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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수의 왕 Nov 09. 2019

아메리칸 컵케익 같은 웨스 앤더슨

로열 텐넨바움

영롱한 레인보우 컬러의 컵케잌들, 고소하고 이국적인 넛트들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속에 빠져 있는 조가비 모양의 프랄린들, 황금빛 버블이 플루트를 타고 터져 올라오는 샴페인, 그레이 헤어 위에 은빛 반짝임이 놀라운 러시안 블루들


뭔가 인풀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을 연상케 하는 이 이미지들이 다 모여 있는 바로 그......


연기와 대사마다 평범을 묘하게 비틀어대는 유쾌한 유머가 넘치고 화면마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장식들과 예쁘고 화려한 원색들이 듬뿍 들어간 그래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먹고 싶어 침이 고이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 내는 웨스 앤더슨. 그에게 있어서 집이란 그리고 인테리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는 영화 로열 테넌바움을 통해 가족과 가정(family and home)이란 소프트웨어적 컨셉을 집(House)이라는 하드웨어를 통해 이미지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웨스 앤더슨은,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들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가는 요소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감독이며 이런 그의 특징은 영화 로열 테넌바움의 로케이션에 대한 집착과 열정을 통해 영화속에 녹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집은 그곳에 살고 있는 가족의 역사이다. 배우들과 많은 리허설을 할 시간이 부족하기에, 나는 집 자체가, 배우들이 알아야 할 캐릭터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들이 창조해야 하는, 실제로 피와 살이 있는 살아 있는 주인공을 완성해 낼 수 있는 정보 말이다.”


우리가 '피와 살'이 되는 정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감독도 그가 제공하는 인테리어의 요소들 하나하나가 배우들에게 '피와 살'이 되어서 생생하게 연기를 통해 복원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죠.


그는  영화 모든 플롯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뉴욕시를 이 잡듯이 샅샅이 뒤져서 영화의 로케이션이 되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낸 후, 카투니스트인 동생의 도움을 받아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될 인테리어 디자인 아이디어들을  스케치해 냅니다. 그리고 두 명의 인테리어 데코레이터를 데리고 6개월이란 시간을 투자해서 직접 모든 구석구석을 테넌바움 일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완벽하게 재창조해 냈습니다.   


339 Convent Avenue, Manhattan, New York


 이렇게 창조된 공간에서 영감을 받은 다수의 일러스트 작가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집과 인테리어에 기반해서 재미있는 이미지 작업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역으로 웨스 앤더슨이 인테리어에 사용하기 위해 작업했다는 최초의 일러스트들을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는 보이는 이미지 그 너머에 많은 것들이 숨어 있지만, 오늘은 과연 이 감독이  의도했던 건 무엇이고, 그것을 색과 이미지들을 가지고  인테리어란 장치 속에 어떻게 녹여내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표현했을까 등등의 어려운 심리학적 또는 철학적 주제가 아니라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인테리어 아이디어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제부터 영화의 몇 장면을 통해 웨스 앤더슨식의 아메리칸 스타일 인테리어를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스타가 된 인테리어 아이템부터 시작할까요?


출처 scalamandre 홈페이지


바로 이 scalamandre 사의 벽지입니다. 로열 텐넌바움의 딸인 마고의 방과 화장실 벽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는데요


강렬한 얼룩말 패턴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영화의 스토리를 보면 마고의 어린 시절 마고에게는 얼룩말과 얽힌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일찍이 극작가로서 자질을 발휘하며 본인이 쓴 희곡을 가지고 학교 연극 공연을 마친 마고에게 아버지 로열은 입양한 딸이라며 딸의 재능에 무심함을 드러냅니다.


연극에서 얼룩말로 변장했던 마고는 얼룩말 분장을 한 채로 공연장을 박차고 나가는데요, 이런 마고의 에피소드를 연결시키려고 했는지,  그녀의 방은 빨간색 배경의 얼룩말 무늬가 들어간 벽지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빨간색 배경이 쓰였지만 이 벽지를 출시한  scalamandre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동일한 패턴의 벽지는 총 12가지 색상이 선택 가능한 것으로 나오는데, 감독은 주인공의 극 중 캐릭터에 부여된 성격과 귀네스 펠트로우의 피부톤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빨간색 벽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인테리어에서도 패션처럼 단지 색상만을 맞추는 게 아닌 컬러톤을 맞춰나가는 게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빨간색이 선택된 또 다른 중요한 사연이 있는데요, 이 패턴을 디자인한  scalamandre 는 1940년대에 뉴욕에서 신규로 오픈하게 될 Gino's 란 유명한 이탈리언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를 의뢰받습니다. (현재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군요)  레스토랑이 뉴욕의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게 되다 보니, 레스토랑 내부의 공간이 협소했고 그 점을 고민하던 디자이너는 과감한 패턴과 강렬한 색상이 결합된 바로 이 벽지를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Gino's Restaurant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디자이너 본인이 선택한 색상이 바로 레드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이 패턴은 레드가 오리지널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얼룩말이라는 아이들한테 친근한 모티브이다 보니 영화에서 사용한 것처럼 아이방에도 잘 어울리지만 강렬한 바탕색과 이국적인 얼룩 패턴이 합쳐져 클래식한 프레임 속에 이그조틱 한 포인트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은 좁은 공간에 큰 패턴을 쓰겠다는 용기를 내기 어려운데, 이런  강한 이미지를 가진 디자인이 좁은 공간에서 착시 현상을 일으켜 의외의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눈에 뜨이는 인테리어 요소는 벽에 걸린 액자 들입니다.

