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의 시 Preludes로부터 1
학생 시절 시를 읽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지라, 누군가가 해석한 그 낱낱이 뜯긴 문장들을 통해 시를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나 컸던 거지요.
어려운 용어들, 누군가의 사상으로부터 넘겨진 해석들, 이런 것들은 제가 느껴야 할 즐거움을 점점 더 멀어지게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는 것이 마치 내 얼굴에 맞지도 않는 요상한 가면들을 하나씩 덮어 쓰게 되는 느낌이었다 랄까요?
점점 나이를 먹게 되면서,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이란 생각이 스멀스멀 목 밑을 기어 올라오더니, 몸속의 작은 기운들 (호르몬이라 불리는)이 여태껏 움직이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며 머릿속을 휘저어 놓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맘대로 읽어 보고 느껴보고 싶다는 호기심 또는 안타까움이 사고를 조금씩 자유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뭔지 모를 어려운 말로 풀어서 이해를 해야 할 것 같던 엘리엇의 시에서, 어느 해 초겨울 광화문 네거리의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느꼈던 잿빛으로 가득찬 기분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우울함 때문에 멀리 했던 슈베르트의
음정과 리듬들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의 많은 시 중에서 특히 <Preludes>는 T.S. 엘리엇의 유명세에서 약간 비껴 나가 있기도 하는 것 같고,
전체 길이가 짧기도 해서, 그의 시를 즐기기 위한 연습으로 딱 좋은 시인 것 같습니다.
Prelude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본격적인 무언가를 하기 전에 연습처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데, 이 시에 엘리엇이 <Preludes>라는 제목을 붙인 건 마치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집니다.
Preludes는 4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시인데, 각각의 연이 마치 또 다른 작은 하나의 시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쇼팽이나 드뷔시의 Preludes들처럼 말이죠. 전체적인 곡의 느낌이나 감성은 어느 정도 통일성을 지녀서 하나의 큰 모음곡 같지만 실제로 곡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GMAx2zHd2w
https://www.youtube.com/watch?v=Jt_KjsVzoLc
이번 글을 쓰게 된것은 엘리엇 시에 대한 해석이나 해설은 결코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자신도 없지만
단지 이 시가 저에게 주는 보여주는 영상과 들려주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같이 공유하며, 다른 분들의 생각도
듣고 싶어서 입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The winter evening settles down
With smell of steaks in passageways.
첫 번째 두 행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스테이크의 냄새가 흘러나오는 passage란 건 고급스러운 상점가를 연상케 하거든요. 19세기 유럽 또는 미국의 대도시에서 유행했던 쇼핑센터의 전형이 바로 아래 사진처럼 부분적으로 덮개가 덥힌 상점가입니다. 이런 형태의 쇼핑 공간을 passage라고 많이들 불렀습니다.
시의 화자가 보여주는 목소리는 전체적으로 찌들고 가난하고 힘든 도시의 노동자입니다. 춥고 배고픈 그런 상황에서 첫 번째 사진이 보여주는 것 같은 길을 걷는 상황에서 풍겨져 나오는 스테이크 냄새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키우며,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좌절감을 더 깊게 할 뿐입니다.
Six o’clock.
겨울의 런던 (유럽 도시) 풍경을 떠올려 보면, 6시는 완연한 밤입니다. 4시가 지나면서 어둠이 깔리고 점차 상점들도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레스토랑들을 제외하면 거리를 화려하게 밝히고 있던 상점의 불들이 꺼지는 시간인 것이죠.
다시 말해 저녁 6시는 거리를 밝혀주는 불빛의 상황이 변하는 시간인 셈입니다.
1층에 즐비하던 상점들이 밝혀주던 환한 거리에서 불빛이 주거지역인 시외로 또는 상점이 있는 건물의 위층으로 옮겨가고 있고, 이마저도 줄지어 밝히고 있던 상점과 달리 듬성듬성 약한 불빛들이 세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위에서 보여 드린 눈 내리는 쇼핑가의 이미지가 4시에서 6시 사이의 도심속 쇼핑 거리의 불빛이라면 6시 이후는 아래의 이미지처럼 가로등과 건물 위로 듬성듬성 불빛들이 보이는 시간인 것입니다.
The burnt-out ends of smoky days.
스모키 한 날들의 다 타버린 끝.
하루를 마감하며 지친 화자의 손에 남은 건 담배 한 개피 조차 아까운 삶의 절박함이 만들어 낸, 끝까지 피워버린 꽁초뿐인 걸까요?
아니면 지친 일상이 화자의 삶을 타들어가는 연기처럼 숨막히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껴 아껴 끝까지 피워버린 이런 꽁초와 같은 삶이 반복되고 있을 뿐입니다.
