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수트를 입고 등장하는 세련된 주인공 개츠비 (디카프리오)는 쉴 새 없이 주변 사람들을 'Old sport!'라고 불러 뎁니다. '어이! 친구, 내 집이 어떤가? 내 옷은 어떤가?
1차 대전이 끝나고 안정된 투자처를 찾아 유럽의 자본이 몰려들던 미국, 풍부한 자원과 안정된 시장, 그리고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이 대 변혁기에 막대한 자산을 쌓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를 감춰가며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시대의 파도가 만들어 내는 물거품의 한가운데로 자신을 내 던지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돈을 가지게 된 자들은 명예를 탐내게 되는 법이죠, 그렇기에 본인에게 없는 Legacy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주인공 개츠비는 자신이, 구대륙 최고 지성인들의 상징인 옥스퍼드 출신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Old sport'라는 구식의 과장된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합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아래 쓰인 원작을 영화로 옮긴 배즈 루어만 감독은 세트 디자이너인 아내 캐서린 마틴과 함께 완벽한 1920년대를 재현 해 내고 있습니다.
아내 캐서린 마틴은 루어만 감독과 함께 한 '물랑 루즈'에 이어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도 아카데미 상을 거머쥐는데요, 남편 덕에 좋은 자리를 차지한 아내라는 구시대적인 생각을 하신다면 큰 오산인 것 같습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여기에도 디 카프리오가 주연을 맡고 있죠)에서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겸 의상 디자이너로 만난 인연으로 부부가 되고 지속적으로 좋은 영화들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이 능력 많은 디자이너는 총 4개의 아카데미상 - 두 영화에서 각각 의상상과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모두 휩쓰는- 을 수상해서 호주 영화계 인사 중 아카데미상 최다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캐서린 마틴은 유명한 인테리어 잡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으로 art deco 스타일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요,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를 위해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아카데미 수상 경력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보여주는 진정한 art deco스타일을 한번 살펴볼까요?
우선 아르데코 스타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925년 문화와 예술의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위치를 견고히 하고 있던 파리에서 최초의 인테리어 박람회가 열립니다.
이름하여 "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
영어로 하면 Modern Decorative and Industrial Arts 일 텐데요, 대략 국제 모던 '장식과 공예' 전시회라고 설명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인테리어 장식과 가구 관련 전문 박람회로 알려져 있는 이 전시회의 명칭에서 art deco란 이름이 유래됩니다. 그러니까 art deco가 예술과 데코 이런 게 아니라 decoration arts 장식 공예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회의 기획부터 참가까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art deco시기의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인 Émile-Jacques Ruhlmann가 전시했던 응접 세트 입니다.
이 디자이너의 대표 가구들을 보면 아르데코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좀더 쉬울 것 같습니다.
이국적인 무늬의 원목들, 그리고 강렬하고 과감한 장식 요소들, 상아와 금박 같은 고가 소재의 아낌없는 사용등이 눈에 들어 옵니다.
아르데코의 시대는 어느 디자이너의 이름 아래 공산품 개념처럼 같은 디자인의 가구가 다량으로 나오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의 디자이너들은 제품 디자인이 아니라, 현대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처럼, 공간 에 대한 디자인(가구 및 장식 전체)을 해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곤 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넘어오며 산업화와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많은 부가 축척되던 유럽의 부르주아들은 이전 세기에는 왕족과 귀족만이 누리던 가구와 인테리어 같은 생활의 호사품에 점차 관심이 깊어지며, 이에 맞추어 가구 제작 기술도 많은 발전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이란 큰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유럽의 모든 문화나 예술 역시 잠시 휴지기를 갖게 되는데, 1차 대전이 끝나고 난 이후, 승전국들은 패전국의 배상금 등을 통해 곧 전쟁 전의 풍요를 되찾고 있고, 여기에 새로이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던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탄생으로 맞춤 가구들과 인테리어를 위한 공예품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유럽의 움직임은 1920~30년대 미국의 인테리어 시장에도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이 시대에 제작된 오리지널 가구들은 현대에 와서 아주 고가의 수집품으로 각광을 받기도 하죠.
아르데코 스타일의 가구들은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쓰며 장식적인 요소들도 많이 가미되곤 하는데요,
흑단, burl 월넛 등에 마호가니, 브라질리안 하카란다 (고급 악기에 많이 쓰이는 브라질리안 로즈우드의 일종)
등의 이국적인 원목을 주로 사용하며,
여기에 우리가 나전칠기에 조개껍질을 이용하는 것처럼, 상아, 진주, 놋쇠 등을 원목에 붙여서 장식미가 풍부한 가구를 만들고 있습니다.