4층에 있는 Ballroom의 인테리어입니다.


선홍색의 벽에 액자들이 다양하게 걸려 있습니다. 좌측에 나 있는 창을 통해서 자연광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장면을 오른쪽에 도어의 Yellow 색상과 잘 맞춰 조화롭게 인테리어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인공광인 Lamp는 백색을 사용해 포인트를 주고 있고, 자막의 흰색과 같이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레드와 엘로우가 전체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운데 정면 한가운데에 그린톤의 러그를 깔아서 색상 배치를 중화시켜 주고 있지만 시선을 거스르지는 않습니다. 둘째 아들인 테니스 스타 리치가 그린 그림으로 벽을 장식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Ballroom에 Ball player (보통 볼 플레이어 하면 야구가 먼저 떠 오르긴 하지만 테니스도 공을 사용하는 구기 종목이니 감독의 B급 유머 아닐까 싶습니다)인 미술의 아마추어가 그린 그림을 걸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감독은 친절하게 close-up 장면을 통해 영화의 전개를 위한 복선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리치와 마고는 남매이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어린 리치의 눈에는 자신의 사랑만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그가 그린 모든 그림은 바로 누나 마고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해외 인테리어 잡지에 보면 이 처럼 액자로 벽을 장식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미니멀 스타일이나 모던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는 사진을 찍었을 때 효과는 뛰어나지만 막상 그 안에 사람 사는 냄새가 그리 풍겨 나지는 않습니다. 그에 반해 가족사진, 아이들이 그린 그림 이런 액자들이 걸려있는 벽은 함께하는 가족이란 감성을 강하게 드러내 줍니다.


액자를 벽에 잘 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배열을 해야 할지부터, 내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 그대로 벽에 시공을 할 수 있을지 까지, 그렇다 보니 이런 재미있는 액자가 독일에서 등장했습니다.


독일 country living에서 출시된 퍼즐 액자입니다. 가운데 위치할 메인 액자 하나만 벽에 고정시키면 나머지는 퍼즐처럼 그저 키워 맞추기만 하면 계속 액자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원목도 있고 다양한 색상도 있어서 취향대로 꾸밀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테리어 요소는 그린을 사용한 이그조틱한 악센트입니다.

즉 color 톤을 인테리어에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 예인데요


볼드한 패턴의 그린 색상 벽지를 통해 주인공 마고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어린 시절과 첫 번째 결혼의 레게스러운 장면에서 대비되는 벽지의 패턴과 색상은 혼돈 상태에 빠져 있는 그래서 삶을 방황하고 있는 마고의 캐릭터를 간접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색 바랜 그린을 통해 과거의 유산에 집착하고 있는 그래서 무기력한 현재를 표현하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노랑 텐트 후면의 어두운 그린 바탕이 조명을 통해 밤 하늘의 우주를 보여주고 있는데, 갈 곳을 잃어버린 채 새장 속에 갇힌듯 한  리치의 자아를 슬프게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로열 텐넨 바움은 황당한 부모와 천재적인 자녀들이 성장하며 만들어 나가는 해체와 분열의 막장 가족사에 대한 코디미입니다. 


하지만 너무도 예쁜 인테리어의 이미지들로 환영을 만들어낸 덕일까요? 영화는 그렇게 막장처럼 보이지 않는데요, 더군다나 웨스 앤더슨이 6개월을 들여 직접 만들어낸 이 대단한 하드웨어적 업적은, 영화의 결말까지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습니다.


 가족이 다시 모여 서로가 남긴 상처와 실망을 덮어나가며 가족의 울타리 속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도구로 사용된 뛰어난 인테리어 디자인을 보며, 여러분은 여러분의 공간을 위해 어떤 인테리어를 그려 나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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