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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Apr 09. 2019

영화와 명품 인테리어 2

시계태엽 오렌지와 60년대  아메리칸 사이코와 90년대

 지난 편에 이어 시계태엽 오렌지와 아메리칸 사이코에 나오는 가구와 인테리어를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60년대의 가구 스타일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그 당시의 흐름과 그런 트렌드가 어떻게 영화에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60년대의 서구는 급속한 변화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미국과 소련으로 대변되는 이념의 경쟁이 확실한 물리적 기호를 갖게 되었고, 인류 최초로 달에 사람이 가는 역사적인 순간을 통해 우주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높아진 시대입니다. 여기에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등을 통해 경제적인 안정을 찾아가던 미국이 'Swing sixties'라고 불리는 영국의 문화에 몸살을 앓기 시작합니다. (비틀스, 트위기, 히피 이런 문화 코드들이 대거 영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통해서 진정한 '대중'이 탄생하기 시작하고 가구 역시 이런 '대중'을 타겟으로 새로운 디자인과 생산에 돌입합니다.


 첫 번째로 대중을 위한 가구의 등장입니다. 

팬톤의 이 유명한 의자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합니다. 플라스틱과 강렬한 색감, 그리고 우주를 연상케 하는 신비한 곡선들. 이런 요소들이 당시 대중을 사로잡던 다양한 문화코드에 대한 가구업계의 재해석이었고, 또한 대량생산이 가능한 이런 신소재는 대중에 다가갈 수 있는 가격대의 가구 생산을 가능케 합니다.


 두 번째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들의 등장입니다.

 

 새로운 문화에 경도된 당시의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의 상품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컨셉과 디자인의 제품에 목말라 있었고, 가구업계 역시 이에 맞추어 다양한 시도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마약의자라고 불리는 빈백 의자들이 바로 이 60년대의 산물이며, 최초의 빈백은 소파를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가죽을 둥글게 엮어서 채워 넣은 제품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미래 디자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우주시대의 산물인 미래 디자인 가구들은 원형 스타일과 화이트 실버 색상, 그리고 당시로 혁신적이 었던 다양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제품들이었습니다.


 디자인 개념은 좀 더 있지만 가구에 주로 적용되었던 것은 위의 3가지가 가장 주된 흐름이었는데요, 그렇다면 이 흐름들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 어떤 식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Home에 나오는 가구들입니다. 작가인 알렉산더에 맞게 그의 서재와 거실에 있는 책장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데요,

 



 이 책장은 철제 세로 지지대를 세우고 그 사이에 선반을 끼워 넣는 조립식 방법으로 쉽게 확장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제품입니다. 작가가 사용하는 타이프라이터나 그의 집 거실 바닥이 원목마루로 되어 있는 점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고가의 가구가 보이는 점과 비교하면 이 책장은 그야말로 기능에 충실한 대중을 위한 가구입니다.

이 책장은 사실 50년대 후반에 처음 등장합니다. 스웨덴 브랜드인 'String'인데요, 폭발적인 인기를 거쳐 60년대에 많은 카피캣을 만들어 냅니다.

 오리지널 제품은 이름 그대로 굵은 강철 실 모양의 철제 프레임을 사용하는데, 영화에서는 사각 철제 기둥이 사용된 걸로 봐서는 '스트링'사의 제품은 아닐 듯싶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감독 본인의 고급 취향(?)과 다른 당시의 대중 지향적인 문화에 걸맞은 가구 하나를 선택하는 데, 바로 이 책장이었습니다. 


 60년대의 두 번째 특징인 기존의 틀을 벗어난 디자인은 전편에서 보여 드렸던 밀크 바의 의자와 테이블이 좋은 예가 될 테고요, 세 번째 특징인 미래 디자인 컨셉은 Home에 나오는 의자가 좋은 예가 되고 있습니다.

 


 둥그렇게 검은 부분이 보이시나요? 바로 이 의자가 아래의 이 의자입니다.



주인공과 감독이 촬영 중간에 쉬고 있는 사진입니다.


 위에서 보여드렸던 The ball과 컨셉이 유사해 보이시지 않나요?


 이렇듯 60년대를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독특한 SF영화에서 감독은 당시 시대를 관통하고 있던 가구와 인테리어의 주요 흐름까지도 정확하게 배경에 삽입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란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 편을 올린 다음 갑자기 영국 코미디 드라마 Absolutely Fabulous의 한 장면이 떠 올랐습니다.

 엉망진창인 두 여주인공의 객기 만발인 이 사회 풍자 코미디 쇼에서 90년대 런던을 관통하던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편이 있었습니다. 



아주 극도로 세련된 두 미니멀리스트가 결혼을 해서 꾸며놓은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에 대한 코미디의 재 해석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샌더슨 벽지로 우리에게 유명한 영국의 샌더슨 경은 인테리어에 대해서 '방은 그 방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이 포함된 물건만 가지고 인테리어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에 꽤나 유명한 경구였는지 마르셀 프루스트도 한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방에 관해서 쓸 때 이 글을 묘하게 인용한 적이 있는데요, 이 글은 글자 그대로 보지 말고 샌더슨의 의도를 잘 살핀다면 '최소한 그 방에 기능적으로 필요한 물건은 인테리어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는 반드시 필요한 제품의 본질만을 남기겠다는 것이지, 저 위의 코미디처럼 그저 심플하고 간결한 걸 뜻하는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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