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
겸손이 미덕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잘난 체만 금기시되었던 것이 아니라, 잘남도 어느 정도는 숨겨야 했던, 그래야만 인정받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컴버배치처럼 잘남을 연기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외모의 잘남이 아닌 뇌가 잘남을 연기하는 컴버배치는 그런 이미지를 통해 셜록, 퍼레이즈 엔드, 제5계급, 이미테이션 게임 등 머리 좋은 남자의 전형들을 다양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지리와 화학 등에 통달한 그리고 예술에 대해서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코난 도일이 첫 편인 주홍의 비밀에서 왓슨 박사의 입을 빌어 설명한 바에 의하면 ) 셜록을 연기한 이후
예술과 문학 전반에 걸쳐 그리고 통계학에 능통한 크리스토퍼(퍼레이즈 엔드)를 맡게 됩니다. 사랑 없이 한 순간의 불장난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고, 아내가 낳은 아이가 내 아이가 맞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주인공은 스스로가 주장하는 마지막 토리(토리 당원, 현재의 보수당)의 진정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한 혼인 서약에 충실하고, 가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시대에 벗어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모습에서 오히려 아내는 점점 더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크리스토퍼에게 상당한 지식을 갖춘 신여성이 등장하고, 크리스토퍼는 그녀와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순간 아내는 다시 남편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건 남편을 사랑하게 된 아내의 동기입니다. 한순간의 쾌락만을 위해 자신 곁에 다가오는 불나방 같은 주변의 많은 남자와 달리, 크리스토퍼는 사실 여성을 한 인격으로 존중해줄 주 아는 사람이었고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상당히 매력적인 남성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꽤 플로베르식인데요, 드라마 대사에 의하면 "그는 어떤 그림을 보던 어떤 음악을 듣던 그 순간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보바리 부인이 말하는 남성상과 한 번 비교해 보시죠
"남자란 모름지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 능하며 격정과 세련된 생활과 온갖 신비로 여자를 인도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사내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한 줄로만 알고 있다"이라고 하는데 바로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모든 것에 능하고 세련된 생활로 여자를 인도해 줄 수 있는 잘난 남자인 것이었죠.
지금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과거의 개념들이지만 각각의 당시에는 동시대를 넘어 변화하는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주인공 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잘 감지해서 꾀돌이처럼 이용한 요즘 세대의 배우 한 명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카라 델레바인입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서 (친가는 돈 많은 정치인 가문이며, 외가는 돈 많은 문화 언론계의 거물이랍니다) 벨그라비아라는 세계 최고의 부촌 중에 하나인 런던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납니다.
벨그라비아는 북으로는 하이드 파크, 북동으로는 버킹검 궁전, 북서로는 해로즈 백화점과 하비니콜스 백화점 그리고 남서로는 첼시 등과 경계를 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다시 말해 세발자전거를 타고 또는 그 보다 더 어렸을 때는 유모가 밀어주는 유모차에 타고 엄마와 산보로 버킹검 궁전에서 사치 갤러리를 둘러볼 수 있는 지역인 거죠. 그러다가 지치고 목이 마르면 Absolutely fabulous의 주인공들처럼 코 앞에 있는 카페에도 재규어를 타고 거들먹거리면서 가서, 런던의 유명한 애프터눈 티를 마실 수 있는 바로 그런 동네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당연히 버릇이 있을 리가 없고, 어려서 부터 다수의 셀럽들에 둘러싸여 자라온 익숙함등으로 유명인사들 사진 찍는데 뒤에 가서 혀를 내밀고 얼굴을 들이미는 funny face 퍼포먼스로 꽤 유명세를 탑니다.
하지만 유명해진다는 건 반대로 안티도 많아진다는 거죠. 그래서 이 젊은 스타 지망생의 funny face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골치 거리가 되어 가는데요, 그러다가 모델을 그만두고 연기를 하고 싶어 하기 시작합니다.
근데 이런 망가진 얼굴로 이미지 관리가 안되어 있는 배우를 누가 써줄까요?
여기서 묘수가 등장합니다. sns 등을 통해 춤추고 노래하고 짓고 까부는 모습을 다 보여 주었던 이 젊은 친구는 전설적인 여배우의 인터뷰 멘트를 이용해서 멋지게 스스로를 Re-positioning 합니다.
바로 영화 'Funny face'에 나왔던 오드리 헵번의 유명한 인터뷰입니다.
영화 퍼니 페이스는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패션잡지 편집장과 사진작가가 새롭고 참신한 표지 모델을 찾아 나서는데서 시작합니다. 여태까지의 모델과 달리 뭔가 이지적인 모델을 찾아보자고 하는 거죠. 그러던 중에 우연히 서점에서 근무하는 아가씨 조 스탁턴 (오드리 헵번)을 본 사진작가 딕 에이버리 (프레드 아스테어)는 그녀의 모습에 호감을 갖고 잡지 모델로 사진 촬영을 시작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Happlily ever after로 끝나는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입니다. 안무와 춤으로 유명했던 프레드 아스테어와 뮤지컬을 찍게 된 오드리 헵번은 겸손한 어투로 위에 인용처럼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카라 델 러바인의 sns에서의 외침입니다.
오드리 헵번의 겸손한 couldn't가 도전적인 can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2012년 안나 카레니나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해서 2014년 심리 스릴러 물인 The Face of an Angel에 주요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영화 제목에 Face가 들어갑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리고 그녀의 외침에 화답하는 영국 언론사 한 군데의 평이 나옵니다. The Metro라는 지하철에서 나누어 주는 무가지인데요,
"In her [Delevingne's] first major film role, she proves she can act with a sweet and playful on-screen presence. She brings a sense of vitality that is desperately missing from the rest of the film." 영국 사람들의 블랙 유머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신문평입니다.
이후에 "발레리안 천 개의 행성"에서 데인 드한 과 남녀 주인공을 연기하는 데요,
결국 그녀는 can act까지인 것 같습니다. act well은 요원해 보이는 연기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