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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Mar 11. 2019

프루스트, 스테이크 그리고 감자튀김

진정한 국민 음식?

 꽤 오래전 일입니다. 다국적 기업에 다니던 때라, 글로벌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면 각국에서 온 동료들과 만나서 서로의 문화나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한 친구가 서로 자기 나라의 대표 음식에 대해서 말해 보자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드디어 프랑스에서 온 친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이야기도 듣기 전에 얼마나 맛있는 음식 이름이 나올까 하는 기대에 마른 군침들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헌데, 한참을 고민하던 이 친구가 꺼낸 요리명은 바로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이였습니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달팽이에 프와그라에 송로버섯에 부에야 바스까지 모든 사람이 올림픽 100m 결승전 마지막 순간을 앞둔 것처럼 치열하게 자신들이 아는 프랑스 요리명을 꺼내 들었지만, 그 프랑스 친구는 "사실 나는 그런 음식을 잘 모른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중요한 날 정찬을 준비하면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을 많이 한다"라고 이야기하며 끝을 맺었고, 잔뜩 품었던 기대와 다른 대답으로 우리 모두는 씁쓸해진 실망감에 커피 한 모금을 더해서 이열치열 같은 느낌을 맛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십수 년이 흐른 어느 날 프루스트가 쓴 "참깨와 백합 서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의 "참깨와 백합"을 번역한 프루스트가 그 번역본의 서문으로 첨부한 글이었습니다. 

 번역본의 서문임에도 번역한 글과 유사성이 전혀 없는 프루스트 본인 개인의 생각을 쓴 글이었는데, 여기에 이런 부분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소설이나 시처럼 자기 분수를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는 여성다운 겸손을 보이며 언제나 가장 가장 정통한 이들의 의견을 따랐다. 그녀는 그런 분야는 변덕에 따라 춤을 주므로 한 사람의 취향이 진리를 결정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규칙과 원칙을 배운 분야, 어떤 요리를 만드는 방법이라든가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는 방식, 손님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완벽에 대한 정확한 생각을 품고 있었

고, 다른 사람들이 완벽에 어느 정도 근접했는지 식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요리, 연주, 손님맞이, 세 가

지 모두가 완벽함은 거의 동일했다. 수단의 간결성, 절제 그리고 매력, 그녀는 양념이 꼭 필요하지 않은

요리에 양념을 넣는 것, 페달을 과도하게 밟아 부자연스럽게 연주하는 것, "손님을 맞이하면서”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한 입만 먹어봐도, 첫음

절만 들어도, 짤막한 쪽지만 봐도 그녀는 상대가 훌륭한 요리사인지, 진짜 음악가인지, 제대로 교육받은

여자인지 안다고 자부했다 “저 여자는 나보다 손가락이 더 많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단순한 안단테를 저렇게 과장해서 치다니 심미안이 없어"아주 똑똑하고 장점이 많은 여자인지는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자기 얘기를 하다니 요령이 없어” “박식한 요리사인지는 몰라도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은 할 줄 모르는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단순하지만 어려워 경연 대회의 이상적인 과제가 되는 이 요리는 요리 분야의 <비창 소나타>와 같은데, 어느 하인에 관해 알아보려고 당신을 찾아온 귀부인의 방문이 사회생활에서 갖는 의미와 이 요리가 식도락에서 갖는 의미는 마찬가지다. 이런 방문 같은 단순한 행동에서 요령이 있는지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고 보니, 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이 프랑스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음식이었나 봅니다. 프루스트에게 있어서 비창 소나타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베토벤의 이 뛰어난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노를 왠 만큼 학습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그런 곡입니다. 아주 기교적으로 어렵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은 연주를 하기가 쉽지도 않은, 다시말해 뛰어난 음악적 감각이 요구되는 곡이라고 할까요?


 프랑스 사람들에게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은 바로 이런 요리인가 봅니다. 고기와 감자만 있으면 누구든지 요리를 하는게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막상 제대로 맛을 내기는 쉽지 않은 그런 요리. 프루스트의 표현대로 많이 알기만 하는 요리사에게는 제대로 하기 쉽지 않은 메뉴였던 겁니다.


