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ckner, Tahedl
예쁜 것을 보면 탐이 나고, 흥겨운 음악을 들으면 흥분이 됩니다.
이렇듯 미술과 음악은 우리의 원초적인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삶의 주요 재료이자, 또한 신학, 철학 그리고 미학을 거쳐 우리가 꿈꾸는 궁극의 가치 저 너머를 보여주는 신비의 마법이기도 하죠.
이런 음악과 미술의 관계에 대해 논할 때 많은 사람들은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 나오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이야기를 언급하곤 합니다. 사실 최근 20여 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해 온 미술시장과 그와는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는 서양 고전 음악 시장을 대비하여 보면 니체가 바라보았던 관점이 얼마나 핵심을 관통했는지 확인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과거처럼 물려받은 상속 부자들이 아닌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부를 일으킨 신흥 부자들은 유니크한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 얼마나 자신들의 지적 수준을 돋보이게 하며, 또한 계급 사다리의 가장 위로 가는 지름길임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고, 이런 이유로 미술시장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신흥 부자들의 자금이 몰려들어 기존 부자들과의 경쟁 속에 새로운 골드러시를 몰고 왔습니다.
그와 반대로 세습적인 부를 누리던 소수 특권계급의 사랑으로 유지해온 서양 고전 음악 시장은 신규 소비자의 유입이 급격히 줄어들며 한 세대 이전의 선배들이 누리던 부와 특권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일반 애호가들이 구입해주는 공연의 비싼 티켓 만으로는 공연이 완판이 되더라도 예전의 어마어마한 후원금 규모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그렇기에 오페라나 주요 관현악단이 이전의 규모를 유지하기가 버거워 보입니다)
이렇듯 이성이 감성을 눌러버린 것 같은 현상 속에서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술계의 여러 거장들이 직간접으로 밝히고 있는 아래와 같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흠모에서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 김환기'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겐 알파요 오메가였다 - 크리스토퍼 로스코(마크 로스코의 아들)'
"추상화는 음악처럼, 좋아하게 되든 싫어하게 되든 일단은 잠시 동안 즐길 수 있어야 한다 - 잭슨 폴락'
이 명석한 아폴론들이 감정에 치우친듯한 자유분방한 디오니소스들을 향한 부러움 또한 상당하는구나 하는 것을 은연중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일찍이 간파한 19세기 영국의 문예 비평가인 Walter Pater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는데, 이는 낭만주의 이래 표제음악 등을 중심으로 음악에 있어 언어적 시각적 요소를 포함시켜 사상적 변화를 시도하려고 한 음악계와는 반대로 미술계가 인간의 본능인 감정을 바탕으로 음악이란 형태에 대해 얼마나 애정 어린 부러움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All art constantly aspires towards the condition of music.”
고요한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천상의 화음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미쳐 멜로디를 알아채기도 전에 심장 박동보다 더 빠르게 쿵쿵거리는 비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헤드뱅잉을 하게 하는 이 정반대의 다양한 요소들이 전부 음악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미술이 음악을 향해 질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물론 the condition of Music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는 학문적인 경지에 오르지 못한 우리네 평범한 애호가들도 쉽게 수긍이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 미술가가 Walter Pater의 언급에 관해 그녀의 작품에서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Ernestine Tahedl 우리로서는 발음하기 상당히 어려운 성을 가지고 있는 비엔나 출신의 여성 작가인데요(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리들 Lidl에서 유추했을 때 타헤들이라고 발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는 Saatchi Art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 플랫폼을 통해 재미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바로 다양한 음악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것을 이미지로 변형한 일련의 시리즈들입니다.
바흐에서 베토벤을 거쳐 브르크너에 이르기까지 서양 고전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들의 대표 음악 작품을 가지고 작업한 일련의 추상화 시리즈들인데요 아래의 사치 아트 링크를 통해 그녀의 작품들을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aatchiart.com/tahedl
각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음악의 개별 요소에 반응하는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변화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Bach Cello Suite No.2
Beethoven String Quartet No. 11
바흐의 첼로 조곡을 그린 작품에서는 감정을 나타내는 수직적 형태의 색채들이 각 음의 높이를 의미하며 수평적으로 대위법적인 확장을 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고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화면이 4 분할된 가운데 각각의 분면이 중앙에서 만나서 서로 충돌하고 병합되며 상호 간에 층이 형성되어 쌓여나가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화가는 특히나 브르크너의 음악을 소재로 많은 작업을 내놓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Bruckner symphony no 4 란 작품을 가지고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교향곡 4번 "Romantic" 은 브르크너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작품입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후기 낭만주의 작품 중에 가장 대표작으로 꼽히는 교향곡이고요.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 공연 실황입니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의 대표 작곡가로서 바그너와 동시대를 살다 간 브르크너는 작곡자의 독특한 개인적 취향 (사체와 소녀에 대한 관심) 그리고 히틀러 및 나치로부터 받았던 열광적인 환호(바그너와 유사하게)로 인해 음악 자체의 완성도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는 좀 덜했던 편입니다. 작곡 스타일이 한 작품의 완성 이후에 많은 개작을 시도하여서 작품별로 여러 버전이 생겨난 것도 인기에 마이너스 요인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작곡자 스스로 반 유대적인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었기에 바그너와 달리 이스라엘에서 연주가 금지된 적은 없었고, 고전 음악 시장에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레퍼토리에 식상해진 젊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새로운 레퍼토리로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말러와 묶여서 말러 & 브르크너의 열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시대적으로는 말러에 비해 선배인 작곡가입니다.