And now a gusty shower wraps
The grimy scraps
Of withered leaves about your feet
And newspapers from vacant lots;
저들의 삶은 꽃길 위에 있고, 나의 발끝은 도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에 치일 뿐입니다.
아쉽게도 걷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지만, 위의 사진에서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시의 화자는 화려한 도심을 벗어나 점차 자신의 영역 (가난하고, 지저분한 도심의 뒤안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쓰레기들이 비에 젖은 신문지들과 뒤 엉키기 시작하는 바로 사진 위의 거리들 같은
The showers beat
On broken blinds and chimney-pots,
And at the corner of the street
A lonely cab-horse steams and stamps.
이런 화자의 마음도 몰라준 채,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고, 그 사이로 보이는 광경은 더욱더 우울합니다.
부서져 내린 블라인드가 방치되어 있는 건물들, 그리고 다닥다닥 세워진 굴뚝들.
그리고 한편에 세워진 마차에 매어진 말들의 몸에서 나오는 김 (입김은 추운 날에만 나옵니다. 말의 열기가 소나기를 만나 뿜는 김은 아주 춥고 을씨년스럽습니다.)
그리고 눈을 씻고 찾아 봐도, 굴뚝에서 올라오는 저녁의 포근함과 향긋한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붙이던 시골집 굴뚝으로 올라오는 연기는 따뜻하고 풍성한 저녁 식사를 연상케 하는데) 연기는 찾을 수가 없고 그 대신
차가운 비에 젖은 말의 몸에서 나오는 김만이 눈에 들어 오는 황량함...
황량한 풍경속으로 한마리 말이 만들어 내는 외로운 발굽소리가 외롭고 고독한 내 귀를 더욱 더 자극하고 있습니다.
스테이크 냄새와 가로등들이 만들어 내는 무심코 지나쳐온 도시의 풍경과 외곽의 이미지가 대비되며, 고립된 화자의 고독함을 더욱 배가 시키고 있습니다.
And then the lighting of the lamps.
지금처럼 스위치로 켜지는 전기 램프가 아니었던 20세기 초에는, 사진처럼 횃불을 들고 다니며 거리의 가로등하나하나에 불을 붙여서 켜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끝났음을 다시 한번 이미지로 확인 시켜 주는 행입니다.
이렇게 끝을 맺는 첫 연은 오롯이 도심에서 소외된 자들이 보고 느끼는 외로움과 좌절감을
절절하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첫번째 연 마지막에서 들리는 말의 발굽이 일정한 박자에 맞춰 도심의 거리를 두드리는 소리는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중 첫 곡인 'Gute nacht'를 떠오르게 합니다.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가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처럼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소외된 시인의 외로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노래의 첫 가사인 Fremd (독일어인지라 마지막 d가 영어의 t처럼 발음되며 혀끝이 앞 이의 뒷부분을 탁 치는 느낌이 땅땅땅하고 울리는 반주의 느낌과 어우러집니다)는 단어가 만들어 내는 딱딱한 울림만큼이나 '낯설음'을 뜻하는 단어 입니다.
가곡의 화자는 무엇을 어떻해 해야 할지 모릅니다. 따뜻한 5월에 나를 환대해주었던 그들이 눈이 내리는 겨울에 나를 모른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쩔줄 모르며, 화를 내지도, 울부짖지도 못하고 단지 그대의 꿈속에서라도 그대에게 '안녕'이라고 고하겠다며, 쓸쓸히 감정을 거두고 있습니다. 떠나야할 시간을 놓친것 같은 후회, 그래서 시간마저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에서는 그녀의 문에 gute nacht를 쓰겠다고 하지만, 저에게 읽히는 것은 화자가 떠나는 행동이 바로 그녀의 문에 gute nacht를 쓰는 것이라는 metaphor입니다)
베케트가 좋아했다는 '겨울나그네'가 보여주는 소외됨은 이런 충동이 모더니즘 시에서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이고, 단지 어떤 시각으로 삶을 바라볼 건가에 대한 질문들이 달라져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 시대 작품들을 현대의 시선으로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는 항상(이런 결정론적인 단어는 부적절해 보이지만, 쓰다 보니 감정이 격해져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됩니다) 동일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연 전체를 다시 읽어 보면,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시나요?
I
The winter evening settles down
With smell of steaks in passageways.
Six o’clock.
The burnt-out ends of smoky days.
And now a gusty shower wraps
The grimy scraps
Of withered leaves about your feet
And newspapers from vacant lots;
The showers beat
On broken blinds and chimney-pots,
And at the corner of the street
A lonely cab-horse steams and stamps.
And then the lighting of the lam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