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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03. 2019

영화와 명품 인테리어 1

가구 이야기

 요즘 들어 국내에서도 가구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가구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3대 요소인 의식주 중에 주에 해당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1차적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보편적으로 나를 보여주는 입고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되고, 이 시기를 지나면 진정으로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가 주거하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이 지점을 막 들어가기 시작하는 것 아닌 가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의(패션)과 관련된 부분도 마찬가지였던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는 무엇이 진정 나와 어울리는지의 문제보다, 어떤 브랜드가 좀 더 유명한가에 대한 이슈가 더  큰 것 같습니다. 20세기 초 버틀란트 러셀이 영국 사회의 가구 문제에 대해 아주 유쾌한 비평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이 시리즈를 계속하면서 기회가 되면 그것도 한 번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브랜드가 중요한지의 문제가 지나가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어떻게 나의 공간에 접목시킬까 가 주요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를 잡지나 매장에서 얻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실제 공간에 접목된 사례를 주변에서 찾기가 어려운 실정인데요, 유명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가구와 인테리어를 통해 명 감독들이 어떤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할 때 어떤 가구를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알아보면서 간접적으로 가구와 인테리어에 대한 살아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시리즈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2회에 걸쳐 '아메리칸 사이코'와 '오렌지 시계태엽'을 가지고 얘기해 볼까 합니다.


두 영화가 모두 원작 소설에 기반을 두고 영화화된 공통점도 지니고 있고, 인간의 욕구와 광기에 대한 시대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그래서 두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집과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의 인테리어는 많은 상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인간의 내면적인 잔인한 폭력성과 시대에 의해 강요되는 인간성의 부재(공허함)를 보여주고 있는데, 외형적으로 이를 표현하는 방법이 세련됨입니다. 그러다 보니, 원작과는 약간은 다른 고급지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화면에서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재미있는 것은 대략 30년의 시차가 있는 두 영화가 생각하고 있는 인테리어의 기본 콘셉트입니다. 

 70년대 초의 인테리어는 2000년 초에 비해 바닥의 중요성이 훨씬 커 보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점차 고급 인테리어의 중심은 바닥이 아닌 벽면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입체가 되는 거냐고요? 단순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벽에 걸린 아트 등을 통해 훨씬 나의 개성을 분명히 보여주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거실에는 그 유명한 바르셀로나 체어와 힐하우스 체어가 등장합니다. 


 

 바르셀로나 체어는 가장 카피가 많은 제품이기도 하지요. 이 의자는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의 독일관을 위해 루드비히 미스반데로 와 위대한 여성 가구 디자이너인 릴리 라이히가 디자인을 한 의자입니다.  (몇 안 되는 당시의 여성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재능을 소속 건축사무실의 대표에게 빼앗기는 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의자도 보통은 미스 반데로의 의자로만 알려져 있고, 역사상 최고의 의자 디자인 중 하나로 유명한 르코르 부지에의 LC 시리즈 의자들도 사실 그의 건축 사무실 소속 여자 디자이너인 샬롯 페리앙의 디자인임이 최근 들어 소개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바우하우스 스타일인, 발달하는 공업기술을 바탕으로 좀 더 일반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즉 일반인을 위한 범용 상품을 만드는 컨셉과 달리 이 의자는 최초부터 독일관을 방문할 스페인 국왕을 위해 디자인되었다고 하며, 로마시대의 양식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고급스러움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킨토시가 디자인한 힐 하우스 체어는 기능적인 이유가 아닌 장식용으로서 디자인되고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이런 바르셀로나 체어나 힐하우스 체어를 나의 공간에 둔다고 해서, 나 만의 개성을 보여주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표현처럼 '레디 메이드' 아트라고 우기고 싶지만, 오리지널도 흔해지고 거기다가 카피까지 많아지면서 차별성을 부여하기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급 인테리어 시장에 등장하는 것이 미술작품입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술작품에 대한 기본 컨셉은 '유일함'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구도 동일한 것을 가질 수 없는 상품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아메리칸 사이코'는 독특한 가구를 보여주기보다는 거실의 주요 벽에 컨셉에 맞는 미술 작품을 걸어서 장면의 이미지를 완성시키고 있습니다.




