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앨런 포의 상상력을 빌려오다

에드거 앨런 포를 읽다가

by 훈수의 왕

최근 지인으로부터 오에 겐자부로에 대한 강력한 추천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오에 겐자부로를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했다는 방법으로 (번역서들과 원서를 놓고 하나하나 뜯어보는) 나도 뭔가를 읽어보리라 하는 엉뚱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으로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Four Quartets를 펼쳐보았고, 그러다가 주말에 방문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오에 겐자부로가 '애너벨 리'에 관한 제목으로 글을 썼다는 말을 들은 게 제 뇌리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한글로 번역된 '애너벨 리'는 워낙 여기저기에서 그 시구들이 튀어나오니 익숙하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천천히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원어로 읽기 시작하기에는 딱 이었습니다.

즉, 별다른 선입견 없이 시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이었죠.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첫 행부터 으잉 하게 만듭니다. Many a year. 과연 왜 포는 Many years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저 단순히 시의 리듬감 때문일까? 그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닥터 후 - heaven sent' 편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보다 아꼈던 클라라의 죽음을 보는 순간 텔리포트 된 낯선 성, 그 성은 닥터에게 숨겨진 비밀을 듣고자 하는 닥터의 적들이 만들어 놓은 덫이었습니다. 이것을 간파하고 성을 탈출한 순간 닥터는 다시 그 성안에 갇혀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닥터는 탈출구는 성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닌 성안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room 12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문의 한 벽(외부로의 통로)을 막고 있는 것은 다이아몬드보다 400배나 강하다는 아즈반티움. 절망해 빠져 있던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시청자에게 그 아이디어를 숨긴 채 닥터는 그 강한 아즈반티움을 주먹으로 내려칩니다.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닥터는 그를 쫓아오는 적을 피해 다시 room12에 들어가고 또다시 발견한 아즈반티움 벽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이를 반복하기를 45억 년이나 계속한 끝에 드디어 그 아즈반티움이 갈라지고 닥터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발견하게 됩니다.



매일매일이 반복되며 영겁의 세월이 흐른다는 건, 바로 포가 many years를 쓰지 않고 many a year를 쓴 것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니까 포가 만들어 낸 이미지는 그냥 오랜 세월이 아닌, 그녀와 사랑했던 그 순간들이 무한히 쌓여온 세월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In a kingdom by the sea,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By the name of Annabel Lee; —

And this maiden she lived with no other thought

Than to love and be loved by me.


그다음 행들을 읽고 있노라니 이런 광경이 떠 오릅니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무한히 펼쳐진 바닷가 모래 해변을 거닐고 있습니다.

그들의 오른편으로는 하얀 파도가 포말을 만들며 밀려오고 있고,

그들의 왼편으로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건물들이, 단지 그 두 명을 위해서만 세워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 곳은 이 사랑하는 남녀의 상상 속에서 존재하는 온전히 그들만의 공간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방해할 수 없고, 아무도 이 공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오직 이 두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는 방법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딘가에서 본듯한 장면이 아니던가요?

저는 이 행들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이 연출한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이 떠 올랐습니다.

바로 코브와 멜이 50년을 함께 했다는 불완전한 꿈의 상태 limbo입니다.


물론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그 이후에 사랑하는 여인이 자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시의 화자는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이가 죽은 이후에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고, 그곳에서 끝내 그녀와 함께 생을 마감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인셉션을 생각하다 보니, 또 다른 이 영화와 앨런 포와의 연결점이 떠오릅니다.

영화의 핵심 컨셉으로 주인공들이 만들어 내는 가상공간은 바로 'Dream within a dream'입니다.

바로 앨런 포의 또 다른 시 작품 제목이죠. "A dream within a dream"

명문 UCL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까닭이었을까요?


I stand amid the roar

Of a surf-tormented shore,

And I hold within my hand

Grains of the golden sand —

How few! yet how they creep

Through my fingers to the deep,

While I weep — while I weep!

O God! Can I not grasp

Them with a tighter clasp?

O God! can I not save

One from the pitiless wave?

Is all that we see or seem

But a dream within a dream?


바닷가 모래사장에 휘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내고 있는 시의 화자가 내린 결론은

바로 'a dream within a dream?'이었습니다.


다시 애너벨 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I was a child and she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

I and my Annabel Lee —


이 시를 읽다가 느낀 독특한 점은 시제가 과거로 쓰인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영어의 시제는 우리와는 좀 다른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과거는 시간적인 개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행동의 상태에 대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과거 시제는 동사의 행위가 현재에는 전혀 벌어지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위가 연결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완료 시제라는 부연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랑은 이미 끝나버렸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확신, 즉 절망감과 좌절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연에서 작가는 끝내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Of my darling — my darling — my life and my bride,

In her sepulchre there by the sea —

In her tomb by the sounding sea.


이제는 다시 시제는 현재로 바뀌어 있습니다.

즉 화자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닷가에 만든 우리의 커다란 무덤 속에서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관 옆에 누워 최후를 기다리겠노라고.

그리고 그것만이 진정한 내 사랑의 끝이라고.


이제는 나이를 먹고 여유가 생긴 탓인지,

시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저를 잡아먹지는 않고 있습니다.


대신 젊은 날 내가 했던 사랑들은 과연 이만큼 아름답고 간절했었던가를

천천히 되새기게 해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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