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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Nov 03. 2019

디스토피아에서 만난 명품 가구

헝거게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힘든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맛있는 음식과 고급 호텔 이런 것들로 나에게 보상을 할 수 있다면!! 많은 우리들에게 여행은 왠지 이런 것들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해외여행에 있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것이 여행족들의 위시리스트 상단에 들어 있을 텐데,  20세기 초의 위시리스트를 생각해 보면 오리엔트 특급이라 불리던 호화 열차 여행이 상단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주류로 등장하고 있던 당시의 부르주아들에게 이 럭셔리 열차 여행은 꽤나 인기가 있었고,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호화 열차 여행을 소재로 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도 등장합니다. 


재구성된 오리엔트 특급 실내 모습



 그렇다면 과연 이 찬란했던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영화 <헝거게임>의 배경은 지금부터 멀지 않은 미래, 핵전쟁 이후의 암울한 북미 대륙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펜암이란 이름의 국가가 세워졌고 수도 캐피톨과 12개의 구역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각각의 구역은 캐피톨 시민들을 위한 물자를 생산해서 조공을 받치며 생존을 보장받습니다. 한편 각 구역의 반란이 두려운 중앙정부는 '헝거게임'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만들어 내는데요, 마치 로마 시대의 검투 경기를 연상케 하는 이 게임은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고 죽는 유혈이 낭자한 결투여서, 참가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엄청난 공포와 고난을 의미하지만 그 외의 대중은 정치가 만들어낸 기만에 불과한 이 결투 게임을 통해 환호하고 희열을 느끼고 있습니다.


 매년 구역별로 남녀 1명씩을 추첨으로 뽑아서 게임에 참가시키는데, 올해 12구역의 추첨에서는 주인공 캣니스의 어린 여동생 이름이 울려 퍼지고 그 순간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캣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I volunteer' 



 24명의 참가자 중에 마지막 남은 1명을 제외하고는 23명이 죽어야 끝나는 '헝거게임'은 그렇기 때문에 게임에 뽑힌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2구역을 대표해서 헝거게임의 참가자가 된 캣니스와 피타, 그들은 헝거게임이 열리는 수도 캐피톨을 향해 죽음의 여행에 동승자가 돼버립니다.


영화는 죽음의 여행에 동승한 주인공들에게 초호화 열차를 선택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12구역 조공인과 그들이 목숨을 걸고 펼치는 결투를 그저 한낮 유흥으로 즐기고 마는 사치와 환락이 가득 찬 수도 캐피탈의 대중들 사이의 어마어마 한 간극의 길이를 초호화 열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을 통해 암시합니다.


 과연 얼마나 호화스러운지 열차 인테리어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고급스러운 소재의 원목 테두리에 파란색 벨벳이 씌워진 안락의자가 눈에 들어오는데요,


 


이 의자는 오리엔탈 특급의 객실에서 사용된 것과 유사한 형태인 tub chair입니다. 차이는 실제 열차 객실에 사용된 의자는 하단에 휠이 부착되어 있는 형태인데, 영화에 사용된 의자는 이미지에서 보시는 것처럼 swivel(회전) 타입으로 되어 있습니다. 디자인면에서는 두꺼운 원목의 무게감이 럭셔리함을 더 해주지만 좁은 객실에서 회전 기능을 넣었다가는 주변과 부딪이는 위험이 생기기 때문에 실제  열차에는 적용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Tub chair는 등받이의 디자인에서 유래가 됩니다.   욕조에서 우리가 몸을 기대고 머리를 가누는 부분처럼 라운드로 우리 몸을 감싸고 있는 모양에서 tub란 이름이 처음 붙기 시작했습니다. 이 명칭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실제 디자인의 시초는 프랑스의 루이 15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루이 15세 시대 전까지는 위의 이미지에서 보는 것 같은 영국식 윙백 체어가 유행이었다죠. 그저 편편한 뒤판에 날개 모양의 엣지를 만들어서 몸이 옆으로 기우는 것도 방지하고, 벽난로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우리 몸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 당시로는 혁신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로 유럽 전역에서 왕가와 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그러던 중 안목과 취향이 남달랐던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의자 디자인에 관해서 좀 더 디테일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날개를 좀 더 길고 둥글게 만들면 우리 몸이 훨씬 편하게 쏙 파묻히지 않을까? 그리고 벽난로를 옆으로 두고 앉을 경우가 아니라 벽난로를 전면에 보고 앉을 경우 의자의 측면이 자연스럽게 온기를 우리 몸 쪽으로 가둬두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이렇게 루이 15세의 안목이 반영돼 새로이 출시된 의자는 영국의 윙백 체어와 더불어 세기를 거쳐 현재까지 살아남은 현대 의자 디자인의 원형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렇게 모아 놓고 보니, 루이 15세의 안목이 현대 가구 디자인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가 새삼 놀랍습니다. 웬만한 유명 가구 브랜드의 카탈로그에는 이 tub의자의 변형 디자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련된 디자인이 꼭 위에 의자들처럼 명품 가구 회사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하! 그러네요, 우리가 이 tub의자가 익숙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의자 제작 기술의 발달로 인해 라운드 형태의 등판을 저비용에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하고, 그러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대중적인 장소에서도 이제는 루이 15세의 의자를 쉽게 만나 볼 수 있게 됩니다. 