4번 교향곡의 부제인 '로맨틱'은 작곡자 스스로가 붙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악장의 시작은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처럼 고요한 현의 트레몰로로 시작합니다. ( 이 트레몰로로 연주되는 현은 브르크너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입니다) 약간은 불안한 듯이 떨리고 있는 현들 사이로 혼이 새로운 시작을 알려주려는 듯 갑작스럽게 제1 주제를 연주하며 등장합니다.
현이 좀 더 커진 음량을 가지고 안정감을 찾으며 서서히 하강하는 동안 관들이 하나 둘 등장해서 총주로 점진적인 상승을 하며 자신감 넘치는 제2 주제로 넘어갑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심오한 고요의 사원으로 가라앉히고 그러다가 격정이 넘치는 풍랑의 대양 위로 날아오르게 만듭니다. 이를 통해 불안, 흥분 그리고 즐거움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작곡자는 자신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1악장의 혼은 충만하게 잠을 자며 보낸 밤이 지나고 새로운 날이 밝음을 알리는 신호이고, 2악장은 노래들이며, 3악장은 숲 속에 들어간 사냥꾼들의 흥겨운 음악적 유희라고
적고 있습니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1악장의 혼은 타운홀에서의 흥겨운 하루가 시작됨을 알리고 2악장은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 그리고 3악장은 숲 속에서 사냥꾼들이 먹는 식사를 묘사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음악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로맨틱 교향곡은 중세도시에서 아침을 알리는 시청의 종소리에 도시의 성문이 열리고 말에 탄 기사들이 그 열린 문으로 숲 속을 향해 돌진해 나갈 때 숲에서 들리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대에 살았던 마크 로스코는 낭만주의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낭만주의자들은 이국적인 것에 열망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들은
초월적인 것이 신비하고 익숙지 않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신비하고 익숙지 않은 것들이
반드시 초월적인 것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한다"
후기 낭만주의를 경험하고 난 모더니스트들의 눈에는 비록 성숙하지 못한 방랑자로 보였을지라도, 자신들의 시대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었던 낭만주의자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모험에 관해 낙관적이었으며 그것이 바로 '로맨틱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브르크너를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브르크너와 자주 비교되는 말러의 작품에도 아침이란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작곡자의 태도가 상당히 다릅니다.
낭만주의 계열의 작곡자들은 미술이나 다른 장르의 부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음악 자체로는 자신들이 느끼는 질풍노도와 같은 격정을 담기에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시를 가져와 언어로 표현된 감정을 음악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즐겨 쓰고 있습니다. ( 개인의 감정 표현을 위한 가곡이나 성악곡이 많아진 것이죠)
말러에 있어서 가곡은 특히나 중요한데 그는 자신의 가곡에 쓰인 음악 주제들을 교향곡에 재 사용하기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아침에 관한 말러의 작품은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2곡 '아침 들판을 거
닐며'입니다.
독일 전후의 대표적인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젊은 시절 거장 푸르트벵글러와 함께한 연주입니다.
이 가곡의 주제는 말러 교향곡 1번 1악장의 주요 주제로 사용됩니다.
두 명의 작곡자 모두 아침이란 배경을 가지고 만든 음악적 요소를 교향곡 1악장의 주요 주제로 삼고 있는데 한 명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그래서 뭔가 불안하지만 그것을 뚫고 나아가는 에너지를 담은 반면에
한 명은 사랑의 아픔을 홀로 아침 들판에 나가서 되뇌며, 세상의 아름다움과 나의 괴로움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입니다. (동영상 첫 부분에 아바도에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지휘자가 된 사이먼 래틀이 관객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오네요^^)
음악을 듣고 난 후 Tahedl가 그린 <브르크너 교향곡 4번>을 다시 돌아보면서 이 미술가의 색과 형태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 나오는지 천천히 한번 귀를 기울여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