법으로 실타래를 건네줍니다.
그리하여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를 처치하고 실의 끝을 입구에 잘 묶어둔 채 타래를 풀면서 들어갔다가 다시 그 실을 따라서 입구를 찾게 됩니다. 이런 신화에 의해 미궁(Labyrinth)은 우리에게 들어가면 못 나오는 곳, 그 안에는 엄청난 괴물이 살고 있는 두려운 곳이란 원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Maze는 중세 영어에 등장한다고 하는데, 많은 학자들은 Amaze에서 나온 단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라비린스처럼 두렵거나 공포스러운 문화적 원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단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문화에서는 이 정원의 이름이 메이즈 여야 하지, 라비린스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형태상 거의 유사성을 지닌 미궁과 미로 사이에서 이 미로식 정원은 어느덧 미궁이 가진 의미를 가져버리게 됩니다.
그 시작점이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 아닌가 싶은데요, 그 이후에 '해리포터 불의 잔'편에서도 유사한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사용되며, 메이즈 러너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문화코드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문화적 원형이 그 내용은 빠지고 이미지만이 차용돼서 다른 문화적 코드로 사용되는 '의미의 변용'에 관한 아주 재미있는 예인 것 같습니다.
잠깐 옆길로 빠져 보면,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이 신화를 차용해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데요, 돌아오는 길을 찾기 위한 실타래로 처음에는 하얗고 작은 돌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미처 조약돌을 준비하지 못해 빵 부스러기를 길에 떨어 뜨리는데, 새들이 다 먹어치워 결국 숲에서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하게 되죠.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가지고 만들어집니다. 사실 스탠리 큐브릭은 기존의 소설을 개작해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도 이해가 힘든 어려운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더군다나 영화 평론가들은 너무 영화 창작 기법적인 측면으로 해석을 시도하다 보니, 전체적인 이해가 안 되고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작인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소설 (traumnovelle dreamstory)을 영화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훨씬 영화 전체에 대한 이해가 쉬워집니다. 특히 영화 속의 도덕성 부분에서 감독의 의도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있는데, 20세기 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특별히 감독의 의도랄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기본 이해를 하고 난 그 이후에는 20세기 초와 20세기 말을 오가는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감독이 기획하는 미장센을 따라가는 것에 훨씬 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20세기 초반의 풍속과 엮어서 다시 한번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샤이닝'은 워낙 유명한 영화라 장면들이나, 배경에 대한 글이 많은데, 저는 잘 안 다루어지는 두 가지 포인트와 Hedge Maze를 말해 볼까 합니다.
첫 번째는 음악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는 항상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의 사용으로도 유명한데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란 이름이 '2001 오딧세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널리 알려졌을까 싶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의 음악에 대해 영화의 한 대목 덕분에 대중들이 많이 오해하고 있는 슬픔도 있습니다)
'샤이닝'에서도 상당히 음악을 독특하게 쓰고 있습니다. 우선 대부분의 장면에 사용된 음악은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현대 음악계 거장들의 작품을 차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보시면 출연한 배우들은 2번에 걸쳐 반반 나누어서 동시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은 Music by란 장면 뒤에 작곡자 한 명 한 명 이름이 각각 소개되는 데요,
이것을 통해서도 감독이 음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펜데레츠키, 리게티 등은 영화가 만들어진 70년대 후반의 시대를 생각하면 정말 혁신적인 젊은 작곡가 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현대음악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고전음악 작법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며 , 그렇기에 음악적 의도와 상관없이 대중들에게는 미지의 느낌을 주는 그래서 긴장감과 불안감을 만들어 내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사이코의 음악과 비교해 본다면, 사이코의 음악은 기본 음악의 틀에 중간중간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는 현악기의 소리 등으로 깜짝 놀라는 효과를 가져온다면, 샤이닝의 음악은 전체적인 기조가 계속해서 느리면서 불편하고 불안함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벨라 바르톡의 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엔딩 크레딧에 연주자와 레코딩 회사까지 명기되고 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감독이 리게티의 음악 등을 작곡자의 허락 없이 썼던 전력 때문에, 조심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라모폰과 카라얀은 역대 최고의 음반 판매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팀인데, 함부로 썼다간 엄청난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벨라 바르톡은 현대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에 사용된 music for strings, perccusion and celesta은 피보나치수열 등을 작곡에 이용한 바르톡의 기법이 정점에 이른 곡입니다.
