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셜록 시리즈
BBC의 인기 드라마 <셜록> 시리즈는 영국 출신의 명 드라마 작가 듀오인 윌리엄 모팟과 마크 개티스의 수다에서 우연히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교환하던 중에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바로 '나뿐 아니라 참 많은 사람들이 셜록 홈스를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이었죠.
그렇지만 이 뛰어난 창작가들은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오리지널 셜록을 꺼내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태껏 나왔던 셜록 홈스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족하지 못했던 부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그렇기에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모습들이 투영된 새로운 개념의 <셜록>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들은 21세기 셜록의 성격을 한 영화에 출연한 신인배우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영화 <어톤먼트>에서 주인공들에게 가시밭길을 걷게 하는 원인 제공자로 출연했던 베네딕트 컴버베치의 염치없고 잘난 체하는 캐릭터였습니다. 두 명의 작가는 영화 속 컴버베치의 연기를 보며 똑똑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인간관계에 미숙한, 드물지만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재수 없는 천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렇게 현대판 셜록 홈스의 캐릭터가 탄생됩니다.
코난 도일의 원작은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입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완성되었던 시기로 시민혁명과 다수의 공화국 시스템이 흥망을 거듭하며 정치적으로 부침이 심했던 옆 나라 프랑스에 비해, 제국주의의 완성과 다양한 과학기술의 등장 그리고 강력한 군주제로 대표되던 빅토리아 시대는 부와 평화가 지속되는 영국 역사의 최고 황금기 중 하나입니다.
이런 이유로 셜록의 공간은 빅토리아 스타일에서 20세기 초의 모던 스타일까지 다양함이 섞여 있습니다.
코난 도일 원작의 에피소드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 지역 그리고 문화와 사회 현상의 다양성이 셜록에서도 많이 묻어나고 있는 만큼, 인테리어 역시 그런 다양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돌아가 셜록의 세트장을 하나씩 뒤집어 볼까요?
제일 먼저 의자들이 눈에 띄는데, 셜록의 의자로 출연한 주연 가구는 바로 르 꼬르뷔지에의 LC3입니다.
공식적으로는 1928년 Le Corbusier, Pierre Jeanneret 그리고 Charlotte Perriand이 디자인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최근의 뉴스들은 샬롯 페리앙의 디자인이라는 데 힘을 실어 주는 분위기입니다. 젊은 여자 디자이너가 처음 입사해서 디자인한 의자가 가구 역사의 아이콘이 돼버린 셈이랄까요? 현재는 이태리 Cassina 브랜드에서 제작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튜브 색상과 다양한 마감의 가죽들이 있지만 LC3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블랙 가죽에 크롬 조합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얇은 튜브가 풍성한 쿠션을 감싸 안고 있는 그래서 엘레강트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이 강한 디자인입니다.
일견 보기에는 단단한 느낌일 것 같지만 사실 4 부분으로 이루어진 큰 쿠션들은 최상의 포근함을 주기 위해 두꺼운 형태로 되어 있고, 이 두께가 주는 둔탁함을 없애기 위해 날렵한 금속 튜브가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원형 금속 튜브를 사용한 의자로는 1925년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Wassily chair가 원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칭적이고 비례가 뛰어난 또 다른 아이콘 디자인인 이 Wassily 체어는 선의 느낌이 강하게 드러나 있어 LC3와는 대비되는 날렵함이 특징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생각이 잠겨있는 셜록의 모습입니다.
푹 파묻혀서 거의 누워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정말 푹신해 보입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셜록의 공간은 마치 실험실인 듯 많은 소품들이 들어 차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실험실 같은 느낌만 강조되면 딱딱하고 고지식한 이미지가 강해질 텐데, 위의 사진처럼 안락한 의자와 소파 위에 놓여 있는 푹신한 쿠션들을 통해 '강 약 강 약'의 음악적 리듬 같은 템포를 스타일링에 부여함으로써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조율해 나가고 있습니다.
BBC 셜록 시리즈의 팬들에게는 이 LC3의자가 완전히 셜록화 돼버렸는데, 시즌 4를 앞두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만들어진 <유령신부> 편에서 셜록과 존이 원전이 쓰인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가 버린 겁니다.
세트 디자인 팀에게 엄청난 숙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이 LC3의자는 말이 끄는 마차가 돌아다니던 빅토리아 시대에는 당연히 없던 디자인이니, 설정해 놓은 셜록의 캐릭터에 손상을 주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LC3만큼이나 시대적인 그리고 디자인적인 아이콘 역할을 해줄, 동시에 빅토리아 시대에 실제로 존재했어야 하는 소파를 찾아내야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입니까. 이번에도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 내고 있습니다. 바로 Chesterfield sofa로 LC3를 대체해 버렸는데요,
셜록이 입고 나오는 그린 체크 슈트와 어울리는 그린 색상의 가죽을 사용한 소파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Chesterfield Sofa는 멋쟁이 신사의 이미지가 강한 영국의 전통 소파 디자인입니다.
런던의 유서 깊은 멋진 바버샵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디자인인데요, 이 소파의 기원은 18세기까지 내려갑니다.
당시 유명한 멋쟁이였던 필립 스탠호프 경은 ( 4대 체스터필드 백작으로 알려진) 소파에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자신의 양복에 구김이 생기는 것이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파 장인에게 새로운 디자인을 주문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체스터필드 소파입니다.
바깥으로 휘어져 나가는 모양의 팔걸이 디자인과 뭐니 뭐니 해도 버튼을 이용해 볼륨감을 살리면서 탄탄한 질감을 유지하게 만든 등쿠션 부분의 디자인이 이 소파가 몇 세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게 만든 핵심 포인트인데요, 고급 남성 클럽, 고풍스러운 호텔 로비, 바버샵 등에서 아주 사랑받는 아이템입니다.
그렇기에 빅토리아 시대 기준으로 보면 이 체스터필드 소파도 현대의 LC3에 못지않은 당대의 디자인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을 텐데요, 이 전통적 디자인이 현대에 와서 독특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재미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Blofield란 회사의 아이디어 상품 한번 보시죠.
공기 주입식 의자를 의미하는 Blow와 체스터필드 소파의 field를 합쳐서 만들어진 블로필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체스터필드 소파의 디자인을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해내는 데 성공합니다.
가볍고 야외 사용이 가능한 덕분에 위의 이미지처럼 유럽에서는 야외 이벤트 등에서 인기 많은 유명한 아이템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의자의 역사와 디자인에는 재미있는 다양한 스토리들이 끝없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명의 재기 발랄한 작가들을 통해 빅토리안 시대의 명탐정이 현대의 살아 있는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난 '셜록' 시리즈는 그 커다란 시간의 갭을 재치 있는 소재 선택과 튼튼한 이야기 구조 그리고 독특한 주인공들의 캐릭터 설정을 통해 잘 메워나가고 있는데요, 또한 세트 디자인에도 이렇듯 드라마의 흐름에 잘 매칭 되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완성해 나감에 따라 시청자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