  80년대 미국 미술계의 스타 중 한 명인 Robert Longo의 연작 시리즈 'men in the cities'중 두 점이 벽에 좌우 대칭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뒤틀린 감정의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데,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이미지적으로 완벽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출신의 잘 나가는 월가의 스타이며,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을 최고의 브랜드로만 갖추고 있지만 속이 비어있는 이 사이코 주인공을 보여주기에 딱 맞아 보입니다. 명함 하나에도 누구도 하지 못하는 독특한 종이와 독특한 방법을 시도하려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공허함 역시 하연 작품의 배경과 화이트톤의 인테리어가 묘하게 결합되어 느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즘 등장하기 시작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데요,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는 단순하고 심플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추상 미술이 그러하듯이 본질을 두고 나머지는 다 지워버려 단순화되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 진정한 '미니멀리즘'입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바르셀로나 의자는 왕을 위한 그러나 왕이 머무는 집이 아닌 한 번 왔다 가버리는 전시관을 위한 의자였고, 힐하우스 체어는 의자이지만 앉을 수 없는 그런 의자입니다. 거기에 시체를 처리하느라 튀는 붉은 피의 배경을 위한 화이트 벽면, 다시 말해, 삶의 진정한 의미가 없는 위선과 허영 그리고 뒤틀린 감정을 가장 순도 높게 보여주고 있는 인테리어라고 생각됩니다.



 그에 반해 스탠리 큐브릭은 당시 유행하는 스타일의 가구들을 재해석해서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즐겨 찾는 Milkbar안의 가구는 여성의 나체를 모티브로 당시 신소재로 각광받던 파이버글라스를 이용해 직접 제작을 했다고 합니다. 


 이 가구들의 아이디어의 원형은 영국의 미술가 Allen Jones 조각 작품인 Hatstand, table and chair에서 빌려왔다고 하는데요, 사실 감독이 미술가에게 제안을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이디어의 원형이었던 조각은 이렇습니다.

60년대와 70년대를 관통하던 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당시 대중문화 속에 소비되고 있는 섹슈얼리티를 포착한 팝 아티스트로 알려진 알렌 존스의 이 작품들은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던 스탠리 큐브릭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알렌 존스의 작품보다 오히려 더 성적으로 파격적이었던 영화의 의자와 오브제들은 주인공 알렉스와 그의 일당이 가지고 있는 여성과 당시 사회에 대한 생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큐브릭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실제라고 보여 왔던 많은 것들은 사실 환상 일뿐'이란 표현을 인터뷰에 쓰고 있고, 그가 이런 키치적인 팝아트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런 예술이 가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역기능에 대한 도발적인 시도로 해석하는 비평가도 있습니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알렉스의 방은 우리가 가진 선입견에 대한 감독의 풍자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런던의 서민아파트에 살고 있는 알렉스의 방에서 우리는 서민 아파트가 아닌 아주 고급스러운 취향의 여피스러운 인테리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침대 위의 독특한 디자인의 침구와 창에 걸려있는 베토벤의 사진, 그리고 벽면에 있는 많은 음반과 고급 오디오를 통해 부르주아의 일그러진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요, 집에 돌아와 음악을 듣기 위해 노란색 레이블의 그라모폰(클래식 음반계를 휩쓸었던 최고의 음반 레이블이며 그 노란색 로고는 음반을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문화를 산다는 위선을 만족시키는 주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티파니의 하늘색(또는 민트색) 박스가 여성들의 허영과 위선을 만족시켜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입니다) 테이프를 테이프 플레이어에 집어넣는 순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감독의 의도는 허상으로 포장된 인간의 위선과 허영 안에 숨어 있는 비틀어진 비이성을 알렉스의 밖에서의 행동과 그의 방안에서의 행동을 대비하여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 방안에 울려 퍼지게 하고 있습니다.


알렉스가 사용했던 턴테이블로 영화에서 역시 클로즈업해서 보이고 있는 제품은



 MOMA에도 전시되고 있는 흔하지 않은 명작인데요 JA Mitchell Engineering Ltd에서 제작한 The Reference Hydraulic Transcription Turntable입니다.  이런 특이한 소품을 통해 큐브릭은 단순한 망나니인 알렉스를 시대의 아이콘(나쁜 의미의)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2편에서는 작가의 집과 그 외의 공간에 나오는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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