이 곡에 관해서 많은 학자들이 수학적으로 도식적으로 분석한 내용이 많은데 (위의 이미지가 대표적입니다) 미장센으로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이 이 곡의 이런 다양한 기하학적 분석과 영화의 내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장면을 준비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https://youtu.be/m129k5YcQnU ( 원곡 유튜브 링크)
두 번째 포인트는 영화의 첫 부분에 나오는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향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굽이진 낭떠러지 같은 길을 차로 가는 장면은 영화의 전체 전개가 얼마나 불안하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으며, 그 부분에는 배경음악으로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의 5악장' 부분을 편곡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환상 교향곡'은 작곡가가 곡에 대한 설명을 붙인 표제음악의 대표적인 곡인데 특히 5악장은 예술가(작곡가)의 꿈속에 마녀들이 등장해서 주인공을 심리적으로 괴롭히는 내용으로 영화의 전체 내용에 대한 큰 암시를 담고 있습니다.
이 환상교향곡 5악장은 이후 '적과의 동침'이란 영화에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부분은 편곡되어 사용된 때문인지, 아니면 사후의 작곡가여서 시빗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엔딩크레딧에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낭떠러지 길을 굽이 굽이 차로 가는 이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청년기 실험작인 'The Duel(트럭)'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단지 차 2대와 한 명의 배우를 가지고 이토록 불안한 느낌이 드는 스릴러 물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수작이라고 생각되는 데요, 71년 최초로 제작된 이 영화는 대형 트럭 (운전자의 신원이나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픽업트럭 기사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심리 스릴러 물입니다. 낭떠러지 같은 길 위에서 큰 트럭에 밀려 저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꼭 큰 트럭의 위협이 없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의 상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불안감입니다. 그런 장면을 영리하게 만들어낸 스필버그의 실력이 꽤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Hedge Maze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Wendy(엄마)와 Danny(아들) 이 손을 잡고 호텔의 정원에 있는 Hedge Maze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동시에 주인공 Jack은 호텔 실내에서 축소 모델로 되어 있는 Hedge Maze를 보고 있습니다. 카메라의 시선이 잭의 시선을 대변하며, 전지적 시점으로 하늘 위에서 엄마와 아들이 미로 속에 갇혀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화면이 표현됩니다. 많은 영화 평론가들은 신의 위치에서 악당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영화의 미장센을 풀어내고 있는데요,
저는 이런 해석이 가능한 또한 감독이 이런 세팅을 가능케 한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미로에 갇혀있는 상태에서 그곳을 빠져나오는 일련의 행위들은 많은 심리학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Rat Maze 실험들이 다양하게 진행됩니다. 이런 과학적 실험들은 이후 세대에게 미로와 관련된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 냅니다. 무기력한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인간의 관계에서 무기력한 엄마와 아들 그리고 이점을 신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악당 또는 보이지 않는 힘과 미로 속에 갇힌 피지배자의 무력함 등.
그래서 최초에는 건강과 심미적인 기원을 갖는 유럽식 정원이 할리우드를 통해서 의미가 변형된 이후 세대인 저는 저도 모르게 새로운 기호에 익숙해져서, 유럽여행에서 이런 아름다운 정원을 보면 그 정원이 원래 가지고 있던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저도 모르게 피부에 소름이 돋아버리고 마는 실험용 쥐 같은 꼴이 되어버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