 갖은 소스를 뿌려먹는 패밀리 레스토랑식 스테이크가 아닌, 제대로 된 스테이크는 사실 유명한 쉐프에게도 쉽지 않은 요리입니다. 좋은 고기를 골라서, 잘 숙성을 시킨 후,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서, 알맞은 온도에 적절하게 익혀야 합니다. 그래서 육즙이 살아있으면서 부드러움이 느껴져야 하지요. 또 적당한 소금간을 통해서 고기의 고소함을 살리고 느끼함을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재료의 본질에 가장 적합하게 요리를 해야 한다고나 할까요?


 감자튀김 역시, 좋은 감자를 잘 고르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적당한 시간 동안 물에 넣어서 끈기를 없애야 합니다. 그런 후,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우면서, 겉은 바싹한 그런 질감을 내도록 튀겨야 합니다. 벨기에나 네덜란드의 감자튀김은 생선기름을 튀김오일에 섞어서, 독특한 조미료의 맛을 더해줍니다.  



 심지어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Steak frites'란 항목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전통 음식이며, 지금도 그들 음식의  메인 코스로 자리잡고 있고, 전세계의 프랑스식 음식점에서 메인 메뉴로 소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날 저한테 차례가 돌아오면 저는 '비빔밥'을 말해볼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비빔밥이 무엇인가요? 막상 비빔밥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 '비빔밥'이 나에게 또는 우리에게 어떤 음식이었을까를 생각해보니 참 막막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이후 비빔밥은 제 마음속에 큰 짐이 되어버렸고, 이 짐은 진주에서 올라온 친구를 만나는 날까지 마음속 창고 저 밑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진주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강했던 이 친구는 우리에게 "야 육회가 들어간 건 진주식 비빔밥이야, 전주식이 아니고, 그리고 너희들 진주식 물냉면 먹어봤냐? 그것도 안 먹어 보고, 무슨 물냉면은 평양식이라고 우겨대는 거야!"라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진주식 물냉면에 대한 궁금증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을 통해 정보를 얻고 수도권에 있는 몇 집을 찾아가 궁금증을 해소했습니다. 뒤포리를 달여, 고기 육수와 섞은 그 독특함은 사실 강한 맛을 선호하는 평범한 우리네 식성에는 알려지기만 한다면 평양식 보다 더 인기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이 진주 냉면집들은 본인들의 자부심인 진주식 비빔밥들도 선을 보이고 있는데요, 쇠고기 육회를 쓰고, 엿꼬장이라는 특별한 고추장을 쓰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비빔밥이 바로 진주식이었나 봅니다.


궁금해서 더 자료를 찾아보니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 이야기'라는 한식재단에서 펴낸 책에 비빔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제사와 품앗이 문화가 만들어 낸 문화라고 하는데, 비빔밥은 이렇게 보면, 양반과 농민이라는 서로 다른 대립된 계급들이 각기 다 좋아했던 음식이라고 생각되며, 비빔밥의 이런 점을 알고 나니, 진정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반식이었던 안동식 비빔밥은 한때 (요즘은 얘기를 잘 들을 수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헛 제삿밥'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으며, 고추장이 안 들어가고, 간장과 다시마 부각을 이용해 비벼먹는 음식입니다.


 또 전주비빔밥은 노란색 황토묵을 얹어 먹었다고 하고, 콩나물과 30여 가지의 다양한 재료를 올려 잘 가꿔진 화원을 보는 듯하다고 해서, 꽃밥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전주에 내려가서 먹는 육회가 얻어진 비빔밥은 슬프게도 전주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비빔밥에 대한 기록은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세에서 처음 등장한다고 하는데요, "밥을 정히 짓고 고기는 재워 볶고 간납은 무쳐 선다. 각색 남새를 볶아 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 놓는다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라고 쓰여있다고 합니다.


 고춧가루가 현재보다 귀했을 당시 상황에 따라, 초기에는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주식에서 언급된 엿 꼬장이라는 게 당시에는 무척 신기한 맛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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