흑단에 놋쇠를 사용해 장식과 포인트를 준 책상입니다.
또한 시기적 특징으로 인해 모던한 느낌을 강하게 주는 steel과 glass 같은 최고급 소재 ( 당시 기준으로는 현재와 같은 대량 생산이 안되기 때문에 비싸고 귀했던 )의 사용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930 체코에서 생산된 사이드 테이블
shagreen, silk, snake skin 같은 동물성 소재의 원단 사용도 많아집니다.
shagreen은 위의 상세 이미지에서 보시는 것 같은 상어 스킨입니다.
인조 shagreen이 출시된 뒤로는 많이 봐왔던 스타일인데 아마 뱀가죽이라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많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shagreen은 특별히 책상이나 테이블 등의 상단 마감재로 많이 사용됩니다
아르데코 스타일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는데요, 그럼 솜씨 좋은 아카데미상 수상자가 보여주는 영화 속의 아르데코 스타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할까요?
톰과 데이지의 거실 공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용된 가구들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앤틱 가구들이 아닌 전부 아르 데코 디자인 컨셉을 반영해서 영화 세트 디자인팀이 새로이 제작한 가구들입니다.
감독은 현대의 우리가 필터가 달린 렌즈를 통해 뿌옇게 색이 바랜 느낌의 과거 이미지를 보며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인 우리 모두를 1920년대의 현장 속으로 데리고 가서, 주인공들이 바라 보는 관점으로 현재(1920s)와 미래(1930s)를 보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국적인 패턴의 원목을 사용한 사이드 테이블에는 대칭적인 기하학적 패턴을 도어에 적용하고 있고, 소파 앞에 놓인 테이블은 상아와 놋쇠를 이용해 한껏 멋을 부린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소파의 암 부분도 현대와는 다른 독특하게 원목을 드러나게 사용하고 끝부분이 튀어 올라오며 굴려진 곡선미를 살려서 아르데코 시대의 소파 느낌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행잉 소품들, 테이블 위의 소품 하나하나도 정성들여 고른 느낌입니다.
아래의 다른 각도에서 잡은 사진을 보면 천장에 샹들리에가 하나가 아닌 여러 개를 줄지어 달아 놓은 인테리어를 보실 수 있는데, 이러한 천장 느낌 역시 아르데코의 대표적인 인테리어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샹들리에와 바람에 날리는 망사 커튼 등이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톰은 자신의 차를 수리하는 개러지 주인의 부인 머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아래의 장면은 머틀의 집 거실 풍경입니다.
협소한 공간이지만 아주 과감한 패턴으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시아 풍이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인기 스타일이었다고 하는데, 램프 갓이나 의자에 사용된 패턴 등을 보면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받은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붉은색을 강하게 사용하는 것은 정돈되지 않음, 흥분 그리고 유혹 이러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 같은데, 위에서 본 데이지의 거실이 화이트 톤을 중심으로 핑크를 사용해 밝고 정돈되고 소녀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이 거실은 좀 더 성년의 여성, 거친 야성미 등이 두드러지며 톰의 행동에 근거가 될만한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좁은 거실 한 벽에 놓인 피아노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피아노는 19세기에 부르주아들의 부흥과 더불어 악기라는 원래의 기능보다는 거실에 놓일 메인 가구의 위치를 점하며 인기를 누려 오다가 20세기에 접어들며, 그라모폰이나 포노 그라프 같은 초기 축음기 들의 등장으로 점차 인기가 시들해져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지의 거실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머틀의 거실에서는 중요한 장식 가구로서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톰이 머틀과 머무르기 위해 마련해 놓은 뉴욕 도심의 아파트 내부 입니다. 머틀의 거실과 유사하게 이국적인 패턴을 사용하고 비즈 발을 이용해 무대 같은 느낌이 들게 하고 있습니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전등과 벽에 걸린 장식 등이 전형적인 아르데코 디자인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플라자 호텔에서의 장면입니다.
두 남자의 다툼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와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데이지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장면인데요, 오버사이즈의 tub 체어에 푹 파묻힌 데이지의 실루엣이 해답을 찾기 힘든 그래서 점점 작아져 가는 그녀의 에고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의 물질적인 풍요가 그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속에서 과연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선택과 결정들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요?
눈에 띄는 몇몇 아이템으로 세트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테이블 위해 올려놓은 컵받침, 화분, 벽에 걸린 금빛 금속 테두리의 분할 된 거울, 유리를 사용한 다양한 디자인의 천정 램프등 장면의 전체를 완벽하게 아르 데코 스타일로 재현해 낸 <위대한 개츠비>
그 이름 만큼이나 Great한 인테리어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