.

설명을 위해 잠시 옆길로 돌아갔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영화 속의 의자 이야기를 마저 해보겠습니다.

세트 디자인 팀이 직접 제작한 이 의자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미드 센츄리 모던  스타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예술영화가 아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오락성을 신경 써야 하는 제작팀 입장에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스타일에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럭셔리 코드 ( 진한톤의 원목, 블루 벨벳, scallop back cushion)를 접목시켜서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의자와 더불어 기차 내부 인테리어에 중요한 요소는 lighting입니다. 


럭셔리한 느낌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전체적인 내부 느낌을 어두운 색조로 가져가고 yellow light를 포인트로 이용해 공간에 금박을 입힌 것 같은 효과를 주고 있는데요, 이런 시도는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작품을 연상케 합니다.


Going to the Ball


 yellow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한 터너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는 yellow에서 gold의 황금빛 찬란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차 내부의 주요 인테리어 요소인 의자와 라이팅을 살펴보았는데요, 영화에 나온 장면처럼 여러분이 고민하는 공간도 포인트가 되는 메인 가구 한 가지와 잘 고른 조명 이렇게 두 가지가 충분하다면 생각보다 적은 예산으로 충분히 럭셔리하게 꾸미실 수 있을 겁니다.




영화에서 또 다른 중요한 공간은 수도 캐피톨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이 머무는 숙소의 거실입니다.



캣니스와 피타 그리고 이들의 멘토가 될 12구역 출신의 헝거게임 생존자 헤이미치, 이들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후원자들을 모으기 위해 멋진 의상을 디자인해야 하는 패션 디자이너 시나                    


 표면적으로는 이들 모두 헝거게임에 참가하는 캣니스와 피타가 최선의 결과를 내었으면 하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그 목표 자체가 상당히 모순 적입니다. 오직 한 명만 살아남는 헝거게임에서 결국은 캣니스와 피타도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관계인 것이죠.


다시 말해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각자마다의 개별 전략에서 서로 충돌이 생기고 있는 장면을 연출해 내고 있는데, 이들이 앉아 있는 소파가 이런 상황을 정확히 보여 줍니다.



바로 스위스 소파 브랜드인 De Sede의 DS-600 Non-stop sofa입니다. 

개별 모듈을 계속 연결할 수 있는 방식의 독특한 소파 시스템이라서 공간만 허락하면 지속적인 확장이 가능한 디자인이라 non-stop sofa라는 별칭이 생겼습니다.



De Sede는 가죽 가공에 장점이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렇다 보니 대표 모델들은 위의 이미지처럼 부드러운 가죽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곡선미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거실 장면으로 돌아가 보면 소파 앞에 놓여 있는 테이블도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6 각형 기둥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테이블 디자인은 펜암에 속해 있는 12개 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데, 각 구역별로 펜암내의 위상이 다른 것을 서로 다른 높이의 기둥을 사용함으로써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눈에 띄는 인테리어는 Dining 장면 인데요



빛을 반사시키는 푸른색의 바닥 재질은 바다를 연상케 하고, 천정에 달려 있는 globe 형태의 램프는 전체의 별들 처럼 느껴 집니다.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음식들은 과거의 원시성을 내포하며, 전쟁 이후의 세계가 한편으로는 미래라는 시계에 맞춰 그로테스크하게 변해 가지만, 전쟁이라는 단절성으로 인해 다시금 원초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회상을 보여줍니다. 


이런 느낌은 로마시대의 검투장을 연상케하는 '헝거게임'의 개연성에 대한 보충적인 이미지 기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의자의 디자인이 아주 독특한데요, 미국 Philips collection이라는 가구 디자인 회사의 제품입니다.

'Every piece a conversation' 이라는 모토아래 모든 가구들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의자의 이름은 'Seat Belt' 입니다.


금색빛 금속 소재의 실을 짜서 만들어 낸 의자는 주인공들에게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안전벨트를 반드시 착용하세요'라는 외침처럼 들립니다. 


영화 헝거게임의 1편 판엠의 불꽃에 나오는 다양한 가구들과 인테리어 아이디어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자신의 운명을 향해 출발한 캣니스의 여행이 호화 기차의 멋진 인테리어 보다 더 멋지게 결말을 맺었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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