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훈수의 왕 Jan 02. 2019

숨은 Satire 찾아보기 2

뱅크시를 아시나요?

 2018년 10월, 그 유명한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 난데없이 엄청난 소란이 벌어집니다. 


 치열한 경쟁 끝에 한 젊은 작가의 "풍선을 든 소녀" 란 작품이 백만 파운드를 조금 넘는 고가에 낙찰되고,. 이윽고 경매를 진행한 경매사가 망치를 내리치며, 경매가 백 몇만 파운드에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순간, 내려치던 망치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난데없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불이 난 건가 하고 사람들이 긴장하는 사이에 갑자기 분쇄기의 소음이 나면서, 경매에 출품된 바로 그 작품이 액자 안에서 잘게 잘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벌써 작년이네요, 우리는 해외토픽을 통해 이 황당 무괴한 퍼포먼스를 지켜봤었는데요, 이 작품의 작가가 바로 뱅크시입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당황해하는 경매 진행자들과 경매 참석한 고객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cnbc.com/video/2018/10/08/banksy-painting-self-destructs-after-sothebys-sale.html    (경매장 상황)


 이 에피소드 이후 뱅크시는 친절하게 자기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그 제작 과정을 기록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주지요.


https://www.independent.co.uk/arts-entertainment/art/news/banksy-girl-with-balloon-sothebys-auction-video-wrong-auction-art-a8589461.html  

(뱅크시의 설명 동영상)


뱅크시는 얼굴 없는 아티스트로 유명한데요, 영국의 길거리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그는 예술을 겉치레로 여기고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기존 예술계뿐, 사회적 권위에도 반하는 풍자적 작품을 내놓은 작가입니다. 유명한 초창기 퍼포먼스로는 박물관 테러 시리즈가 있습니다. 유명 미술관, 박물관에 몰래 들어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다른 작품 사이에 숨겨놓고 (사실은 숨기는 게 아니고, 잘 보이는 곳에 버젓이 걸어 둡니다)  작품의 감상에 큰 관심이 없는 관람객들의 허영기를 꼬집고 있습니다.







위에 사진들은 브루클린 뮤지움에서 벌인 퍼포먼스이고요





이 건 메트로폴리탄 뮤지움 오브 아트에서 벌인 퍼포먼스입니다.


작가가 길거리 아티스트라고 설명을 드렸는데요, 그러다 보니, 작가가 초기 무명 일 때는 여기저기 아무 담벼락에나 마구 낙서(작품활동)을 해댔는데, 현재는 그 작업은 그만두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2000년대 중반, 크리스티나 아귈레라 같은 유명인이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런던 소더비에서도 작품이 거래되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뱅크시의 낙서를 욕하던 담벼락의 주인들이 이제는 그 담벼락을 뜯어서 판매하기 시작하는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뜯어 낼 수 없는 공공 담벼락에만 작품 활동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술이라는 글자의 무게에 눌려 사실 그 자체를 감상하고 즐기는 데 서툴러 온 것 같습니다. 또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성이라는 마법이 돈의 힘과 맞물려, 더 비싼 작품일수록 더 좋은 예술이라는 이상한 논법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뱅크시라는 작가는 그래서 철저히 얼굴을 가리고 유명세와, 부를 앞세운 예술 시장을 다양한 방법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가는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립니다. 바로 2004년의 가짜 10파운드 지폐 사건입니다. 그 당시 영국의 10파운드 지폐에는 여왕의 얼굴이 등장하고 있었다는데요, 이 얼굴을 다이애나 황태자비로 바꾸어 버리고, 지폐에 표시되어 있는 "Bank of England" 도"Banksy of England"로 바꾸어버립니다. 그러고 나선, 이렇게 만든 지폐 다발을 "노팅힐 카니발"에 온 군중들에게 뿌려 댑니다. 이 장난 같은 퍼포먼스에서 돈을 주은 군중들 일부는 자기들이 진짜 돈을 주은 줄 착각하고, 주변의 펍에서 이 돈을 쓰려고 했다는군요. 근데 더 황당한 건, 이 에피소드의 소문이 퍼진 이후에 이베이에 이때 주은 10파운드 지폐들이 올라오는데, 200파운드 부근에 거래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존 시스템과 그에 짓눌려 살고 있는 세태를 비판하는 작가의 풍자극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작가의 작품이 그 풍자 속에 더 우스꽝스러운 '오브제'가 되어 버린,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더 큰 블랙코미디가 만들어져 버린 것입니다. 


 마르셀 뒤샹의 그 위대한 "변기" (물론 작품명은 "샘 fountain"이지만) 이래, 미술 자체에 대한 작가들 스스로의 많은 풍자와 비평들이 나오고, 그런 방향들이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방향의 풍자와 비평 조차도 시장을 형성하는 기존 세력에 의해 다시 새로운 시장으로 창조되고 있는 것조차 현실입니다. 


 심지어 맨 처음 언급했던 작품 파괴 프로젝트도, 큰 이슈로 인해, 파괴된 작품에 대해서 보험금을 청구하는 게 아니고, 그 자체가 새로운 뱅크시의 작품 창작이라며, 구매자가 손상된 그 상태로 작품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뱅크시에 관한 많은 소문 중에는, 자기의 작품에 가격이 매겨지는 걸 엄청 싫어하는 뱅크시의 이런 행동이 결국 작품값을 올리려는 계산된 술수가 아니겠나 라는 또 다른 반어적인 말들이 떠돌기도 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틀에서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술자리에서,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뱅크시만큼이나 혹은 더 비판적인 언행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결국 뱅크시가 여태 껏 선보인 거대한 Satire를 통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구성원 하나하나의 작은 외침이 만들어 내는 작은 파도의 포말들은 거대한 조류의 흐름 앞에서 절대 그 방향을 바꿀 힘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비관적인 사실만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