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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Jan 23. 2019

우주는 원자가 아닌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바그너, 김환기

 '우주는 원자가 아닌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뮤리엘 루카이져


 우주는 많은 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 많은 별들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과학이 아니더라도 문학과 예술에서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뮤리엘 루카이져가 남긴 멋진 구절도 그중 하나이며, 제가 좋아하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캔버스에 유채, 236cm×172cm, 1970

 

  대부분의 미술계 거장들이 작업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집중했던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었다고 합니다. 몬드리안이 표현한 것이 정물의 본질이었다면, 김환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한 인간을 중심으로 생성되는 관계의 본질이 아닌 가 싶습니다.


 관계에는 관계를 맺고있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겨 있게 마련입니다. 가족의 스토리, 친구의 스토리, 성공의 역사, 실패의 역사, 내가 좋아하는 것 또 내가 싫어하는 것.

 또한 우리가 온 최초의 시점에는 세상의 기원에 관한 스토리가 있을 것이며, 이 세상의 끝에는 종말의 예견에 대한 스토리가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태어난 시점에는 본인만의 탄생 스토리가 있을 것이며, 성장을 하는 스토리를 거쳐 마침내 숨을 거두는 한 인생의 끝을 마감하는 스토리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스토리가 다시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는 거고요.

 그렇다면 나를 둘러싼 스토리와 관계들은 하늘의 별 아니 그 이상의 숫자만큼이나 많지 않을까요?


 사실 처음에 인용했던 문구는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려면 이렇게 바꾸는 것이 적합해 보입니다.

 "우주는 원자가 아닌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찍힌 점 하나 하나는 동경과 파리를 거쳐 발전해 나가던 작가의 모든 미술적 역량이 뉴욕에 이르러 완성되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색조를 띠고 있는 이 점들은 수평적으로 이어지며 유사한 흐름이 계속해서 내려오는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는 마치 5선지 위에 끝없이 그려지는 다양한 음표들로 이루어진 음악 악보를 연상케 합니다.


동경 시절에 그린 '론도'는 아직 작가의 스타일이 확립되기 이전이어서 조심스레 다양한 화풍을 연구하던 모습을 보여주고



파리 시절의 '사슴'은 한국적인 기법과 소재를 통해서 점차 자신의 것을 찾아 나서는 그래서 서서히 자신감으로 흥분되는 작가를 볼수 있으며


뉴욕 시절을 여는 '무제 V-66'에서는 이제까지 해온 한국의 혼을 담은 자신의 화풍을 천천히 되돌아 보며 새로운 방향(추상)을 모색해 나가는 도약이 느껴지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소리들이 그림을 통해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그려낸 이 역사들을 되돌이켜 보면 마치 Andante 로 출발해서 allegretto로 서서히 몰입되기 시작하다가 다시 adagio로 지난 것들을 되돌아 보고 그리고 Presto로 대완성을 맺는 한편의 교향곡같이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이렇듯 작가가 생각하는 우리 삶의 모습은 한점 한점 별로 표현된 수많은 스토리와 관계였을 것이고, 이 관계를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근원에 대한 대서사"    가 완성되는 궁극의 예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대서사극을 보고 있는 관객 각자의 경험 정도에 따라,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보며, 기쁨과 슬픔, 흥분과 낙담 등 다양하게 교차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것 같소"라는 말을 남기고 있는데 이렇듯 예술에 있어서 음악과 조형미의 조화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좋은 수단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또다른 좋은 예를 바그너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그는 오페라에서 좀더 발전된 형태의 악극을 통해  대서사극을 조형미와 소리의 총체적 합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그너의 음악극은 서정적인 노래가 담기는 대신, 훨씬 더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 내고 있습니다.


 바그너의 작품들은 낭만주의 오페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궁극의 형태인 '악극'으로  완성되 나가는데

대표 작품으로는 '니벨룽겐의 반지' '파르지팔'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을 들수 있습니다.


 이들 악극을 무대에 올린 실제 장면들을 보게 되면, 그가 음악과 언어를 통해 이루어 내려는 조형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렇게 구현되는 무대 위의 이미지는 경이로움 그 자체 입니다. 그가 만들어낸 종합적인 이미지 안에 숨어 있는 많은 이야기들 또한 알면 알수록 우리를 놀라움의 연속으로 이끌어 갑니다.


아래의 장면들은 파르지팔의 다양한 무대 연출 입니다.

   


유명한 성배의 전설을 바탕으로 호기심과 유혹 그리고 두려움과 고통의 근원에 관한 인간의 본성등을 다루고 있는 <파르지팔>, 이 거대한  음악적 서사극을 통해 우리는 죽지 못하는 고통과 치료되지 않는 상처, 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  등에 대해서 음악이라는 장치를 통해 형성되는 공감각적인 이미지들을 읽고 듣고 볼수 있습니다.


 악극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동트는 새벽의 이미지를 선명한 조형미로 연출해 낸 다양한 무대 장면들은 그점을 정확하게 증명해 내고 있습니다.


https://youtu.be/pWkVZhaTt8Q


파르지팔 서곡 바이로이트 실황 녹음 1964년



'성창에 찔려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암포르타스 왕의 병'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 너머의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읽어내서 그의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방사능 노출이란 이슈'를 이끌어 낸 "움베르토 에코"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식 너머의 세계에 대한 무지가 우리를 얼마나 두려움에 시달리게 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현대의 우리 사회에 여러 단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수 많은 가짜 뉴스를 통해 공포를 조성해 내고, 조성된 공포를 통해 사람들을 길들이며, 이를 통해 자본과 권력이 어떻게 그들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지가 바로 '움베르토 에코'가 읽어낸 <파르지팔>속에 숨은 기호들 일것입니다.


 또한 <파르지팔>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을 겪고 있는 쿤드리라는 여자 주인공도 등장합니다.


 기사들이 찾아 내야하는 진리의 경계선 너머에 서 있는 진실에 대해서 그것을 찾고 전달하는 선한 메신저의 역할과  진실에 대한 기사들의 접근을 성적인 유혹을 통해 진실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한 행동하나의 근원(쿤드리)에서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언론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얼굴인 진실에 대한 열정과 거짓으로 부터의 유혹이 사실은 서로 분리되지 못하는 하나의 몸에서 출발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예로 들어 보여 드린 것처럼, 수 많은 서사(이야기)들은 음악과 조형 그리고 언어를 통해 전달 되지만 이 3 가지가 결합된 형태에서 가장 분명하게 그 느낌을 전달해 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김환기 선생의 후기 추상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이야기가 우리의 눈 뿐만이 아닌 우리의 귀를 통해서도 그 울림을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이는 그의 예술에 노래가 들어 있다는 분명한 예가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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