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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Feb 21. 2019

B and What?

스피커를 이야기하다

 오래된 지인들과의 정기 모임에서 무슨 연유인지 드문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들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심경에 변화들이 생겼는지, 자리를 옮겨 2차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각자 편한 사람들끼리 장소를 옮기고는 했지만 이렇게 단체로 다 같이 2차를 가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술자리에는 차를 안 가지고 가는 평소 습관 탓에 한 지인의 차에 동승해서 2차 모임의 장소로 출발을 하는데, 이 친구가 휴대폰을 car audio와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음악을 틀어줍니다. 예상 못했던 모차르트 돈조바니가 흘러나옵니다. 돈조바니와 체를리나의 2중창인 'La ci darem la ma no'가 들려오는데,  더 놀라운 건 저한테 음악이 혹시 부담스럽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아니, 나 돈 조반니 좋아해' '그리고 도밍고도 좋아하고'라고 대답했습니다. ( 이 바리톤과 소프라노를 위한 이중창을 테너 도밍고가 부른 이유는, 바리톤으로 시작했다가 테너로 변신한 도밍고가 종종 바리톤 역의 노래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노래의 성격상 중저음부의 표현만 가능하다면 테너의 밝은 음색이 잘 어울리는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I1BkAr3NiE


 여러 가수와 같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차에서 들은 건 아마도 상대역이 캐슬린 배틀이지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둘이 서로 쳐다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오랜 기간 알아왔던 사이였는데, 전 그 친구가 차에서 모차르트 오페라를 틀 거란 예상을 한적도 없었고, 그 친구 역시 제가 오페라를 좋아한다고 생각을 못했던 겁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누군가를 만나 그를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왜곡된 생각일 수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쨌건 그걸 계기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거기다 그 친구 차의 오디오가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Bowers & Wilkins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B&O의 인기에 가려져 가끔 B&W라고 말하면 B&O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만, 전 세계적으로 Loud Speaker업계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브랜드입니다. 특히나 레코딩 스튜디오의 레퍼런스 스피커 시장에서 절대 강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나온 노틸러스 (디자인이 바다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해저 2만 리에 나오는 잠수함 이름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노틸러스는 원래 위 스피커 모양과 유사한 조개의 이름이었고, 고대 라틴어에서 항해하는 자들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쥘 베른은 아마도 라틴어의 의미에서 자신의 책에 나오는 신기한 잠수함의 이름을 딴 것 같습니다)가 B&W의 소리에 대한 철학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하는데요, 몸체 밖으로 나온 스피커 유니트의 관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이들에 의하면 각각의 스피커 유니트의 후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스피커 통 안에서 서로 중첩되면서 소리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앵무조개


 2차 대전 당시에 영국군에서 라디오 장비(무전기) 관련 업무를 했던 존 바우어는 종전 이후 자그마한 전자제품 매장을 열고 자기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아 직접 스피커 개발에 몰두합니다. 그의 고전음악에 대한 사랑과 이해에 동감을 한 투자자가 생기고 이 투자금을 이용해 그는 가구 장인들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던 스피커를 첨단 전자 제품으로 발전시킵니다. 영국의 전통 스피커 브랜드인 탄노이등을 보면, Box 형태의 목재 체임버 안에 소리가 흐르는 통로에 대한 다양한 설계를 통해 그들만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요, 이러한 소리는 브랜드의 개성을 표현하는 데는 적합하지만, 실제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기에는 음향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예를 들어 탄노이 애호가들은 웨스터민스터에서 흘러나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최고로 치겠지만, 조수미가 부른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듣게 된다면 오히려 웬만한 블루투스 스피커만도 못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 덕에 이런 전설의 스피커들은 고유의 소리를 갖고 있고, 브랜드별로 그 소리에 대한 마니아를 만들어 낸다면, B&W의 음질은 레코딩 엔지니어들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이런 B&W의 고집은 실황연주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재생하겠다는 창업자의 철학이 담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다 보니, B&W의 최고가 스피커 가격이 90,000 USD에 육박하게 되는데요, 이들이 노틸러스를 발표한 이래, 최고가 경쟁이 붙기 시작해 지금은 Goldmund, Kharma 등 국내에 소개된 제품들도 노틸러스의 가격은 껌으로 만들어 버리는 몇 억을 넘는 스피커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이 정도 비용이 과연 합당한가에 대한 찬반도 무척 많은 것 같은데요, 실물을 보면 멋진 조각 작품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한 소리 역시 대단히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기능적인 스피커보다는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하고 가격을 매긴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 살 생각이 있지는 않습니다. 살 수도 없겠지만요)


 또 다른 측면으로는, 저는 항상 음악 애호가와 오디오 애호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취미의 영역인 거죠.  오디오 애호가는 소리를 찾는 탐험가이며, 음악 애호가는 완성된 곡에 대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인 거죠. 그렇기에 B&W브랜드는 레코딩 스튜디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음에도 오디오 기기 애호가들의 절대 지지를 얻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B&W 스피커와 연관이 있는 유명한 레코딩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전설적인 런던의 애비로드 스튜디오인데요, 작년에 스튜디오 공식 지정 스피커 브랜드로 선정됩니다. 사실 이런 co-marketing 활동 전에도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레퍼런스 스피커로 B&W의 제품을 오랜 기간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비틀스의 많은 음악이 녹음된 곳으로 특히 유명한데요,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가 바로 에비로드 스튜디오가 위치한 거리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멤버 4명이 길을 건너는 그 유명한 앨범입니다.



 사진에서 걸어가는 방향이 실제로는 스튜디오의 반대 방향이라고 하니까, 무사히 녹음을 잘 마친 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거라고 상상해 봅니다.  


 이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단지 팝 음악 녹음으로만 유명한 건 아닙니다. Studio one은 백 명 이상의 관현악단이 들어가서 녹음을 할 수 있는 대형 사이즈였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름을 들어봤을 Walter Legge란 명 프로듀서는 이곳에서 50년대 전후 최고의 스타들과 역사에 남을 명반들을 녹음해 냈습니다. 특히 부인이 된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의 명반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B&W 제품은 헤드폰 P7과 사운드바 Panorama인데요, 


 이 정도 제품이면 제가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를 듣고 즐기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제가 좋아하는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 같은 집을 짓고, 그 안에 Nautilus를 한조 들여놓으 후, 좋아하는 독일 오페라들을 들으며, 바롤로의 올드보이와 영보이의 대표주자인 쟈코모 콘테르노와 도메니코 클레리코의 바롤로를 같이 마시는 호사를 꿈꿔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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